“100억원 한짓골 사업 대신, 소담한 '문화곳간' 어때?"
“100억원 한짓골 사업 대신, 소담한 '문화곳간' 어때?"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5.23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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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중인 제주문화예술재단의 한짓골 사업, 환기하기 <3>

-상가리 마을 '문화곳간'과 '한짓골 사업', 차이는?
-공공 공연연습장 조성, 제주 전역에 많을수록 좋아
-하나의 건물보단, 지역민과 가까운 여러 공간으로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문화예술재단의 한짓골 사업이 재밋섬 건물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각종 논란을 빚으며, 임시 중단된 상태다.

제주도 감사위원회가 이미 '문제가 많다'고 인정한 한짓골 사업. 정의당의 한짓골 사업 관련자 고발로 표류 중인 상태에서 세 번째 기획기사를 게재한다.

170~200억원 세금을 들여 공공 공연연습장을 만들겠다는 한짓골 사업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상가리 마을의 빈 건물을 두 동을 활용해 탄생한 '문화곳간'의 사례와 비교하며 생각해보자.

# 한짓골 사업의 정당성, 이미 잃은 지 오래

작년 5월, 제주문화예술재단(이하 재단)이 100억여원을 들여 삼도이동에 있는 재밋섬 건물을 매입하겠다며 ‘한짓골 아트플랫폼 사업(이하 한짓골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한짓골 사업의 주 내용은 현재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연예술인들의 공공연습장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때 건물 리모델링 비용은 70억원에서 100억원가량으로 예상된다.

단 하나의 건물을 매입, 리모델링하는 데 약 170억~200억여원의 돈이 투입된다는 사실 자체로도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데, 문제는 더 있었다.

지난 1월 9일, 제주도감사위원회는 재단의 재밋섬 건물 매입 과정에서 발생한 의혹 중 상당수가 사실임을 인정하며 재단 관계자에 경징계 및 경고 처분을 주문했다. 재단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경고 처분을, 제주도청 공무원 2명은 훈계 처분을 받았다.

당시 감사위가 인정한 한짓골 사업의 대표적인 문제는 아래와 같다.

-재밋섬 부동산 매입에 대한 이사회와의 사전 공감대 부족

-'2018년도 기본재산운용계획'에 대한 도지사 보고 미이행

-사업 타당성 검토를 위한 기본재산관리위원회에 전문가 부재

-도민공감대 노력 및 도의회 보고 등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점

-신탁된 부동산을 매입하며, 등기상 소유자인 신한은행에 계약이행 담보방법을 마련하지 않은 점

-재밋섬 건물 감정평가에 대한 국토부의 타당성 조사 결과 '다소 미흡'으로 판명, 건물 감정가인 110억원은 시장가치를 반영하지 않은 감정평가액

-재단 기본재산 운용 등에 대한 제주도의 지도와 감독 부적정

-재단의 업무 담당자와 관련자의 부당한 업무 처리

정의당 제주도당 김대원 위원장(사진 왼쪽부터)과 김경은 부위원장, 김점철 중소상공인자영업자위원장이 11일 오전 '재밋섬 건물 매입 계약 관여자'에 대한 고발장을 제주지방검찰청에 접수하기 전 입장문을 발표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정의당 제주도당 김대원 위원장(사진 왼쪽부터)과 김경은 부위원장, 김점철 중소상공인자영업자위원장이 2월 11일 오전 '재밋섬 건물 매입 계약 관여자'에 대한 고발장을 제주지방검찰청에 접수하기 전, 입장문을 발표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현재 한짓골 사업은 정의당의 관련자 고발로 경찰 수사 중이다. 이에 재단의 재밋섬 건물 매입 또한 잠시 중단된 상태다.

서론이 길었다. 다음 단락부터 본론을 시작하겠다

.

# 공공 공연연습장은 제주 전역에 분포해야 좋다

앞서 언급했듯 한짓골 사업의 골자는 ‘예술인들의 공연연습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만 170~200억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예술인을 위해 재단이 나서서 연습장을 지어준다니 반가운 소식이지만, 문제가 있다. 제주의 예술인들은 재밋섬 건물이 있는 원도심 지역뿐 아니라 애월, 조천, 모슬포, 성산 등 제주 각지에 거주한다. 때문에 먼 거리에 거주하는 예술인은 한짓골 사업의 수혜를 받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는 외곽에 거주하는 이들의 문화예술 소외 현상을 심화시킬 뿐이다.

그래서 공공 공연연습장은 원도심 단 한곳의 거대 건물이 아니라,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제주 전역에 위치해야 좋다. 예술인들은 집과 가까운 곳에서 편히, 자주 연습할 수 있고 이는 제주 곳곳에서 열리는 문화예술 공연으로 이어진다. 또, 도민은 각자의 마을에서 열리는 공연을 자연스레 접하며 문화예술을 삶에서 만날 수 있다.

 

# 100억원 단 하나의 건물보단, 지역민과 가까운 '문화곳간'의 방향으로

그리고 여기, 한짓골 사업이 얼마나 ‘세금을 낭비하는’, ‘잘못된 방향의’ 사업인지 알 수 있는 '올바른 연습장 조성 사례'가 있다.

바로 5월 28일 개관하는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의 ‘문화곳간’의 사례다.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마을에 위치한 문화곳간의 모습.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문화곳간은 상가리 마을의 빈 건물을 리모델링해 탄생한 무용연습실이다. 연습실의 크기는 약 150평(가로 18M, 세로 8M)으로 천정 높이가 약 5M에 달한다.

이곳은 과거 비료 창고로 쓰이던 곳이다. 한적한 상가리 마을, 마을 리사무소 인근에 덩그라니 놓인 이 건물은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이하 센터)가 빌려 리모델링해 '문화곳간 마루(이하 문화곳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많은 무용수가 제주에 터전을 잡고 살아갑니다. 특히 서귀포에 참 많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서귀포 지역에 문화곳간을 만들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첫 시도인 만큼 제주아트센터와 제주시 관계자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제주시내와 가까운 상가리 마을 공간을 찾았습니다.”

전직 무용수 출신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박인자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은퇴 후 자신의 삶을 늘 고민해왔다. 그래서 문화곳간에는 그의 경험이 담겼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박인자 이사장.

문화곳간은 무용인들을 위한 연습실이자 다양한 무용 관련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곳으로 활용된다. 은퇴한 무용수는 이곳에서 강사로 일하며, 제2의 삶을 찾는다. 이곳을 찾는 도민들은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무용수에게 춤을 배울 수 있다.

센터는 이곳을 모두가 이용가능한 연습실로 활용할 예정이다. 연습실 대관료는 4시간에 2만원가량으로 저렴하게 책정되는데, 무용뿐만 아니라 연극이나 합창 등 연습 공간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개방된다.

즉, 문화곳간은 한짓골 사업의 목적인 ‘공공 공연연습실’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커뮤니티 댄스’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댄스(Community Dance)는 사람들이 함께 즐겁게 춤을 추며 삶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단순히 취미활동으로의 춤을 넘어 높은 삶의 질을 위해 커뮤니티 댄스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죠.”

박 이사장은 제주에서는 생소한 편인 ‘커뮤니티 댄스’를 문화곳간에서 소개하려 한다. 문화곳간에서 춤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고유물이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아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그런 강습을 제공할 예정이다.

“사실 ‘문화’라는 것은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에요.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서도 ‘문화’가 강조되지만, 이것이 단기간에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우리 삶과 연결되기란 어렵죠.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며, 문화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가져야 해요.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고, 누군가의 강요로 이뤄질 순 없어요.”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 사람들, 제주 사람들이 문화예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문화예술을 즐기고, 삶 속에서 이를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 이를 위한 곳이 문화곳간이라면서.

“공연예술이라고 하면, 지금까지는 주로 ‘보여주는 것’이 많았죠. 배우는 공연을 하고, 관객은 이를 관람하는 형태 말이에요. 그런데 알고 보면 문화예술을 행하고, 체험하고 싶은 시민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문화곳간은 무용인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일반 시민을 위한 곳이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문화곳간에 와서 무용인들의 춤을 접하고, 그들도 춤추는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문화곳간 입구. 공사 중이라 정돈이 덜 된 모습이다.

꿈 같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그의 바람을 들으니 문득 궁금해졌다. 재단은 공공 공연연습장을 만들기 위해 170~200억원을 들인다고 했는데, 문화곳간에는 얼마의 금액이 들었을까.

“저희는 이곳을 5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를 받았어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MOU)을 올해 상가리 마을과 맺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상가리 마을에서 배려해주신 덕에 문화곳간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건물 리모델링 비용으로는 약 8000만원이 들었어요.
무용에는 높이 뛰는 동작이 많아 바닥 시공이 중요해요. 미끄러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하는 전문 시공을 하기 위해 육지에서 자재를 들여오는 등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아마 방문해보시면 아실 거예요. 어느 전문 무용연습실 못지않게 무용수에게 최적화된 문화곳간이랍니다.”

상가리 마을의 유휴공간을 무상으로 임대해 리모델링 비용 8000만원으로 탄생한 이곳 연습실. 이 8000만원에는 연습실뿐만 아니라 옆 건물을 무용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하는 비용이 포함된다. 두 개의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데 8000만원이 든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 한 푼의 세금도 들어가지 않았다. 모두 육지 사람들의 모금, 후원으로 진행됐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후원인분들의 도움을 받아 리모델링 비용을 충당했어요. 현금 후원이 어려운 분은 냉장고나 텔레비전을 기증하기도 했고요. 많은 분의 협조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다. 추후 문화곳간 입구에 후원인 명패를 걸어 감사의 마음을 전할 생각이에요.”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박인자 이사장.

그는 문화곳간이 ‘제주 문화벨트 탄생’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상가리 마을에서 시작한 이곳과 같은 공간이 제주 전역에 생긴다면, 이것이 곧 '제주의 문화벨트'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문화곳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기대가 커요. 무용수들이 퇴직 후 활동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하는 곳. 상시 공연이 이뤄지고, 연습공간 대관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곳. 제주도민이 모여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문화플랫폼이 되는 ‘문화곳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요.”

박 이사장의 소망처럼,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려면 자연스러워야 한다. 문화공간은 내가 사는 곳, 지역민들이 오가며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좋다.

지역민들과 예술인이 만나며,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곳. 공공 공연연습장은 꼭 100억원짜리 커다란 건물일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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