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19 12:01 (화)
"나는 보았다, '행복'이 전염되는 순간을"
"나는 보았다, '행복'이 전염되는 순간을"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9.02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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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하게 듣고, 말하다3] 문화곳간 마루, 춤 발표회

문화예술의 방향성, '거대한 담론'보다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소박한 방향으로'
‘문화곳간 마루, 춤 발표회’, 춤으로 소통하며, 지역민 모두 위한 '마을 잔치' 되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오롯하게 듣고, 말하다' 기획은 제주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연·전시 등의 문화 행사를 기자가 직접 보고, 체험한 내용으로 꾸며집니다.

이번 기사는 세 번째 체험으로,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마을에서 열린 '문화곳간 마루, 춤 발표회' 현장을 소개합니다.

기자의 입장에서 고백하건대, 문화행사 취재를 하다 보면 행사 그 자체를 마냥 즐기기보단, 평가하는 평론가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많다.

마냥 즐거운 방문객의 입장으로 행사에 참여하다 보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때로는 취재의 목적을 잊고, 나도 모르게 행사에 푹 빠질 때가 있다. 바로 이날이 그랬다.

 

상가리 마을에서 열린 ‘문화곳간 마루, 춤 발표회’ 공연

8월 31일 애월읍 상가리 마을 게이트볼장에서 열린 '문화곳간 마루, 춤 발표회'. 발레 강좌를 수강한 아이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때는 8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5시.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마을 게이트볼장에서는 ‘문화곳간 마루’ 프로그램 수강생과 선생님이 함께하는 발표회 공연이 열렸다.

문화곳간 마루(이하 마루)란, 재단법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이하 센터)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도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춤’ 강습을 진행한다. 한국 춤, 성인 발레, 어린이 발레, 벨리댄스, K-POP 댄스, 치매예방을 위한 무용 프로그램 등 요일별로 매번 다른 강습을 진행하고 있다.

강습 비용은 엄청나게 저렴하다. 주 1회 1~2시간 진행되는 강좌당 5만원. 이는 석 달 치 가격으로, 한 달로 따지면 1만7000원이 채 안 된다. 게다가 상가리 주민은 50% 할인까지 해준다.

8월 31일,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박인자 이사장이 '문화곳간 마루, 춤 발표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센터가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춤 강좌를 진행할 수 있는 까닭은 박인자 이사장의 의지 덕분이다. 전직 무용수 출신인 그는 은퇴 후 자신의 삶을 늘 고민해왔다. 그래서 마루는 어떤 수익을 내려는 목적이 아닌, 전직 무용수들의 일자리이자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마루는 무용인들을 위한 연습실, 그리고 다양한 무용 강좌를 개최하는 곳으로 활용되는 중이다. 은퇴한 무용수는 이곳에서 강사로 일하며, 제2의 삶을 찾는다. 이곳을 찾는 도민들은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무용수에게 춤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8월 31일 열린 공연은 6월부터 8월까지 마루에서 춤을 배운 수강생들이 실력을 뽐내는 발표회 자리였다.

 

'문화곳간 마루, 춤 발표회', 공연을 넘어 ‘마을 잔치’가 되다

8월 31일 열린 '문화곳간 마루, 춤 발표회'에서 관객과 공연자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사진을 보면 느껴지듯, 무대의 주인공은 일반 시민들이다. 수강생들 대부분이 마을 주민이거나 인근에 거주하는 도민들로 구성됐다.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 아들, 딸이 펼치는 공연인 덕에 게이트볼장은 그의 가족인 관객들로 금세 붐비기 시작한다. 자리가 없어 창문가에 걸터앉아 구경하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보였다.

센터 측에 따르면, 이날 공연팀을 포함해 참석한 인원 수는 약 160~170여명. 대다수 관객은 인조잔디로 된 게이트볼장 바닥에 앉아 공연을 즐길 수 있었는데, 자유로운 관객석의 모습이 정겨운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여기서 잠깐.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했을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이날의 공연은 특별히 훌륭하거나 뛰어난 공연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에 선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고, 춤을 전공하거나, 전문적으로 배운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기자는 이들의 공연에 흠뻑 빠졌다. ‘반했다’라는, 다소 닭살 돋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마음이 꽉 차는 행복한 시간이다.

심지어 기자는 공연 관람을 위해 소중한 퇴근 시간을 기꺼이 포기하기도 했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 오후 6시 30분경부터 ‘문화곳간 마루’에서 마을 잔치가 열렸는데, 이 자리까지 참석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족발, 떡 등의 음식을 나누며 공연 후의 회포를 풀었고, 날이 어둑해진 뒤에는 영화 '써니' 상영회도 진행됐다.

 

행복은 전염된다, 상가리 마을 ‘문화곳간 마루’에서도 그랬다

벨리댄스를 추는 수강생들 모습.

행복은 전염된다. 공연하는 이들, 공연을 보는 이들 모두가 행복해하며 웃고, 박수치는 모습은 그저 ‘일하러 온 기자’를 ‘발표회를 즐기러 온 관객’으로 변화시켜다.

이날의 에피소드에 사족을 달자면, 마을 잔치가 열리는 ‘문화곳간 마루’로 이동하던 중 공연 무대에 섰던 한 어르신을 만났다. 잠시 함께 걸으며 말을 붙였는데, 그는 기자를 보고 마을 주민인 줄 알았나 보다. 자신이 OO씨네 옆집에 거주한다며, “거기, 알죠?”라고 물었다.

잘 모른다고 하니 어르신은 “그럼 ▲▲씨네는 알죠? 거기 옆 옆집”이라며 설명을 한참 이어갔다. 기자는 마을 주민이 아니라 잘 모른다 말했지만, 이미 그는 기자를 마을 주민으로 받아들였나보다. 결국 기자는 어르신의 기대(?)에 부응하려 “▲▲씨네 옆 옆집, 어딘지 알 것 같다”라는 착한(?) 거짓말을 했다.

"나는 딱 2주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어요. 원래 춤을 배운 건 아니고요. 갑자기 원래 공연하기로 했던 할머니가 밭일 때문에 무대에 못 선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받고 문화곳간 마루에서 강습을 듣게 됐죠. 내가 어린 시절 춤을 잠시 췄었거든요. 그런데 해보니까 정말 재미난 거 있죠. 9월부터 다시 춤 강습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한 번 참여해보려고요."

어릴 적 공연 경험이 있다는 어르신은 마루에서 9월부터 시작되는 ‘치매예방을 위한 무용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미 신청도 했단다. 처음에는 춤을 춘다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춤추는 행복을 느꼈다고 말하는 그의 사연은 기자의 가슴마저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마루에서는 9월부터 11월까지, 총 9가지 춤 강습을 진행한다. △월요일-한국 춤 명상 △화요일-성인 발레 △수요일-북춤, 어린이 발레 유아반과 어린이·청소년반 △밸리댄스 △목요일-K POP 댄스 △금요일-치매예방을 위한 무용 프로그램 △토요일-쉽고 흥겨운 플라멩코. 강사진은 현·전역 전문 춤 선생님들로 구성된다. 이중 특히 치매예방을 위한 무용 프로그램을 지도할 김무현 강사는 제주 출신으로, 육지를 왕래하며 지도에 임할 예정이다.

마루는 지난 5월 28일 개관해 이제 막 4달째를 맞이했다. 마루와 지역민이 만나는 첫 시간인 지난 6~8월 춤 강좌 프로그램에서는 총 200여명의 수강생이 몰려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될 프로그램에는 약 100여명의 인원이 모집된 상태다. 현재 센터에서는 정원 마감 시까지 추가 인원을 받고 있으며, 요일별 춤 강좌는 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2-720-6203)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마을에 위치한 문화곳간의 모습.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마을에 위치한 문화곳간의 모습. 지난 5월,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던 모습이다.
건물 두 동의 리모델링비로 소요된 금액은 약 8000만원. 모두 센터 기부금으로 진행됐다.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마을에 위치한 '문화곳간 마루'. 제주시청에서 약 23km 거리. 자동차로 40분이 넘게 걸리는 먼 곳이지만, 어쩌면 제주 시내보다 훨씬 더 지역민-예술인 간 문화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문화예술은 지역민의 가까이에서, 그들과 함께해야 좋다”라는 말이 그대로 이뤄지고 있는 곳, 상가리 마을.

상가리 마을 주민들은 오는 12월 중, 마을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직 정확한 일정도, 날짜도, 프로그램도 정해진 바 없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그 내용을 채워갈 예정이란다.

이곳에서 ‘춤’을 매개로 마을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처럼. 제주 지역마다 미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곳간'들이 생기게 된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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