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19 17:09 (화)
"소소해 보여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소소해 보여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09.21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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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하게 듣고, 말하다6] 2020세계유산축전

제주 자연 탐방, 참여자들 높은 만족도 보였지만
첫 행사인 만큼 운영, 홍보 등 다수 아쉬움 있어
'2020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의 걷기 체험 중, 만날 수 있는 말 작품.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오롯하게 듣고, 말하다' 기획은 제주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연·전시 등의 문화 행사를 기자가 직접 보고, 체험한 내용으로 꾸며집니다.

이번 기사는 여섯 번째 체험으로, '2020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프로그램 중 자연을 탐방하는 행사의 후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에서 열리는 ‘2020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행사가 9월 21일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고, 막을 내렸다.

코로나19로 기후위기와 자연 보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제주의 자연을 주제로 한 대형 행사가 열렸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다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내년에도 다시 한번 행사를 개최하고자 노력 중이라는 주최 측의 이야기에 기자가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그 후기를 정리해본다.

먼저, 칭찬부터 하자면. 이번 행사는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 성공적인 행사라 하겠다.

기자가 모든 참여자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 아니라 섣불리 단정 짓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총 4회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해 취재해본 결과. ‘만족스럽다’는 내용의 후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제주의 원형이 보전된 자연 속을 걸으며. 불쾌함을 표할 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제주 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주하면, 누구나 감탄하지 않겠는가. 

제주 자연을 주제로 하지만 막상 방문해보면 자연은 주인공에서 밀려난, 그런 축제들과는 달리. 이번 세계유산축전은 철저하게 제주 자연을 주인공으로 두고 있었다.

 

1. 다소 친절하지 못한 이정표

탐방길 곳곳에 위치한 이정표. 화살표를 따라가라는 의미다.

이번에는 아쉬운 점이다.

기자가 참여한 프로그램 중 하나는 ‘불의 숨길’이다. 거문오름에서 거대한 불로 분출한 용암이 푸른 바다를 향해 흘러가 만든 길. 그 길을 걸으며 불의 숨길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불의 숨길’은 △용암의 길 △동굴의 길 △돌과 새 생명의 길 총 세 가지 구간으로 나뉜다.

기자는 이들 중 용암의 길과 돌과 새 생명의 길을 걸어봤다.

먼저 ‘돌과 새생명의 길’의 경우, 해설사와 동행하는 회차와 자율탐방 회차 두 번을 참여하게 됐는데. 문제는 자율탐방 행사에서 발견됐다.

기자는 이미 해설사와 동행하며 ‘돌과 새 생명의 길’ 코스를 걸어봤기에, 길 잃을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하며 자율탐방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걸어보니 쉽지가 않았다.

길 곳곳에 이정표가 있기는 하지만, 두 갈래로 나뉘는 길에 이정표가 없는 경우가 있어 길을 헤매야 했다. 기자의 앞으로 걷던 2명의 외국인도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는 등 갈래길에서 서성대는 참가자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홀로 제주의 자연 속을 걷는 자율탐방 시간은 매우 좋았으나, 곳곳에 있는 다소 부실했던 이정표가 아쉬운 부분이다.

 

2. 자연을 두고 하는 AR체험, 매력이 없다

AR체험 존이 위치한 '돌과 생명의 길' 구간.

‘돌과 생명의 길’을 걷다 보면, AR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을 지나게 된다. 길 아래 동굴 입구가 존재하는 곳들에 ‘AR 체험 장소’를 마련해둔 것이다.

탐험자는 스마트폰을 이용, 관련 앱을 다운로드하고, 현장에 있는 표식을 카메라로 인식시킨다. 그러면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동굴 내부 탐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가 마주친 탐험자들은 이 AR 체험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해설사의 설명을 조금 듣더니 AR 체험 존을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 종착지에서 마주쳐 그 이유를 물으니 앱을 다운로드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두 눈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동굴 내부를 본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또 표식이 존재하는 현장 외 다른 곳에서는 AR체험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았다.

한편, 주최 측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AR 동굴 탐험을 할 수 있도록, 표식이 그려진 ‘엽서’를 배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기자가 방문한 현장에서는 엽서가 동이 나서, 받을 수 없었다.

덧붙이자면, 두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바다, 제주의 돌담길을 뒤로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걸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길 아래 있는 동굴 내부를 두 눈으로 볼 수 없기에, AR 체험 기회를 제공한 주최 측의 배려는 칭찬할 만 하다.

하지만 앱 다운로드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 동굴 내부를 찍은 사진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전시하거나 웹을 통해 공개하는 방법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3. 순환버스 관련 불편 사항

'용암의 길' 코스의 종착점.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라 하늘이 뿌옇다.

이 또한 기자가 겪은 일이다.

기자는 ‘용암의 길’ 코스 탐방을 마친 뒤, 차를 주차해 놓은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로 가는 순환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주최 측은 각각 코스의 시작점과 종점을 순환하여 방문하는 버스를 운행해 참가자들의 편의를 도왔다. 버스는 각 장소 별 약 30분 간격으로 도착한다. 따라서 아무리 늦더라도 최대 30분만 기다리면 순환버스에 탑승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자는 1시간여 시간을 기다려서야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현장 스텝이 버스 탑승 장소를 잘못 안내해 엉뚱한 곳에서 대기하다 버스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에 졸지에 1시간을 기다리게 된 참가자 일부는 안내를 잘못 해준 스텝을 찾아가 항의하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버스 관련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또 있다. 이번 행사에서 해설사를 맡았던 A씨가 겪은 일이다.

A씨는 순환버스 운전기사 중 모 기사가 식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배차 시간을 어겼다며, 당시 느꼈던 불쾌감을 토로했다. 모 기사가 식사를 마친 뒤 운행을 시작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고, 이에 A씨를 비롯한 참여자들이 30분 가량 막연히 대기해야 했다는 사연이다.

다만, 이 사례가 단순히 버스 기사 개인의 일탈인지, 식사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버스 운행을 했어야 할 사연이 있었던 것인지 운영 전반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4. 노 쇼(No Show)에 대한 대책 부실

'노 쇼'가 많아 해설사와 기자를 포함해 3명이 걸었던 '돌과 생명의 길' 코스.
조용히 걸을 수 있어 좋았지만, 선착순 마감으로 참가 신청을 놓쳤을 이들에게는 미안한 순간이다.

‘불의 숨길’ 행사에 참여를 원하는 이는 누구나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 무료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제주 자연의 소중함을 더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무료’, ‘인터넷 신청’이라는 방식으로 편의를 도모한 것이다.

문제는 온라인을 통한 ‘취소’, 혹은 ‘일정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있다.

신청 절차가 간편한 만큼, 취소 절차 또한 간편해야 하는데. 이번 행사는 인터넷을 통한 취소가 불가능했다.

이와 관련, 기자는 일정에 변동사항이 발생해 주최 측에 전화로 일부 탐방 일정 취소를 문의했다. 주최 측은 취소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막상 탐방 날이 되자 행사 참여자들에게 전달되는 안내사항 문자가 기자에게도 전달됐다. 취소가 제대로 접수되지 않은 듯해 당황스러웠다.

문제는 또 있다.

‘무료’ 행사에서 ‘노 쇼(No Show)’는 매우 흔하다.

특히 이번 '불의 숨길'은 예약금을 걸거나 참가비를 내는 행사가 아니어서, '노 쇼' 발생이 쉬운 구조다. 무조건 예약부터 잡아놓고 막상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흔한 것이다.

기자는 9월 12일 오전 11시 ‘돌과 생명의 길’을 신청해 걸었는데, 기자와 함께 동행하기로 한 1인 외에 아무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예약자는 최대인원(20명)에 가까웠는데도 말이다.

혹여 다음 행사가 진행된다면, ‘노 쇼’에 대한 대책 마련과 ‘취소 및 변경’ 절차를 간소화시켜야 하겠다.

 

5. 행사명에 대한 아쉬움

'용암의 길' 코스를 걷는 참가자들의 모습. 이날은 비가 많이 왔지만, 참가자들이 꽤 많았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2020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행사 명이다.

이번 행사의 메인은 뭐니뭐니해도 ‘자연 탐방’이다.

하지만 ‘2020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행사명에는 그러한 내용이 드러나있지 않아 모호한 느낌이다.

세계유산과 관련된 강연을 하는 축제인지, 사진을 전시하는 축제인지, 공연을 하는 축제인지. 알 수가 없다.

‘제주 자연의 원형을 직접 방문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탐방이다’라는 내용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다른 이름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세계자연유산축제 제주 – 걷다, 보다, 느끼다’ 혹은 ‘세계유산걷기 - 제주 용암 길을 따라서’ 등 말이다.

'돌과 생명의 길'을 걷다 보면 마주할 수 있는 작품. 동굴의 석순 등 자연이 만든 작품을 대지 위에 모래로 재현했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좋은 프로그램들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다.

주최 측이 홍보에 소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로 시끄러운 국내외 사정 상, 대면 행사 위주의 축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쉬운 점은 있다.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행사 내용을 전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도민이 많았다. 그렇기에 주최 측은 단순 언론을 통한 광고 등으로 홍보를 그치지 말고. 7개 제주 유산마을의 주민들, 도내 학교, 자연 보전을 외치는 시민단체 등에 찾아가 더 적극적으로 행사를 알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제주 자연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주체는 제주도민이고,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제주 자연의 소중함을 알아야 진정한 ‘자연 보전’을 이룰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소소한 원칙들이 바로 섰을 때, 중요한 것들도 제자리를 찾아 가는 법이다.

‘세계유산축전’ 행사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정말 제주 자연 보전을 위한 발걸음에 한 획을 긋는 축제로 성장하길 바라며. 긴 후기를 마친다.

탐방 중인 참가자들.
'돌과 바람의 길' 코스의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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