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뒤굴, 미지의 세계에서 우주를 만나다
벵뒤굴, 미지의 세계에서 우주를 만나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09.19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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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하게 듣고, 말하다5] 벵뒤굴 특별탐험대

<2020 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대중에게 최초 공개하는 '벵뒤굴', 미지의 세계로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오롯하게 듣고, 말하다' 기획은 제주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연·전시 등의 문화 행사를 기자가 직접 보고, 체험한 내용으로 꾸며집니다.

이번 기사는 다섯 번째 체험으로, '2020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프로그램 중 벵뒤굴 특별탐험대에 참여한 내용입니다.

#2020 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2020 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프로그램이 열리는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아마 많이 힘드실 수 있어요. 괜찮겠어요?”

<2020 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프로그램 중, ‘벵뒤굴’ 특별탐험대 취재 가능 여부를 주최 측에 문의했던 날. 관계자가 조심스레 꺼낸 말이다.

무엇이 그리 힘들까 물으니 “벵뒤굴 내부에 매우 협소한 구간이 있어 길이 험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좀더 쉬운 코스로 취재 방향을 바꿀까, 고민하던 찰나. 이어지는 관계자의 한마디.

“하지만 벵뒤굴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방문해볼 가치는 분명 있을 겁니다.”

그렇게 기자는 벵뒤굴로 향했다.

 

#가자, 벵뒤굴로

<2020 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벵뒤굴’ 탐험대원들.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앞, 보호장구로 무장한 채 대기 중이다. 

기자가 참여한 특별탐험일은 9월 11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다.

“헬멧과 장비부터 착용하시고요. 동굴 내부가 상당히 어두우니 랜턴 불이 잘 들어오는지 꼭 확인하시고, 불량품인 경우 말씀하세요.”

‘특별탐험대’라는 이름이 꽤나 거창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급되는 사전 장비를 보니 납득이 간다. 전신 수트부터 무릎과 팔 보호대, 손목 보호대, 장갑까지 착용하고 나면 어딘가 먼 곳으로 여정을 떠나는 듯 비장한 기분마저 든다.

“벵뒤굴에서 ‘벵뒤’는 들판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인데요. 비교적 평탄한 용암대지에 형성된 굴이라 ‘벵뒤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정희준 제주자연환경해설사협회장

제주자연환경해설사협회 정희준 회장의 말이다. 정 회장은 이번 탐험대의 해설사를 자처해 맡았다.

정희준 제주자연환경해설사협회장.

“벵뒤굴은 동굴 총길이가 4481m로, 상당히 복합한 미로형 동굴인데요. 전세계를 둘러봐도 이처럼 복잡한 유로를 가진 미로형 용암동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여러분은 곧, 많은 학자들이 한번쯤 탐험을 꿈꾸는 이 동굴을 민간인 최초로 탐험하시게 될 겁니다” /정희준 회장

그의 말처럼 이번 벵뒤굴 특별탐험은 세계유산축전을 통해 기획된 ‘최초의 민간 공개’ 프로젝트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탐험을 앞둔 이들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하다.

 

#미지의 숲을 걸어서, 미지의 세계로

벵뒤굴로 향하는 숲길. 삼나무가 곧게 뻗었다.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차를 타고 약 10여분 이동해 내린 어느 숲길 앞. 여기서부터 벵뒤굴 입구까지 걷기 시작한다.

빗소리에 취한 채 우거진 숲길을 20여분 걷다 보면, 곧 벵뒤굴 입구가 나온다. 특별탐험대는 여러 갈래 벵뒤굴 입구 중에서도 2입구로 불리는 곳으로 들어가 3입구를 지나 1입구로 나오는 코스를 경험한다.

벵뒤굴의 23개 입구 중 어느 한곳.

“벵뒤굴은 곳곳에 입구가 배치해 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입구만 23개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들 중 3개 입구를 지날 텐데요. 이곳들 또한 평소에는 보호를 위해 공개제한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문화재청장의 허가가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는 소중한 세계자연유산이에요. 따라서 동굴 내부에 들어갔을 때, 벽면을 만지거나 하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죠?” /정희준 회장

오랜 시간 보전되어 온 동굴 내부 훼손을 방지해야 한다는 정 회장의 신신당부를 가슴에 품고. 동굴 속 한 걸음을 시작한다.

 

#벵뒤굴은 반짝반짝 빛나요

벵뒤굴 탐험 중에는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천정이 매우 낮은 곳이 존재하기 때문.

“서두르지 말고, 조심히. 천천히요. 안전이 제일입니다.” /임수길 보조해설사

어두운 동굴 내부에서 앞 사람과 간격이 벌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런 탐험대원들의 맨 뒤에 서서 안전을 담당하는 이가 있다. 임수길 보조해설사다.

“천천히 가셔도 돼요. 우리 시간 많아요. 천천히 다치지 않게. 심호흡도 하시고요. 괜찮아요.” /임수길 보조해설사

방역 마스크와 동굴 내부 습한 공기가 더해져 숨쉬기가 힘든 상황이 혹여 큰 사고로 이어질까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그. 그 덕분에 조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동굴 속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에 눈을 돌릴 수 있다.

벵뒤굴 천정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박테리아. 금색, 은색, 흰색 등 다양한 색상의 박테리아를 관찰할 수 있다.

“여기, 천정에 반짝이는 것들 보이죠? 금가루 아닙니다. 은가루도 아니고요. 동굴 내부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빛을 받으면 이렇게 반짝반짝 아름답게 보이는 거예요.” /정희준 회장

어두울 땐 보이지 않다가 빛을 가까이 했을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동굴 속 박테리아.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동굴 천정의 모습에 심취할 때면, 정 회장이 한 마디 거든다.

“앞으로 오늘 탐험에서 원 없이 볼 수 있어요. 앞으로 가면 더 많으니 이만 이동해보죠.” /정희준 회장

 

#우주를 유영하다

벵뒤굴 내부. 사진으로 그 웅장함을 다 담을수 없어 아쉽다.

온전한 어둠 속, 암흑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어두운 밤 눈을 감으면 느껴지는 그런 어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말의 빛이 존재하지 않는 아주 짙고, 깊은 어둠.

벵뒤굴에는 그런 어둠이 있다.

“자, 이제 모든 조명을 끌 거예요. 여러분도 지금 꺼 주시고요. 제가 서서히 마지막 조명 밝기를 어둡게 하면서 우리는 온전한 어둠 속으로 빠져볼 겁니다. 혹시 폐소공포증이 있다거나, 호흡이 곤란하거나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시작합니다.” /정희준 회장

정 회장이 마지막 조명을 끄자 파도처럼 어둠이 온몸을 덮친다. 암흑이다.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암흑을 만끽하고 있으니, 세상에 나와 세계만 존재하는 듯하다.

벵뒤굴 내부. 용암이 지나간 길을 살필 수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용암이 흘러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미로처럼 얽힌 길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

똑, 또옥.

간헐적으로 들리는 물 떨어지는 소리마저 없었다면, ‘현실감’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을 순간.

우주 속, 혹은 심해 속을 유영하는 기분은 정 회장의 점등으로 이내 끝이 난다.

“이제 험한 구간이 나옵니다. 머리 안 다치게 조심하시고, 다시 걸어볼까요.” /정희준 회장

 

#태초의 자연 속에서, 태초의 모습으로

협소한 벵뒤굴 내부. 사람 몸통 하나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좁은 길을 기어서 간다.

벵뒤굴 곳곳에는 사람 하나 겨우 기어서 통과할 만큼의 좁은 길이 있다. 아니, 엄연히 따지면, '길 아닌 곳'을 탐험대가 길로 개척한 곳들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릎 보호대와 팔 보호대 덕에 그리 어렵지 않게 기어갈 수 있다.

그렇게 기어가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 어른이 된 뒤, 두 발로 걷는 것이 아닌, 꾸물꾸물 엎드려 기어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나.

태초의 자연 속에서,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보는 이 순간이 새삼 또 소중하다.

 

#행복을 원한다면, 자연을 찾아요

1시간 30분 가량 동굴 속 탐험을 끝낸 뒤 다시 밖으로. 탐험대원 모두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은 모습이다.

"어때요? 힘드시죠? 괜히 왔다 싶으신가요?" /정희준 회장

정 회장의 질문에 탐험대원 모두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아뇨, 좋습니다!"

벵뒤굴 내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이 밝기 나왔지만, 실제 내부는 상당히 어둡다.

‘아, 이것이 바로 행복이구나’ 느끼는 순간들. 일상에서 그리 흔한 순간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한다.

혹 행복 찾기에 막막한 이들을 위해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어쩌면 행복을 경험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연을 찾는 것에 있지 않을까.

용암이 지나간 길. 용암이 지나가며 울퉁불퉁한 돌을 만들었다.
박쥐가 매달려 있던 자리. 이 아래에는 박쥐 똥이 쌓여있다.
제주4.3때 벵뒤굴로 피신한 도민들이 고의적으로 동굴을 무너뜨렸던 흔적. 외부에 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조치다.
나무가 탄 흔적. 벵뒤굴 안에는 제주4.3을 피해 숨어 살던 도민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기자가 발견한 이 숯이 과거 4.3의 흔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동굴 깊숙히 들어가면 당시 사용하던 솥, 유리병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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