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제주 = 김은애 기자] 

지표에서는 막혔지만, 지하에서는 이미 흐르고 있다. 제주의 물은 언제나 땅 아래의 속살을 스치며 지나간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땅도, 속에서는 아주 천천히 다른 방향으로 변해갈 수 있다.
제주의 물 이야기를 하려면, 결국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논쟁을 해야만 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쉽게 간과되는 물의 흐름 말이다.

제주도내 일부 지역(제주시 외도·금산·삼양)에 대한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해당 지역에 오염원이 없어 해제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다.

여기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 동네엔 오염원이 없다니까, 그럼 문제없지 않나?”
표면만 보면 맞는 말이다. 게다가 보호구역 해제는 누군가의 재산권에서 오래 붙어 있던 족쇄를 풀어주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행정의 설명도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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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하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물은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길을 선택한다. 겉으로 단단한 대지라도, 직선의 길이라도, 그 아래의 물길은 자유롭다. 물이 가는 곳이 곧 길이 된다.

이 기사를 통해 짚는다. 제주도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주장하며 내세운 근거가 왜 허술한지, 그리고 왜 다시 검증이 필요한지 말이다.


 

① 보이지 않는 흐름이 드러내는 진실

제주의 대수층은 단단한 통이 아니다. 틈과 공극이 얽힌, 거대한 스펀지 같은 구조다.
연세대 및 제주연구원 공동 연구진은 2022년 논문(Nitrate vulnerability of groundwater in Jeju Volcanic Island, Korea,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을 통해 제주 지하수의 질산염 취약성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지하에 연결된 대수층을 통해, 오염이 확산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오염은 한 지점에 갇히지 않는다. 지하의 미세한 틈을 따라,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특정 지점에 ‘오염원이 없다’ 하더라도, ‘안전하다’ 확정짓기엔 이르다.


 

② 행정의 언어가 놓치고 있는 현실

행정이 말하는 ‘오염원 직접 유입 없음’은 눈에 보이는 표면 흐름의 이야기다. 그러나 지하수는 그런 단순한 구조로 움직이지 않는다.

KAIST 김호림 연구진의 2018년 연구(Spatial-temporal variations of nitrate levels in groundwater of Jeju Island, Korea:Evaluation of long-term(1993-2015) monitoring data)를 보자. 1993년부터 2015년 사이, 최대 20년간 제주 지역 지하수(4,835개 유정) 모니터링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산악 지역보다 저지대 농업 및 주거 지역에서 질산염(오염) 수준이 더 높았다.
반면 해당 연구가 분석한 '지하수자원특별관리구역 관측정'의 질산염 농도는 점차 감소 추세였는데, 연구진은 이를 두고 “제주의 지하수관리 조치의 효율성을 암시한다” 판단했다. 이 데이터는 상수원보호구역 자체의 수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 지하수 관리정책이 일정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연구에서는 "중산간 지역의 질산염 농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말한다. 연구진은 이를 “아마도 고지대로의 농업 지역 확장으로 인해 (오염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이 연구는 제주 전역의 지하수 경향을 분석한 것으로, 이번 해제 논의 대상 지역을 특정해 말하는 자료는 아니다. 하지만 제주 지하수의 구조적 특성은 지역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오염원이 없는 청정 지역이라도, 혹은 오염원이 특정 지표에서 차단되더라도, 지하의 연결 구조를 따라 오염이 ‘우회 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러 연구들이 같은 방향으로 증언한다.

이런 장기 데이터는 ‘오염원의 직접 유입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취지, 행정 주장의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③ 땅속의 길은 표면과 다르게 움직인다

제주의 현무암 지층은 용암이 식으며 남긴 공극, 균열, 그리고 다층의 클링커층으로 구성된다. 제주 곳곳의 용암동굴에는 나무뿌리처럼 뻗은 ‘가지굴’이 발달해 있어, 지하 공간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지하에서 물이 흐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구조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부산대학교 공동 연구(Response Analysis of Multi-Layered Volcanic Aquifers in Jeju Island to the 2011 M9.0 Tohoku-Oki Earthquake)를 보자. "제주 섬의 대수층 구조는 다층화돼 있으며, 지진이나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지하수 수위·전기전도도·온도 등이 층별로 다르게 반응했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는 제주도의 지하 구조를 밝힌다. 단일층 모델이 아니라 복수의 여러 층위가 결합돼 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제주의 지하수는 단순히 아래로만 흐르지 않고 ‘우회’하거나 ‘재분배’될 수 있다. 이는 ‘오염원 직접 유입이 없다’는 행정의 단정이 지하수의 실제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2012년 논문(Flow paths and mixing properties of groundwater using hydrogeochemistry and environmental tracers in the southwestern area of Jeju volcanic island) 역시 제주 지하수의 흐름을 ‘지표면의 경계와 일치하지 않는 방사형, 복합적인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

지도 위에서 안전해 보이는 경계라도, 지하에서는 상당 부분 무력화될 수 있다. 제주의 지하수는 균열과 공극의 틈으로 흐른다. 물길에 있어 100% 예측이란 불가하다.

더구나 제주의 상수원보호구역은 1970년대 주로 지정됐다. 지금처럼 땅속의 구조와 물길의 방식을 정밀하게 이해하기 전, 만들어진 틀이다. 이후 과학이 빠르게 발전했다. 제주 지하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땅속의 흐름이 인간의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가 반복해 말하고 있다.


 

④ 고지대의 오염이 저지대를 흔든다는 근거

연세대학교와 제주연구원의 공동 연구(Nitrate contamination of coastal groundwater: Sources and transport mechanisms along a volcanic aquifer)를 보자. 연구진은 이렇게 말한다.

“고지대의 질산염 공급원은 지역 지하수 재충전이 발생하는 현무암 대수층의 제한된 조건 하에서 해안 지하수로 운반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해안 대수층의 지하수 오염은 지역 및 지역 흐름을 모두 수용하는 지하수 시스템의 큰 그림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쉽게 풀어보면 이렇다. 제주도의 지하수 오염은 땅 아래 물길에 따라 이뤄질 수 있고, 고지대의 오염이 저지대로 이동할 수도 있다.

지하수는 느리지만 끈질기게 흐른다. 오염의 경로 또한 지역을 가르는 선을 무시한다. 따라서 ‘저기는 오염원이 없으니 안전하다’는 식의 단순화된 가정은 제주에서 매우 위험하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사실은 분명하다. 제주의 지하수는 단일한 경계나 단순한 흐름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런데도 최근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사안을 보면, 지하 물길 추적에 대한 논의가 배제되어 있다. 논의조차 되지 않으니, 과학적 우려(정말 안전한가)에 대한 답도 내리기 어렵다.

추적자 실험이든, 관측망 고도화든 당장 전 도 전역을 한 번에 뒤흔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해제 대상지 주변과 하류부를 중심으로, 단계적·표본적으로 조사해볼 필요성은 있다. 해제 이전에, 안전을 입증할 과학적, 객관적 근거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


 

⑤ 해제 전에 필요한 질문 하나: 안전한가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논의’가 아니라 ‘정말로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추정’이 아니라 ‘검증’이다.

해제 논의에 앞서, 추적자 실험(Tracer Test), 제주 곳곳 관측정의 실시간 수질 데이터 공개 등 물길의 실제 경로를 검증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지하 물길에 대한 실측·추적 없이 ‘안전성 검증이 충분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⑥ 보이지 않는 공공성의 무게

제주는 섬 전체가 하나의 지하수 몸체다. 누구의 땅 아래든 물길은 연결된다. 그럼에도 행정이 해제 논리를 ‘재산권 회복’으로만 좁히는 순간, 공공의 자원은 조용히 사적 경계 안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공공성과 안전의 기준을 행정의 의지로만 정할 것인지, 지하의 현실과 과학적 검증에 맞춰 다시 세울 것인지. 그것이 이번 사안의 핵심이다.

물은 경계를 모른다. 경계선을 긋는 쪽은 언제나 인간이다.
지금 진짜 필요한 것은 “직접 유입이 없다”는 단정이 아니라 “직접 확인했다”는 과학적 증거다.

덧붙이자면, 이번 결정은 특정 지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수원보호구역에 대한 기준이 한 번 조정되면, 같은 논리가 다른 보호구역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다. 이번 논의는 단순히 ‘부분 해제’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제주도의 물 관리 철학, 그 방향을 드러내는 첫 신호에 가까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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