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성산읍 주민자치회 위원 고기봉
서귀포시 성산읍 주민자치회 위원 고기봉

제주의 바다는 오래전부터 해녀의 숨결로 살아왔다. 해가 떠오르기 전 어둠을 헤치고 바다로 나서는 해녀의 뒷모습은 제주인의 강인한 삶과 공동체 정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숨비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바다의 변화와 함께 해녀의 공동체도, 해양 생태계도 위태로운 현실에 놓여 있다.

오조리의 바다를 비롯한 제주 연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해녀들의 물질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이제는 몇몇 어르신들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는 바다보다 도시를 택하고, 남은 해녀들은 점점 나이를 더해간다. 고령화된 해녀 사회는 단순한 직업군의 소멸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해녀는 단지 해산물을 채취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바다와 공존하는 지혜를 지닌 생태 관리자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해양오염은 해녀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소라와 전복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연안 개발로 갯바위 생태계가 훼손되고 있다. 예전에는 해녀들이 계절과 조류를 읽으며 자원 채취량을 조절했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이어갈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해녀들이 세대에 걸쳐 쌓아온 바다의 경험과 기술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곧 지역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신호이기도 하다.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그 이름만 남고 실제 현장은 점점 비어가고 있다. 보존의 이름으로 기념비를 세우는 것보다, 해녀들이 지속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해양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해녀의 삶은 단순히 과거의 전통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생태적 가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해녀의 전통지식과 공동체 운영 방식은 지속가능한 해양관리의 중요한 모범이 될 수 있다. 마을 단위의 해양보호구역 관리, 생태관광 연계 프로그램, 해녀학교 운영 등 실질적 지원책이 절실하다.

이제 우리는 해녀를 문화유산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녀 공동체를 지역의 생태 회복과 연계해 바라보고, 오조리처럼 해녀의 지혜가 깃든 마을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바다는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생명 터전이다.

사라지는 해녀의 숨결 속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생태적 지혜가 담겨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지키는 일은 곧 우리의 바다, 공동체, 제주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그 숨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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