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송규진 제주YMCA사무총장

송규진 제주YMCA 사무총장.
송규진 제주YMCA 사무총장.

제주특별자치도의 정책 브리핑이나 자료를 접하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제주형’이라는 수식어다. 제주형 OOO, 제주 맞춤형 OOO 등, 이 세 글자는 마치 제주의 특수성과 가치를 담보하는 ‘품질 보증 마크’처럼 사용된다.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특별자치도라는 법적 지위를 고려할 때, 제주만의 특화된 정책을 지향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제주형’ 정책들은 과연 그 이름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각 부서의 정책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지향점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문제와 몇 가지 단상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환경과 관광 정책의 딜레마다. 제주의 정체성과도 같은 청정 자연을 보전하려는 환경 부서의 노력과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관광 부서의 목표는 본질적으로 상충하기 쉽다. ‘제주형 환경보전’을 외치며 환경보전기여금 도입을 논하고, 일회용품 없는 섬을 만들자고 다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제주형 관광’을 내세워 새로운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이나 항공편 증설을 환영한다. 이는 마치 한 배의 선원들이 한쪽에서는 노를 젓고 다른 쪽에서는 닻을 내리는 격이다. 쓰레기와 하수 처리 용량이 한계에 부딪히고, 중산간의 난개발이 계속되는 현실은 ‘제주형’이라는 이름 아래 정책의 근본적인 자기모순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진정한 제주형 정책이라면 성장의 총량이 아닌, 제주가 감당할 수 있는 ‘수용력’의 관점에서 관광과 환경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다음으로 1차 산업과 미래 신산업 정책의 엇박자다. 감귤과 월동무, 수산업은 제주의 생명 산업이자 문화 그 자체다. 도청은 ‘제주형 스마트 농업’,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이야기하며 지원을 약속한다. 하지만 동시에 ‘제주형 미래산업’이라는 기치 아래 IT 기업 유치와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두 정책의 방향 모두 필요하지만, 문제는 이 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는 점이다. 농어촌의 고령화와 인력난은 심화되는데, 미래 산업의 과실이 1차 산업 현장까지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드론 기술이 농약 살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를 활용해 감귤의 당도를 예측하고 최적의 출하 시기를 조절하는 식의 실질적인 융합이 필요하다. ‘제주형’이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제주의 전통적인 강점인 1차 산업의 기반 위에 미래 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섬세한 정책 설계가 아쉽다.

마지막으로 도시계획과 교통, 복지 정책의 단상이다. 급격한 인구 유입과 관광객 증가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도심을 비대하게 만들었고, 교통지옥과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고질병을 낳았다. 제주도는 ‘제주형 대중교통 체계’를 수차례 개편하고 ‘제주형 주거 안정 정책’을 발표했지만, 도민들의 체감 만족도는 여전히 낮다. 이는 정책이 실제 도민들의 생활 동선과 필요를 깊이 있게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의 진정한 매력은 제주시의 아파트 숲이 아닌, 곶자왈과 오름을 품은 마을 공동체에 있다.

진정한 ‘제주형 도시계획’은 무분별한 팽창을 억제하고, 제주의 전통적인 공간 구조와 공동체 문화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복지 정책 역시 단순히 중앙정부의 정책을 따르는 수준을 넘어,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에서 오는 의료 접근성 문제,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관계 중심의 복지’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주형’이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편리한 구호나 막연한 지향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제주의 환경적, 사회적, 문화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안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이자 책임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각 부서의 칸막이를 넘어 ‘환경 총량’이라는 대원칙 아래 모든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동되고, 개발의 속도보다는 도민의 삶의 질을 우선하며, 제주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고 키워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진정한 ‘제주형 정책’의 모습이다. 제주도정은 ‘제주형’이라는 이름의 공허함을 채울 엄중한 책임과 비전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