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세상] <53>
화려한 자리 속에 가려진 고독함, 그리고 리더의 무게
리더 자리의 등극과 수행. 많은 이들이 바라보는 이상향 중 하나다. 말단부터 단계를 착실하게 거치든, 대내-외적인 평판 등에 의해서든 리더 자리의 상징성은 개인에 크나큰 훈장이나 다름없다. 각자 성향과 스타일을 유지하되 주변 환경이나 구색 등에 맞게 리더로서 미래를 그려가는 로드맵을 그려나간다. 그러나 모든 보직에 부여된 책임과 책무, 의무 등은 리더의 괴로움을 야기한다. 어떠한 상황에서 판단과 결정을 명확하게 내려야하는 것은 물론, 구성원 관리와 효율적 업무 수행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등도 필수적이다. 또, 주변이나 조직, 집단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되는 부담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육체,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이게 리더 자리가 주는 무거운 어깨의 짐이다. 스포츠 팀의 감독직은 그야말로 ‘3D’ 직업 중 하나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감독직을 수행하는 로망 실현에도 매 순간 성과에 대한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따른 고독함은 일반 직종보다 우월하다. 비정규직 신분에서 고용 불안, 팬들의 기대치 충족 등의 요소들도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를 놓고보면 화려함 속에 비춰진 어두움을 드러내는 격과 다를 바 없다. ‘국민타자’ 이승엽(49) 두산 베어스 감독의 자진 사퇴는 리더의 고독함을 드러내는 사건과 같다.
모두가 리더를 꿈꾼다. 리더 자리가 각계분야에서 영향력을 인정받는 지표이기에 그렇다. 먼저 축적된 개인 커리어와 함께 가지고 있는 탈랜트를 토대로 리더 자리의 청사진을 바라본다. 가진 탈랜트와 스타일, 성향에 맞게 리더 직함에서 발전을 꾀하는 레퍼토리가 머릿속에 가득하다. 모든 조직과 집단들도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인물을 리더로 점찍으면서 업그레이드의 중책을 맡긴다. 이를 통해 상호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꾀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다름아닌 리더 자리의 무거움에 있다. 단순히 근속 연수와 쌓은 업적 이외 주변 지원과 지지, 대내-외적 지위의 평판 등을 바탕으로 리더에 오르지만, 모든 판단과 결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감은 일반 보직과 비교하면 상상 그 이상이다. 이에 대한 모든 부분을 안고가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실제로 리더 자리에 오르고도 세간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따가운 눈총 세례가 이어진다. 원하는 성과 쟁취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오너들의 의식, 주변 구성원과 불협화음 등의 종합세트가 빚어내는 일들도 허다하다. 말 그대로 총알받이다. 그만큼 리더 자리는 고달프다.
스포츠 팀에서 리더는 감독이다. 특정 파트에서 주어진 롤을 수행하는 코치와 달리 감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범주가 광범위하다. 취약 포지션 선수 영입을 필두로 경기 라인업 구성,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등의 체크가 쉼없이 이뤄진다. 한 시즌은 물론, 그 이후까지 팀의 스타일 확립, 팀 방향성 구축 등의 로드맵을 되새기고 표출하는 부분도 감독이 짊어질 몫이다. 한마디로 모든 사항을 체크, 판단하고 용단을 내려야되는 고충이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고용 문제에 있어서는 일반 직장인들과 스포츠 팀의 감독직은 결이 다르다.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자리 보존이 되는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스포츠 팀의 감독은 ‘파리 목숨’ 신세다. 아니 파리보다 못한 개미 목숨 신세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원하는 성과 쟁취가 고용 연장의 핵심인 비정규직 신분에서 조직과 집단이 부합하는 성과 쟁취는 감독직 연명의 핵심이다. 계약기간 안에 성과를 내야되는 압박감에 늘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성과가 나지 않으면 입맛대로 감독을 내치는 국내 스포츠의 동향에 팬들의 비난의 화살도 매섭다. 팀의 중-장기적 플랜 부재를 필두로 다른 요인의 문제가 나타나고도 감독에 책임의 프레임을 씌우는 이중적 잣대는 감독직 수행에서 총알받이의 고단함을 더 부채질한다.
2022년 10월 두산과 총액 18억원(계약금 3억원+연봉 5억원)에 3년 계약을 맺으면서 두산 제11대 사령탑에 취임한 이승엽 감독의 사례가 그렇다. 현역시절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맹위를 떨쳤던 이 감독이지만, 현역시절 커리어와 명성, 리더 자리로서 커리어와 탈랜트 분출 등은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삼성 색채가 짙은 이 감독의 두산 감독 취임은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2022년 김태형 감독(現 롯데 자이언츠 감독)과 8년간 동행을 마치고 새 시대를 열어젖힐 적임자로 이 감독을 점찍은 부분에 쇼킹함은 더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했다. 바로 이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에 있다. 2017년 현역 은퇴 이후 SBS 해설위원을 필두로 대내-외 활동을 활발하게 가져가면서 동분서주했지만, 지도자 커리어는 2022년 JTBC 야구 예능프로그램 '최강야구‘ 감독직이 전부였다. 화제성이 짙은 예능프로그램과 달리 KBO리그는 매 순간이 생야생이다. 야구라는 매개체를 가지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엄연히 본질이 다르다. 144경기의 장기 레이스에서 경험과 운영능력 등이 필수적인 감독직의 무게감을 감안하면 코치 경험 없이 감독직을 수행하는 부분에 의문점이 짙을 수 밖에 없다. 당연히 ’하이 리스크‘에 가깝다. 제 아무리 현역시절 ’슈퍼스타‘로 군림했다고 하더라도 리더 자리에서 경험 부재는 치명타다.
세간의 우려 속에서도 두산 감독으로서 야심찬 항해를 연 이 감독이지만, 페넌트레이스와 포스트시즌의 행보는 극과 극이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간 한국시리즈 챔피언 3회, 준우승 4회를 이룬 휘황찬란한 업적의 흔적이 점차 희미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2년간 팀을 가을야구에 올려놓는 수완을 뽐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조기에 탈락하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2023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NC에 밀려 탈락의 쓴맛을 보더니 지난 시즌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T에 내리 2연패하며 사상 최초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업셋’의 희생양이 됐다. 무엇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가진 전력을 다 짜내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의 야심을 숨기지 않았지만, 투수 교체 타이밍과 투수 운용, 타선 구성 등에서 미진함을 나타내며 운영능력에 의문점을 절로 남겼다. 이어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에 따른 불펜 과부하가 반복되면서 ‘투마카세(투수+오마카세)’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생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베테랑 타자들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젊은 피 더딘 성장 등도 감독으로서 스타일 확립에 애로점을 야기했다. 이에 2023년 시즌 홈 최종전 직후 홈팬들로부터 야유를 들은 것은 물론, 지난 시즌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2연패 직후 팬들의 거센 비난 세례가 이어졌을 정도로 파장은 엄청났다.
올 시즌이 3년 임기의 마지막 시즌인 이 감독과 두산에게는 와신상담할 수 밖에 없는 시즌이었다. 가뜩이나 이 감독의 운영능력이나 지도력 등에 분노 게이지가 차오르고, 지난 2년간 와일드카드 결정전 낙마의 아쉬움이 짙은 와중에 팬들의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카드가 바로 높은 성적이다. 이는 이 감독의 감독직 연명과 두산의 팀 자존심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열쇠였다. 올 시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한 허경민(KT위즈)의 이적을 필두로 전력 출혈을 입었지만, 지난 시즌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제이크 케이브와 콜 어빈, 잭 로그 등 수준급의 외국인 선수들을 수혈하면서 기대치를 높였다. 새 외국인 선수들과 함께 기존 자원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도 하나의 무기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두산의 행보는 기대 이하였다. 에이스 곽빈과 필승조 핵심인 홍건희를 비롯한 핵심 자원들의 부상 여파로 마운드 높이가 헐거워졌고, 투-타 밸런스 엇박자, 팀 색채와 스타일의 실종,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 등에 의해 시즌 개막부터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핀치 상황의 응집력 부족과 의문부호가 가득한 투수 운용, 더딘 젊은 피의 성장 등 이래저래 안되는 집의 전형을 모두 보이고 있다고 봐도 어색하지 않다. 9위에 맴돌고 있는 성적표가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다보니 두산 팬들의 이 감독을 향한 비난 민심은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지난 5월 31일과 1일 키움과 고척 시리즈에서 내리 0-1로 패하면서 키움에 창단 첫 이틀 연속 1-0 승리의 제물이 됐다. 급기야 지난 2일 이 감독이 자진 사퇴하면서 팀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게 됐고, 이 감독 개인에게도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감독직을 내려놓으며 지도자 1막의 엔딩을 씁쓸하게 맺기에 이르렀다.
어느 집단과 조직이든, 리더의 구상에 따라 움직인다.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통해 하나의 유기체가 되고, 리더는 이에 맞는 스타일과 색채 구현에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모든 일은 의도한대로 100% 흘러가지 않는다. 환경, 상황적 요인에 따른 돌발상황을 필두로 예측할 수 없는 요소와 요인들이 일에 꼭 내포되어 있다. 이는 집단과 조직은 물론, 리더 개인에게 숙명과도 같다. 더군다나 결과를 필히 내야되는 자리에서는 더 그렇다. 압박감과 강박관념 등이 늘 내-외면에 자리한다. 그래서 리더 자리가 화려함에 담긴 영광 속에서도 어둡고 고독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양면성을 나타낸다. 리더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되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그 이전 하나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다. 모든 결과를 리더에게 떠넘기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리더의 고과와 노고 등을 논하기 이전에 육하원칙에 입각해 조직과 집단의 방향성과 시스템 등은 물론, 중-장기적 마스터 플랜과 비전 등에 대한 제시가 명확해야 된다. 꼬리자르기 식으로 무조건 리더를 갈아엎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이너스만 잔뜩 초래된다. 이는 모든 집단과 조직들에게 필히 해당되는 사항이다. 개선과 자성 없이 리더를 총알받이로 내모는 악순환이 지속되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을 유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