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세상] <51>
입사 동기의 특별함, 상호 발전을 위한 동력
일반 직장인들의 세계에서 입사 동기는 뇌리에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한다. 살벌한 사회 구조와 환경에 내던져지면서 상호 간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입사 동기다. 제 아무리 직장 동료가 가까운 관계로 거듭나는 일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님에도 수직적인 상하 관계의 ‘희노애락’을 호흡할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많은 직장인들에게 입사 동기의 특별함을 불러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입사 동기라고 해서 다 관계가 원만한 것은 아니다. 가치관과 성향, 특색 등에서 상호 간 코드가 모두 일치되지 않기에 그렇다. 그런데 운동선수의 세계에서 입사 동기는 일반 직업군에서 입사 동기와 결이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고, 각 종 대회에서 매치업 등의 요인들로 인해 프로 선수로서 입사 동기가 된다. 그러면서 쌓이는 추억과 친밀도의 깊이는 확실히 단단하다. 서로 일면식이 없이 입사 동기가 되는 일반 직장인들과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프로 입단 동기이자 소문난 ‘찐친’ 관계인 이정후(27·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김혜성(26·LA다저스)의 빅리그 무대 활약은 머나먼 미국 땅에서 상호 발전과 동기 간 선의의 경쟁을 더 흥미롭게 부채질한다.
사람 인연은 참 흥미롭다. 태어나서 유아기와 유년기 때부터 관계 형성을 도모하는 특성은 어떠한 상황이나 코드 등에서 형성되는 인연이 상호 간 관계를 더 두텁고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하물며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쌓인 정이 친밀도 향상의 씨앗이 될 정도다. 특히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기로 접어들 때 많은 이들은 다양한 요인들로 상호 간의 연을 맺는 빈도가 많다. 먼저 노동 시장 진출을 위한 각 종 대외 활동을 거친다. 대외 활동과 함께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각자 연이 생성된다. 친밀도가 쌓이면서 깊이가 더해지거나 혹은 그저 스처지나는 연으로 남는 것은 나중 문제다. 사람마다 코드, 성향 등이 제각각이라 그렇다. 이에 따른 에너지 소모의 온도차 역시 편차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래도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많은 이들이 각자만의 방식대로 대외 활동을 거치는 것이 직업군 형성의 한 기착지라는 것이다. 대외 활동을 바탕으로 맺어지는 연이 동종 업계 종사로 이어지면서 각자 비즈니스 공유, 상호 친밀도 향상 등을 도모한다. 이 중 입사 동기는 모든 이들에게 직업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상호 간 일면식이 없거나 학연, 지연, 혈연 등에 의해 얽히고설킨 연이 입사 동기 신분이 되면서 관계가 쌓이고 서로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가는 단계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이 IMF로 국가 위기에 허덕이던 1998년 8월(이정후)과 1999년 1월(김혜성)에 태어난 이들의 연도 동료 ‘애’를 통한 서로 발전이 입사 동기의 애틋함을 절로 키웠다. 휘문고(서울. 이정후)와 동산고(인천. 김혜성) 시절부터 탑클래스 유망주로 칭송받은 이들은 고교 3학년이던 2016년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에 나란히 출전하면서 서로 친밀도를 키웠다. 고교시절까지 유격수로서 정교한 타격과 컨택, 선구안 등으로 맹위를 떨친 이정후와 폭발적인 주루플레이와 센스, 빼어난 타격 능력 등으로 각광받은 김혜성의 특색은 시장 가치 향상에 큰 플러스 알파였다. U-18 대표팀에서 ‘키스톤 콤비’로 짝을 이루면서 파트너십을 이룬 이들은 2017년 넥센 히어로즈(現 키움 히어로즈) 입단과 함께 자연스럽게 입사 동기가 됐다. 먼저 이정후가 당시 각 지역 연고팀 우수 자원들에게 주어지는 1차 지명 제도로 입단하자 김혜성이 2차 1라운드로 부름을 받으면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프로 입단 이후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전향한 이정후와 달리 김혜성은 데뷔 첫 시즌 김하성(現 템파베이 레이스)을 비롯한 선배들의 야성에 가려 벤치 신세를 지면서 프로 무대의 높은 벽을 절감했지만, 함께 시너지 효과 창출까지 걸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데뷔 2년차이던 2018년부터 베스트 멤버로 고정되면서 팀 코어 지탱의 한 축을 도맡았고, 20대 젊은 나이답지 않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지칠 줄 모르는 열정, 프로페셔널한 자세 등으로 소속팀을 넘어 한국 야구의 대표 자산이 됐다. 서로 존재를 통해 동기부여를 촉진하면서 발전적인 방향을 잃지 않는 이들의 프로페셔널함은 많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핵심 수단과도 같을 정도다.
함께 뛴 6년 동안 놀라운 퍼포먼스를 뽐내며 KBO리그 정상급 스타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이들은 1년 간격으로 태평양을 건너면서 새로운 도전을 마주했다. 다름아닌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이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야구 유망주들이 즐비한 것 뿐만 아니라 로스터 진입 자체가 살벌함 그 자체인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경쟁력을 표출하려는 욕구는 이들의 도전 의식을 더 깨웠다. 2017년 고졸 신인 야수 최초의 144경기 전 경기 출전과 함께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정후와 2년차 때부터 빼어난 퍼포먼스를 뽐낸 김혜성의 탈랜트와 특색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군침을 절로 돋궜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거둬들이는 이적료가 구단 운영 핵심 수단인 키움의 방향성은 이들의 도전 의식 장려를 절로 촉진시켰다. 먼저 이정후가 2023년 시즌 직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김혜성이 LA다저스와 3+2년 계약을 맺으면서 두 ‘찐친’의 빅리그 입성이 실현됐다. 공교롭게도 샌프란시스코와 LA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물론,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 구도의 한 축으로서 서로에 지고 못 사는 전투 태세가 충만하다는 점에서 관심도는 더욱 증폭됐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운동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큰 야심과 야망을 품고 타국 땅에 입성하고도 정작 리그 적응 실패, 환경 적응 어려움 등으로 조기에 보따리를 싸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빅리그 무대를 밟는 로망이 이정후와 김혜성에게도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었다. 지난 시즌 빅리그 첫 시즌을 맞은 이정후는 왼쪽 어깨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고, 김혜성은 초호화 라인업을 자랑하는 LA다저스의 생존 경쟁에 초반 마이너리그 신세를 졌다. KBO리그와 다른 환경과 성향 등의 적응, 메이저리그의 살벌한 로스터 경쟁 통과 등 연착륙을 위한 과제가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실제로 많은 동양인 메이저리거들이 세간의 많은 관심 세례 속에 빅리그 땅에 입성하고도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조기에 빅리그 커리어를 마감하는 이들이 수두룩한 핵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도 빅리그 무대의 여정이 지뢰밭이 될 여지가 다분함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빅리그 무대에서 가진 탈랜트 폭발을 위한 전투력 만큼은 이들에게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마침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라는 격언은 무장된 전투력과 맞물려 확실하게 껍질을 깼다. 부상에 따른 수술대와 마이너리그 신세의 시련을 전화위복으로 삼으면서 팀내 로스터 한 자리에 기어코 이름을 올린 것이다. 올 시즌 빅리그 2년차를 맞은 이정후는 팀의 핵심 외야수로서 정교한 컨택 능력과 폭넓은 수비 범위 등을 바탕으로 빅리그 연착륙 기반을 착실하게 닦고 있다. 빠른 배트 스피드와 타구 속도 등이 장타 생산의 위력을 더 배가시키는 중이고, 좌투수 공략에 대한 약점 또한 걷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지지와 팀 전체 신뢰도 등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지난 27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 원정 멀티히트를 비롯, 안타 생산을 꾸준하게 가져가는 생산성은 팀 화력의 큰 오아시스고, 수비에서도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까지 곁들이는 등 팀내 위상도 한껏 올라갔다. 미국 현지 팬클럽인 ‘후리건스(이정후의 후와 훌리건의 합성어)’의 열광적인 지지와 성원까지 곁들여진 이정후의 아우라는 말 그대로 눈부시다 못해 화려하다.
시즌 개막과 함께 약 1달간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친 김혜성은 빅리그 콜업과 함께 그간 분풀이를 제대로 쏟아내고 있다. 지난 4일(한국시간) 빅리그에 콜업된 김혜성은 정교한 타격 능력과 폭발적인 주루플레이, 뛰어난 야구 센스 등을 어김없이 뽐내며 강렬한 아우라를 심어주고 있고, 초호화 라인업의 틈 바구니 속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점차 다져가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지난 15일(한국시간) 애슬래틱스 전에서 빅리그 데뷔 첫 홈런과 멀티히트를 동시에 쏘아올리며 홈팬들에 큰 박수갈채를 이끌어 냈고, 이튿날에는 3타수 3안타 2볼넷 4득점 2타점 1도루로 활화산 같은 화력쇼를 달구며 팀의 19-2 대승에 힘을 실었다. 이후 중견수 겸업에 따른 시행착오와 팀의 살벌한 로스터 경쟁, 플래툰시스템 등에 의해 출전 기회가 다소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빠른 발과 센스, 주루플레이 등의 강점 만큼은 확실하게 가져가며 현지 팬들의 지지도를 높이는 중이다.
특정 직업군을 가지면서 입사 동기들과 출발점은 똑같다. 이는 승진과 출세 등 각기다른 이상향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본성 속에서도 숙명에 가깝다. 서로 같은 출발점에 입사 동기로서 각자만의 커리어를 향한 발전적인 방향은 서로에게 큰 동기부여다. 개인의 장기적인 로드맵에 있어서도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한다. 다만, 출발점이 같다고 이게 쭉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발전 속도가 제각각이다. 환경의 적응, 구성원과 융화 등 상대적 편차를 드러내는 요인들도 제각각이다. 인간 자체가 100% 완벽함을 갖출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각자 커리어를 축적하고 연명하는 과정을 거치고 서로의 곁을 떠나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입사 동기들끼리 서로 위치에서 좋은 경쟁 구도를 구축하고 발전을 그려나갈 때 ‘윈-윈’을 써내릴 수 있다. 이게 각자 커리어는 물론, 삶에 있어 엄청난 플러스가 되리라고 말이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최대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와 LA다저스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을 덧칠하는 이정후와 김혜성의 ‘아메리칸 데일리’가 그래서 흥미로우며, 이는 이 땅에 많은 입사 동기들에게도 큰 메시지를 전파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