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窓] 제주4.3 77주기 추념일, 43번 버스 타고 찾은 4.3평화공원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모처럼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탔다. 43-2번. 제주버스터미널을 출발, 제주국제공항을 거쳐 관덕정, 동문시장을 지나 제주시 원도심을 관통한 뒤 봉개동을 거쳐 제주4.3평화공원으로 향하는 버스다.

오늘은 제주4.3 77주기 추념일이다. 지난해까지는 해마다 취재 때문에 직접 차를 몰고 4.3평화공원을 찾았지만, 모처럼 여유있게 일찍 나선 터라 버스를 타기로 했다.

사무실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휴대전화의 지도 앱을 켜고 버스 노선을 확인해보니 한 차례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하지만 정작 버스 도착 시간이 30분이나 남았다. 버스정류장 3개 구간 정도 거리여서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만만치 않은 거리였지만 아침운동 삼아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차가운 봄바람 덕분에 오히려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 같았다.

이 43번 버스는 지난 2014년 4.3평화공원을 경유하는 1번 공영버스가 노선 번호를 43번으로 변경, 운행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제주시 담당 공무원이 제주4.3의 역사적 의미를 쉽게 연상할 수 있도록 노선 번호를 43번으로 바꾼 것이었다.

이후 2017년 8월 버스 노선이 개편되면서 343번으로 노선 번호가 잠시 변경됐다가 제주도의회 강철남 의원의 제안으로 3년 전부터 43번 노선 번호를 되찾아 운행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43-1, 43-2, 43-3번 3개 버스 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동광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소에서 탑승한 43-2번 버스는 절반 이상 자리가 차있는 상태였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30여 분이 지나 4.3평화공원 입구에 도착했고, 대부분 탑승객이 버스에서 내려 익숙한 발걸음으로 평화공원 내 위령제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머지 승객은 옷차림을 보니 절물자연휴양림까지 가는 것 같았다.

제주4.3 77주기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제주4.3 77주기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제주4.3 77주기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제주4.3 77주기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제주4.3 77주기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제주4.3 77주기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평화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유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4.3평화공원을 찾았을 때는 보지 못하던 광경이다.

추념식 취재를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찾아보는 곳이 행불인 묘역이다. 이미 상당수의 유족들이 아직 행방조차 찾지 못한 가족들을 찾아 장만해온 과일과 떡, 술을 진설해놓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둘러보던 중 어르신 한 분이 혼자 표석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여쭤보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동생 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말벗이라도 해드릴 겸해서 곁에 앉았다.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가 고향인 김영희 어르신(84). 어렸을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어디로 끌려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40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 생일 날짜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4.3 때 할아버지, 고모도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몰라”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불인 묘역에서 만난 김영희 어르신. 4.3 당시 할아버지와 고모가 돌아가셨고, 당시 35세였던 아버지는 아직 어디로 끌려갔는지,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고 생일에 제사를 모셔왔다고 한다. /사진=미디어제주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불인 묘역에서 만난 김영희 어르신. 4.3 당시 할아버지와 고모가 돌아가셨고, 당시 35세였던 아버지는 아직 어디로 끌려갔는지,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고 생일에 제사를 모셔왔다고 한다. /사진=미디어제주

할아버지와 고모는 위패봉안실에 위패를 모셔놓고 있는데 아버지는 아직 유해도 찾지 못했다는 얘기를 하던 중 때마침 동생이 도착해 표석 앞에 과일과 떡, 술을 진설하기 시작했다. 멧밥이 세 그릇에 술잔도 셋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어렸을 때 돌아가신 오빠 몫이라고 한다.

어르신이 잔에 술을 따르려는데 다리가 불편하신 듯해서 선뜻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따라드리자 ‘기자가 아들 노릇 해줨신게’ 하면서 웃으신다.

인사를 드리고 행불인 묘역을 나오면서 유족들에게 채혈 안내를 하고 있는 곳을 잠깐 들렀다.

지난해보다 참여하는 유족들이 많아진 거냐고 물으니 “최근 다른 지역 형무소 터에서 발굴된 유해가 70여 년이 지나 가족들을 만났다는 소식에 참여가 조금 늘어난 것 같다”고 한다.

꼭 추념일이 아니더라도 소풍 삼아 다시 버스를 타고 4.3평화공원을 찾아오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제77주기 4.3 추념식 행사장을 찾은 유족들이 추념식이 끝난 후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제77주기 4.3 추념식 행사장을 찾은 유족들이 추념식이 끝난 후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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