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찰 ‘호언’ 동물실험‧실오라기…법원은 달랐다
제주경찰 ‘호언’ 동물실험‧실오라기…법원은 달랐다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8.05.19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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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범죄 혐의 소명 부족’ 구속영장 기각
“2009년 2월 1일 사망 추정 새로운 증거 아니”
경찰 ‘섬유, 유의미한 증명력’ 주장 인정 안 돼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2009년 2월 제주서 발생한 어린이집 여 보육교사 피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박모(49)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2009년 2월 발생한 제주 여 보육교사 피살 사건과 관련한 혐의로 지난 16일 경북 영주에서 체포된 박모(49)씨가 제주공항을 압송되는 모습(사진 위)과 제주지방경찰청(사진 아래 왼쪽) 및 제주지방법원 전경. © 미디어제주
2009년 2월 발생한 제주 여 보육교사 피살 사건과 관련한 혐의로 지난 16일 경북 영주에서 체포된 박모(49)씨가 제주공항을 압송되는 모습(사진 위)과 제주지방경찰청(사진 아래 왼쪽) 및 제주지방법원 전경. © 미디어제주

제주경찰이 본인들이 확보한 증거 등의 증명력에 대해 자신감을 피력했고 박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제주검찰 역시 이에 동조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제주지방경찰청은 2016년 2월 장기미제사건팀을 신설하고 같은 해 6월과 올해 1월 전국의 지방경찰청 프로파일러를 소집해 2009년 2월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여)씨 사건을 분석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9일부터 3월 2일까지 이씨의 사망시간 재 추정을 위한 동물 사체 실험을 벌여 이씨가 실종 당일(2009년 2월 1일)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을 얻어냈다.

당시에는 부검의가 이씨의 사망 추정 시간을 사체 발견 24시간 이내라는 소견을 내놓으면서 '실종 당일 사망했다'는 경찰의 판단과 엇갈려 수사에 난항을 겪은 바 있다.

경찰은 동물사체 실험을 통해 2009년 조사 당시 확보한 미세 섬유(실오라기)가 '유의미한 증명력'을 가진 것으로 판단했다.

제주경찰이 2009년 2월 8일 숨진 채 발견된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여)씨의 사망 시간을 재추정하기 위해 올해 초 시행한 동물사체 실험 모습. [제주지방경찰청 제공]
제주경찰이 2009년 2월 8일 숨진 채 발견된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여)씨의 사망 시간을 재추정하기 위해 올해 초 시행한 동물사체 실험 모습. [제주지방경찰청 제공]

숨진 이씨의 오른쪽 무릎과 어깨 등에서 당시 박씨가 입었던 남방의 섬유와 유사한 것이 발견됐고, 박씨가 몰던 택시 안에서 이씨가 입었던 옷(무스탕)의 안감(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돼 이씨가 실종 당일 박씨의 택시를 탔다고 본 것이다.

경찰은 또 자신들이 확보한 범행 현장 인근 CCTV 영상에 이씨의 사체가 발견되기 1주인 전인 2009년 2월 1일(실종 당일)께 박씨가 몰던 택시와 같은 종류로 추정되는 차량이 찍힌 점도 유력한 정황 증거로 봤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박씨에 대해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 지난 17일 오후 제주지검에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다음 날인 18일 오전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2009년 2월 1일 사체 발견 현장 인근 CCTV 화면도 ‘비슷한 차량’ 추정

피해자 몸에 뭍은 섬유‧피의자 택시서 발견 털도 ‘유사하다는 의미일 뿐’

제주지법은 그러나 경찰이 증명력을 자신했던 것들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한 과거 초동수사 시 이씨가 2009년 2월 1일 실종 당일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한 점에서 이씨의 사망 시점을 2009년 2월 1일께라는 감정결과를 새로운 증거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이씨의 사망 시간 재추정을 통해 경찰이 증명력을 부여한 미세 섬유(실오라기)에 대해서도 피해자와 피의자의 옷과 '동일하다'가 아닌 '유사하다'는 의미에 그친다고 밝혔다.

양수진 제주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이 17일 오전 본청 한라상방에서 2009년 2월 제주시 모 어린이집 여 보육교사 살인 혐의로 체포한 박모(49)씨에 대한 검거 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양수진 제주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이 지난 17일 오전 본청 한라상방에서 2009년 2월 제주시 모 어린이집 여 보육교사 살인 혐의로 체포한 박모(49)씨에 대한 검거 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경찰이 확보한 CCTV 영상에도 박씨가 몰았던 택시로 추정되는 차량이 촬영됐을 뿐 동일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법원은 경찰이 제시한 자료들이 박씨를 구속할 정도의 직접적인 증거로서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지난 16일 오전 8시 20분께 경북 영주에서 체포된 박씨는 체포 64시간여 만인 19일 오전 12시 53분께 풀려났다.

피의자 박씨 체포 64시간여 만인 19일 오전 풀려나며 “너무 힘들다”

9년전 장기미제사건 ‘직접적 증거’ 확보 전까지 범인 찾기 ‘오리무중’

박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입감됐던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나서면서 현장에 있던 취재진에게 "너무 힘들다"는 말을 남겨놓고 자리를 떴다.

박씨는 체포된 이후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부인해 왔고 지난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에는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이어진 '억울하시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오후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피의자 신분을 벗은 박모(49)씨가 19일 새벽 제주동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지난 18일 오후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모(49)씨가 19일 새벽 제주동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이에 따라 앞으로 ‘제주 여 보육교사 피살 사건’ 재수사 진행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구속영장도 발부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기각됐고, 기각 사유도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가 아닌, 피의자에 대한 ‘범죄 혐의 소명 부족’이기 때문이다.

제주경찰은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9년 전 발생한 미제사건에 대해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 재수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존 증거를 재분석해 추가 증거를 수집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고 밝혔다.

이어 “구속영장 기각이 사건 종결이 아니다”며 “앞으로 관련 증거를 보강해 사건 해결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하지만 2009년 2월 1일 오전 제주시 용담에서 사라져 1주일 뒤인 2월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씨를 살해한 범인 찾기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다시 미궁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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