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제주 = 김은애 기자]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이 제 미래이자 희망이에요.”
청소년의 이 말이 닿은 곳, 제주시 이도이동의 호꼼슬로 작은도서관. 23일 일요일 점심 무렵, 잔잔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책장 사이로 드나드는 발걸음마다 저마다의 사연과 기대가 스며드는 순간. ‘청소년들의 교육환경과 미래비전’을 주제로 제2회 청소년기자단 워크숍이 열린 날이다.
이날 행사는 호꼼슬로가 주최하고 사랑의열매, 한국교회2백만연합예배, 함께일하는재단이 후원했다.
워크숍은 강의실이 아닌, 도서관 아래 창고에서 먼저 시작됐다.
호꼼슬로는 정기적으로 필리핀에 헌옷을 보내는 기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은 헌옷을 고르고, 개고, 상자에 나눠 담는 작업이 진행됐다. 청소년기자단과 지역 학생들, 학부모가 자연스럽게 어깨를 맞댔다. ‘교육’과 ‘나눔’이라는 단어가 교실이 아닌, 낡은 옷 더미 위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여러 방식으로 논의됐다.
“지금 한국의 교육은, 아이들의 삶을 어디까지 책임지고 있을까.”
한주연 호꼼슬로 작은도서관장은 과거 독일의 농업·과학 교육 사례를 들며, 교육이 한 사회의 체질을 바꾼 경험을 짚었다. 천연자원이 부족했던 나라가 식량 문제를 극복하고, 산업 기반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 ‘교육’이었다.
이어 시선은 현재로 옮겨왔다. 입시 위주의 교육, 국영수 중심의 시간표, 학교 안에 들어온 ‘저녁 8시까지 돌봄’ 제도, 그리고 다시 밤늦게 이어지는 사교육.
“학교는 다니지만, 정작 배우는 곳은 학원인 기묘한 구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어른들이 눈에 띈다. 그 복잡한 구조 속에서 중심에 서 있는 건 결국 아이들이다.
한 청소년은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의 희망 진로, 좋은 대학을 위해 사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만큼 다양한 경험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호꼼슬로 작은도서관에서 자랐다고 소개한 제주대학교 사회복지 전공 허윤진 학생은 이 공간을 “사춘기 시절 정서적 안정을 지켜준 곳”이라고 말했다. 왕따나 차별 대신 서로를 돌보고, 함께 성장하는 법을 배운 곳. 그래서 그는 “우리 동네 앞 작은 도서관이 제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다시 말했다. 성적보다 자존감과 정서가 먼저라는 메시지였다.
워크숍 후반부에는 부모와 교육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 학부모는 “그동안 아이와의 대화가 ‘단어’였다면, 아이와 함께 한 공동체 활동 이후엔 ‘문장’이 오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학교 돌봄과 사설 학원 사이에 끼인 아이들의 긴 하루를 설명하며, “시간은 길어졌지만 여유와 관계는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교습소와 학원 관계자도 현장의 답답함을 전했다.
학교 돌봄이 전 학년으로 확대되면서, 아이들이 돌봄교실–학원–집 사이를 오가는 ‘이동의 하루’ 속에서 더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작은 도서관, 교습소, 시민단체가 함께 제도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마을 차원의 새로운 돌봄·학습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이날 호꼼슬로 작은도서관에서 오간 말들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어른들의 기준을 조금만 내려놓자.”
헌옷을 개던 손, 교육을 이야기하던 목소리, 복잡한 제도와 단순한 소망이 한 공간에서 만났다.
그리고 호꼼슬로 청소년 기자단의 노트에는 아마 이렇게 적혔을지도 모른다.
‘좋은 교육은 아이들을 덜 외롭게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외롭지 않도록, 곁에 있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