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송규진 제주YMCA사무총장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논란이 끊이지 않던 '제주형 간선급행버스체계(BRT)'의 문제점을 공식 석상에서 인정했다. 사전에 면밀한 준비와 도민 공감대 없이 성급하게 추진됐다는 세간의 비판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 오 지사는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을 놓쳤다"며 "부족했던 부분은 도민들에게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핵심 쟁점이었던 교통 혼잡과 인프라 미비(양문형 버스 미확보)를 이유로 BRT 확대 계획 보류를 선언했다.

늦었지만 지극히 다행스럽고, 올바른 판단이다. 행정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때로 그 정책을 추진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미 잃어버린 '양'이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우리'를 고쳐 더 큰 손실을 막겠다는 '망양보뢰(亡羊補牢)'의 자세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 '멈춤'과 '성찰'은 실패의 인정이 아니라, 더 나은 제주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위한 필수적인 궤도 수정이다.

무엇이 문제였나: 속도에 매몰된 현장

BRT 사업은 중앙 차로에 버스 전용차로를 만들어 정시성과 신속성을 확보하려는 제주의 핵심 교통 정책이었다. 방향성 자체는 옳았다. 오 지사가 인정한 문제점들은 이미 사업 초기부터 예견되었던 것들이다.

첫째, 현장 검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버스가 광양사거리에서 제주대학교 방면으로 우회전할 때 1차로에서 4차로까지 짧은 구간에 무리한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구조적 혼잡은, 시뮬레이션이나 세밀한 현장 검증이 있었다면 사전에 걸러냈어야 할 치명적 오류이다. 이는 탁상행정이 빚어낸 전형적인 부작용이다.

둘째, 소통의 '질'과 '태도'가 부재했다. 물론, 제주도 역시 사업 추진을 위해 여러차쳬 공청회나 주민 설명회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BRT는 본질적으로 자가용 운전자의 불편을 전제로 하는 정책이다.

핵심은 그 '불편'을 감수할 만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제주도의 소통은 '왜 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당신의 불편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득과 공감대 형성에는 부족했다.

동시에, 행정은 '차선이 줄어 불편하다'는 정책의 '필연적 결과'와, '광양사거리 우회전처럼 설계가 비현실적이다'라는 '치명적 오류'를 구분하지 못했다. 모든 반발을 '개혁의 저항' 정도로 치부하며, 정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던 현장의 타당한 지적마저 외면한 것이다.

'인정'의 가치와 '재점검'의 방향

오 지사의 이번 양해 표명은 단순히 책임을 시인하는 것을 넘어, 향후 제주도정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멈춰 서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보완하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재점검'의 내용이다. 이번 보류 결정이 여론 무마용 '시간 끌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원점에서 사업 전반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도민 의견 수렴을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서는 안 된다. 특히 가장 큰 불만을 제기해 온 자가용 운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되, 정책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그들의 불편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찾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BRT는 버스 이용자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전체 교통흐름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유기체다.

다음으로, 확대될 노선에 대한 '세밀한 현장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단순히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주행과 다양한 돌발 변수를 고려한 입체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광양사거리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성과는 성과대로 유지'해야 한다. BRT 도입으로 일부 구간의 버스 통행 속도가 빨라진 긍정적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명목하에 사업의 근간을 흔들기보다, 기존의 장점을 살리면서 문제점을 외과수술처럼 도려내는 정교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멈춤'은 '완성'을 위한 숨 고르기다

제주형 BRT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번 보류와 재점검 결정은 정책의 '폐기'가 아니라 '진화'를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 도지사가 직접 행정의 미흡함을 인정하고 도민의 양해를 구한 만큼, 이제 실무 부서는 그 진정성을 정책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지라도, 고치지 않는 것보다 백배 낫다. 잃어버린 도민의 신뢰를 되찾고, 제주도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중교통 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현명한 멈춤'과 '치열한 성찰'을 기대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제주의 교통 정책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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