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송규진 제주YMCA사무총장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제주의 스쿨존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스쿨존 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 시행 5년, 불법 주정차 과태료를 3배로 올렸지만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단속과 처벌 강화만 외치는 사이, 우리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을지 모른다. 바로 불법 주정차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현실 외면한 ‘전면금지’, 되려 불법만 양산
2021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스쿨존 내 모든 구역의 주정차가 전면 금지됐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강력한 조치였지만, 이는 현실을 간과한 ‘반쪽짜리’ 대책이었다. 스쿨존 불법 주정차의 상당수는 거주자들의 상시적인 불법 주차 외에, 자녀를 등·하교시키려는 학부모들의 ‘단기 정차’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비가 오거나 짐이 많은 날,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차량 통학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들에게 “잠시 아이만 내려주고 갈 테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불법을 감수하게 만든다. 실제로 제주시의 한 초등학교 앞은 등·하교 시간이면 아이를 내려주려는 차들과 학원 차량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다. 이는 단순히 시민 의식의 부재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아이를 내려줄 공간 자체가 없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불법 주정차의 ‘수요’를 흡수하는 해법, 안심승하차구역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안심승하차구역(Drop-off Zone)’이다. 이는 스쿨존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안심승하차구역은 등·하교 시간대에 한해 학부모 차량이 5분 이내로 잠시 정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지정 공간이다. 무분별한 불법 주정차의 핵심 원인인 ‘등·하교 차량 수요’를 합법적인 공간으로 흡수하는 원리다. 운전자는 더 이상 단속을 피해 학교 주변을 맴돌거나 위험하게 차를 세울 필요가 없고, 아이들은 지정된 안전 구역에서 승하차할 수 있다. 이는 교문 앞의 교통 혼잡을 줄여 다른 차량의 시야를 확보하고, 보행하는 아이들의 안전까지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문제는 제주도 내 스쿨존 340여 곳 중 안심승하차구역이 설치된 곳은 6.4%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미 일부 학교(이도초 등)에서 그 효과가 검증되었음에도, 대부분의 학교에는 적용되지 않아 수많은 학부모가 잠재적 법규 위반자로 내몰리고 있다.
금지’에서 ‘관리’로 정책 전환이 필요
제주 스쿨존의 주차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무조건적인 ‘금지’와 ‘단속’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수요를 인정하고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횡단보도 위나 교차로 모퉁이 등 악성 불법 주정차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제주도 내 모든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안심승하차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학교별 여건에 맞는 공영주차장 확충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스쿨존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주민들의 생활 공간이자 학부모들의 통학 공간이다. 무조건 막기만 하는 정책으로는 갈등만 커질 뿐이다. 불법 주정차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 수요를 양지로 끌어낼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만이 ‘주차장’이 된 스쿨존을 본래의 이름인 ‘어린이보호구역’으로 되돌리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