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교육봉사와 수리 등 활동 다양
15분 도시를 현실로 만들 마중물 기대

글 : 이혜인 청소년기자 (세인트 존스베리 아카데미 제주 11학년)

2020년 늦봄, 나는 제주도 자전거 일주에 도전한 적이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영어교육도시에서 출발해 중문, 강정, 서귀, 위미, 표선, 성산을 거쳐 반 바퀴를 돌았다. 그러나 성산일출봉에서 지쳐 대자로 드러누운 나는 결국 기권을 선언하고, 뒤따라오던 엄마 차에 자전거를 실었다.

길 위에서 마주한 청보리밭과 산딸기숲, 파도, 섶섬, 그리고 노을에 물든 바다. 남원 부근에서는 앞서 달려나간 동생을 잃어버리는 작은 소동도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든 순간은 마치 동화 같았다. 제주 환상자전거길은, 나처럼 그 길을 달려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기억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는 자전거 타기에 최적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국에서 자가용 이용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제주의 거센 바람과 날씨는, 자전거를 일상 이동 수단으로 삼기엔 쉽지 않은 조건이다. 등하교시에 자전거를 꾸준히 타는 것은, 자전거를 정말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제주도에서, 자전거에 대한 열정으로 모인 학생들이 ‘픽사이클(Fixycle)’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픽사이클은 2024년 3월 한국국제학교 학생 이지한, 임주안이 시작한 동아리로, 자전거를 통해 환경 보호, 자원순환, 재능기부, 교육기회 확장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페달을 밟아 균형을 이루고 앞으로 나아갈 때의 상쾌한 바람, 속도와 중력, 관성이 하나가 될 때의 짜릿함, 그리고 풍경과 하나 된 듯한 자유로움.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즐거움을, 사회와 나누고자 한다.

픽사이클의 활동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자전거 교육 봉사다.

지난 27일 토요일, 픽사이클 소속 학생들은 제주 시내 애향운동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주 자전거의 날’ 행사에 참여해, 어린이들에게 두발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법을 가르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행사 당일 아침 비로 인해 자전거 교육 봉사는 부득이하게 취소되었다. 동아리 학생들은 사전에 사회적기업 ‘BY100(대표 김형찬)’의 전문 지도자에게 자전거 강사 교육을 받으며 철저히 준비해 왔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픽사이클은 멈추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자전거 교육 보조 봉사를 이어갈 계획이며, 휘청거리던 아이가 처음으로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한다.

픽사이클은 자전거 수리 및 기부 활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떠나는 선배의 자전거, 키가 자라 더 이상 맞지 않는 자전거 등 사용하지 않는 자전거를 기증받아, 학생들이 직접 수리한 후 새 주인을 찾아주는 활동이다.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픽사이클을 통해 12대의 자전거가 동네에서 새 주인을 찾았고, 먼 나라 캄보디아에도 7대의 통학용 자전거를 기부하였다. 이 활동은 단순한 자원순환을 넘어서,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장하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픽사이클이 캄보디아에 후원한 자전거. 사진출처=(사)프렌드림
픽사이클이 캄보디아에 후원한 자전거. 사진출처=(사)프렌드림
올해 9월 20일 진행한 영어교육도시 제2회 무료자전거출장수리 행사.
올해 9월 20일 진행한 영어교육도시 제2회 무료자전거출장수리 행사.

픽사이클은 지역 사회와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제주수눌음지역자활센터(센터장 조승희)와 함께 ‘영어교육도시 제2회 무료 자전거 출장수리 행사’를 주최해 총 60대의 자전거를 점검하고 무상 수리했다. 또한 주민들이 기증한 175점의 물품은 수눌음가게 ‘요디’에서 판매되어 지역 자활을 위한 수익으로 이어졌다.

픽사이클은 한국국제학교에서 시작한 작은 동아리였지만, 지금은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제주 학생들까지 합류해 총 24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픽사이클이 활동하고 있는 영어교육도시는 2만4천여 명이 생활하고 있는, 모든 주요 서비스에 자전거나 도보로 15분 내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15분 도시’ 모델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15분 도시’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도시 계획 개념으로, 이동 거리 감소를 통한 탄소 배출 감축, 지역 공동체 강화,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15분 도시는 제주도에서도 현재 4개 시범지구를 선정해 보행 환경 개선과 스마트 정류장 등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영어교육도시도 여기에 포함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행정구역이 재편될 때까지 영어교육도시 거주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공식적인 주민 대표가 없는 영어교육도시에서 픽사이클은, 제주도에서 ‘15분 도시’를 현실로 만드는 필요한 마중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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