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아의 독서평론] <36>
– 임채성, 강영미, 김영란, 김연미, 고정국의 시조
표선 백사장 모래톱에 묻힌 이름들- 임채성의 <한모살>
진혼과 위무의 시학- 강영미의 <그 해 겨울의 파흔>, <아궁이>
만남과 이별의 시대- 임채성의 <표선>
작별하지 못한 이름들- 김영란의 <표선 백사장>
화해를 향한 SOS- 김연미의 <바다와 교신>
상생의 소리- 고정국의 <한라산 뻐꾸기>
표선 백사장. 눈부신 바다였다. 모래사장은 소설 속 주인공을 만난 듯 설레게 했고, 새벽 눈밭에 발자국을 먼저 찍으려 달려갔던 기억은 지금도 빛난다. 그러나 여고생이 되어 소설책을 함께 나누던 친구가 갑작스레 떠난 뒤, 바다는 돌연 달라졌다. 그의 영혼결혼식을 지켜보아야 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며, 그날 이후 표선바다는 더 이상 설렘의 바다가 아니라 상처의 바다로 남았다. 그렇게 각인된 장소성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내 가슴에 따라다닌다.
대학 시절 마주한 현기영의 ⟪순이삼촌⟫은 어린 시절의 기억 위에 또 다른 충격을 더했다.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와는 달리 성인이 되어 접한 참상은 훨씬 깊고 무겁게 다가왔다. 내 고향 표선은 그 순간부터 단순한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개인의 상처와 더불어 역사의 상흔까지 함께 감내해야 하는 바다로 자리 잡았다.
제국주의의 대립 구조와 분단 현실, 단독선거 반대 운동의 맥락 속에서 제주가 ‘학살의 섬’으로 낙인찍힌 역사는 단순한 지역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사적 격변 속에서 발생한 구조적 비극이었다. 제주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여수와 순천으로 이어졌다. 4·3의 현장은 표선을 비롯한 제주의 곳곳이었으나, 그 전후의 물줄기는 여수와 순천을 지나 남도의 골짜기로 번져갔다. 등푸른 물쌀은 섬 전체를 휘돌아 나갔고 그 물길은 제주해역을 건너 다시 역사의 증언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흔히 4·3을 형상화할 때 ‘진혼곡’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4·3은 진혼곡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역사이다. 진혼곡이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곡이라면, 남아 있는 자들이 77년 동안 겪어야 했던 상흔 또한 깊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상처를 넘어, 관계의 불신과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며 제주 공동체에 지금도 무겁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에 분석할 시편 중 강영미 시인의 두 편의 시는 초점 인물을 통해 그 특징을 드러낸다. 한 편은 총살당한 성할아버지를 기리는 목소리이고, 다른 한 편은 아들이 죽창에 찔려 목숨을 잃는 모습을 지켜본 외할머니의 오랜 고통을 담고 있다. 시인은 아버지의 부모와 어머니의 부모, 양쪽에서 모두 4·3의 참상을 마주하며 성장했다. 이처럼 4·3은 단일한 비극을 넘어 다층적인 삶의 흔적을 남긴 사건이다. 그렇기에 4·3의 시는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이면서 동시에, 남은 자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위무곡이어야 한다.
필자는 시집을 읽다가 ‘한모살’, ‘표선’, ‘표선 백사장’, ‘표선 바다’와 같이 고향 바다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지곤 한다. 특히 고향 표선을 배경으로 한 4·3 작품들을 대하면, 화자의 마음과 겹쳐져 그 상처의 기억을 함께 하는 동행의 길에 서게 된다.
임채성 시인의 <한모살>은 표선뿐 아니라 수망리와 의귀리까지 품어내며 잊힌 목소리들을 다시 불러냈다. 강영미 시인의 <그 해 겨울의 파흔>과 <아궁이>는 두 초점인물을 통해 죽은자와 살아남은자의 참상을 드러냈다. 임채성의 <표선>에서는 만남과 이별의 대서사가 4·3의 아픔과 겹쳐 진정성 있게 다가왔고, 김영란의 <표선 백사장>은 끝내 작별하지 못한 참상의 고통을 증언했다. 김연미의 <바다와 교신 중>은 제주인들 사이에 남은 불신의 매듭을 교신하며 화해의 손길 내밀었으며, 고정국의 <한라산 뻐꾸기>는 갈등을 넘어 상생의 시적 언어로 형상화했다.
이 시편들 앞에서 표선은 ‘백사장’이라는 보편적 이름보다, 피와 눈물이 스며든 ‘한모살’이라는 세 글자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 필자에게는 언제나 그리운 표선 백사장이다. 그 한모살의 노래를 울림에 따라 한 편 한 편 읽어가고자 한다.
표선 백사장 모래톱에 묻힌 이름들- 임채성의 <한모살>
임채성 시인의 네 번째 시조집 ⟪메께라⟫는 제주 4·3의 현장을 시조라는 전통 양식 속에 되살려낸다. 타지인이면서도 제주에 깊이 발을 담근 그는 직접 현장을 채록하고 증언을 시적 형상으로 전환함으로써 4·3의 아픔을 개인적 차원에 묶지 않고 공동체적 기억으로 확장시킨다.
시집 곳곳에는 학살의 흔적, 억울한 죽음, 남겨진 자들의 침묵과 고통이 절제된 언어로 담겨 있으며, 이는 제주도의 역사적 비극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상흔으로 자리 잡게 한다. 이러한 작업은 4·3이 결코 지역적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큰 물줄기를 타고 흘러 우리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실감케 한다.
특히 <한모살>과 <표선>은 표선 백사장 ‘한모살’을 중심으로, 4·3의 역사 속 영령들을 위한 진혼과 기억의 울림을 담아낸 작품이다. 여기서 ‘한’은 넓고 큰 모래밭을 뜻하는 제주어다. 그러나 표선 사람들에게 한모살은 단순한 백사장이 아니라 한(恨)이 맺힌 자리였다. 이곳은 4·3 당시 표선면과 남원면 주민들이 끌려와 희생된 대표적인 총살장이었으며, 가시리·토산리 등 표선면은 물론 의귀리·한남리·수망리 등 남원면 중산간 마을 주민들도 대거 희생되었다. 피신하던 가족 단위가 붙들려 어린이와 노약자까지 희생된 비극 또한 적지 않았다.
누구는 당캐라하고 / 누군 또 당포라던 // 넓디넓은 백사장에 화약 연기 자욱한 날 // 산 넘은 겨울바람은 / 칼끝보다 매서웠네 // 한라산 세명주할망 눈 감지 못한 바다 / 표선리와 가시리에서 토산리 의귀리 한남리 수망리 세화리 성읍리까지 매오름과 달산봉을 타고 내린 눈물들이 웃말케미 천미천 지나 남초곶 해신당으로 휘뚜루 마뚜루 흘러들어 포말로 흩어질 때 / 조간대 갯것들에는 피 냄새가 묻어있네 // 상군해녀 물질로도 / 건지지 못한 혼불 // 부러진 죽창 위에 지노귀굿 기를 달면 // 까치놀 서녘 하늘이 / 제사상을 진설하네 //
-임채성의 ⟪메께라⟫, <한모살> 전문
누구는 당캐라 하고 또 누구는 당포라 부르던 한모살. 표선 백사장이 총살장이 된 이유는 표선리 면사무소에 주둔한 군부대 때문이었다. 면사무소 앞에 임시 유치장이 설치되었고, 여기에 끌려온 주민 대부분이 이곳에서 총살당했다. 특히 군인들은 표선리 청년들로 조직한 민보단을 처형 도구로 삼아, 이웃을 죽창으로 찌르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민보단원들은 총부리를 들이대는 군인의 강압 속에 같은 주민을 해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이처럼 한모살의 참상은 결코 표선리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삶터를 잃고 모래톱 위에 쓰러진 피울음은 파도에 씻겨간 듯 보였으나,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았다.
임채성 시인은 이 표선의 상흔을 외면하지 않고 시편에 새겨 넣었다. 그는 “한라산 세명주할망 눈 감지 못한 바다”라 노래했다. 그렇다. 신들인들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겠는가. 그날의 백사장은 화약 연기로 뒤덮였고 겨울바람은 칼끝보다 매서웠다. 생사여탈권을 쥔 총칼 앞에서 아이와 노인, 여성까지도 예외가 없었다. 억울하게 쓰러져간 시신들은 바닷바람에 흩어졌고, 눈물은 오름을 타고 내려와 다시 한모살로 흘러들 만큼 참혹했다. 이러한 작품 속 내용은 세명주할망조차 눈을 감지 못했다는 구절을 환기시키며, 비극의 무게가 자연과 신화를 넘어 인간의 기억 속에 얼마나 깊게 각인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넓은 바다를 기어 다니는 갱이(게) 한 마리, 돌틈에 피어난 순비기꽃마저도 그날은 핏물에 물들었을 것이다. 상군 해녀들이 목숨을 걸고 수십 길 바닷속으로 내려가도 건져 올릴 수 없었던 영혼들, 그 억울한 넋들은 여전히 표선 바다에 스며 있다. “조간대 갯것들에는 피 냄새가 묻어있네”라는 시구. 실제로 바다 미물들에 흘러들어가는 핏자국을 바라봤던 한 주민은 그뒤 바다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증언도 있을 만큼 당시 바다가 얼마나 참혹했었는지 보여주는 시구이다.
종장에서 시인은 서녘 하늘에 물든 까치놀빛을 마치 제사상을 차려 올리는 장면처럼 그려낸다. 붉게 번지는 노을빛은 바다 속 이름 없는 죽음을 불러내어 하늘로 맞이한다. 이처럼 임채성의 시는 한모살의 죽음을 단순히 과거의 비극으로 남기지 않는다. 서녘 하늘의 까치놀빛은 하늘과 바다, 죽음과 삶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그 광경은 오늘 우리의 가슴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진혼과 위무의 시학- <그 해 겨울의 파흔>, <아궁이>
표선면 세화리 출신 강영미 시인의 시에는 4·3의 큰 줄기를 응시하게 하는 두 편이 있다. <그 해 겨울의 파흔>은 세화리 청년 16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할아버지의 죽음을 되새긴 기록이고, <아궁이>는 신풍리 마을에서 외아들을 잃은 외할머니가 평생 견뎌야 했던 삶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기억이다.
이 두 편의 시조에는 개인의 상처와 집단의 상흔이 교차한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외할머니의 상실은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4·3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파흔 속에 맞물린다. 강영미 시인의 부모 세대는 그 상흔의 직계에서 살아왔고, 시는 그 삶의 흔적을 증언처럼 되살린다. 4·3은 이렇게 개별 가정의 서사 속에 얽히고 겹치며 제주 곳곳 세대마다 이어지고 있다.
사뿐히 발 디뎌도 자꾸 지워져 갔네 / 한모살 가슴팍에 길게 쓰여진 파흔 // 바다를 밀어내면서 / 그해 겨울을 읽었네 // 팔월 땡볕을 넘겨도 목구멍이 서늘해 / 젊은 사진으로 남은 할아버지 발자국 // 여길까, 저기였을까 / 칠십 칠년 묻은 자리 // 진실을 비켜선 건 바다가 아니었네 / 마주 보지 못한 자의 짜디짠 침묵같은 // 물거품 쓸어 버리며 / 다시 쓰고 있었네
- 강영미, <그 해 겨울의 파흔> 전문
<그 해 겨울의 파흔> 의 화자는 표선 바다 앞에 오래 서지 못한다. 할아버지의 희생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와 시선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4·3이 일어나던 겨울, 세화리 청년 16명은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도시락을 싸 들고 나섰다. 단순한 작전 협조라 여겼으나 곧 표선면사무소에 억류되었고, 다음 날 표선 백사장에서 한꺼번에 총살당했다. 스무 살 남짓한 청춘들이었지만, 희생의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못한 채 역사의 어둠에 묻혔다. 그 열여섯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강영미 시인의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이 아픔 역시 공동체가 짊어진 몫임을 자각한다. 모래 위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는 “한모살 가슴팍에 길게 쓰여진 파흔”을 읽는다. 이는 77년간 응어리로 남아온 자국이며, 바람과 파도에 덮였다가도 다시 드러나는 모래의 결처럼, 청년들의 삶 또한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파흔은 결국 바다가 전하는 증언의 언어가 된다.
“팔월의 뜨거운 볕 속에서도 목구멍은 서늘하다”라는 시구는 시간이 흘러도 현장에 서면 스며드는 한기를 환기한다. 젊은 모습으로만 남아 있는 할아버지의 발자국은 특정할 수 없는 자리 속에 잠겨 있고 넓은 백사장은 그 불확실성을 더욱 부각한다. 바로 그 모호함 속에서 칠십칠 년의 시간이 겹겹이 퇴적되었음을 화자는 깨닫는다.
“진실을 가린 것은 바다가 아니었다.” 파도는 흉터를 덮고 있었을 뿐, 죄를 짊어진 것은 침묵을 강요한 권력과 말하지 못한 우리들이었다. 바다는 오히려 상흔을 되새기며 기억을 되돌려준다. 발자국을 따라 걷는 일은 지워진 자리를 다시 밟는 고통이자 남은 슬픔을 마주하는 일이다.
“마주 보지 못한 자의 짜디짠 침묵같은”이라는 시구는 학살을 저지른 권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공동체의 슬픔을 드러낸다. 화자는 끝내 “물거품을 쓸어버리고 / 다시 쓰고 있었네”라는 종장으로 나아간다. 이는 바다가 흔적을 덮었다가 다시 드러내듯 말하지 못한 아픔을 어루만지려는 태도이며, 동시에 16인의 영혼을 진혼하면서 화해의 언어를 모색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삼의 잔재는 <아궁이>에서 더 처절하게 그려진다.
고개 떨군 당신의 빙점을 기억해요 / 아들 잃은 그 밤부터 아침은 오지않아 / 불 앞에 쭈그려 앉아도 숨이 자꾸 식어갔죠 // 한 생 다 사른 날에 머리로 피가 솟은 당신 / 눈물도 재가 되어 전설처럼 굳어가요 / 끝끝내 못한 말들은 검불처럼 박혔네요 // 할머니 아궁이에서 우린 다시 불씨에요 / 태우고도 얼어붙은 시간 다 분질러 넣어 / 설설설 끓어오르면 당신 어서 오세요
- 강영미의<아궁이> 전문
고개를 떨군 채 웅크린 할머니의 모습은 한 집안의 비극을 넘어 세대를 건너 이어진 아픔의 형상이 되었다. 외아들을 총살로 잃은 뒤, 불 앞에 앉아도 숨은 식어갔고 삶은 재처럼 굳어졌다. 그 곁에서 화자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을 살아내야 했다.
민보단에 징발돼 보초를 서다 죽창에 쓰러진 젊은 아들, 그 하나뿐인 외아들을 잃은 장면을 목격한 할머니의 운명이 되었고, 그 상처는 가족의 기억 속에 깊이 박혔다. 화자는 어머니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자랐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흔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4·3의 고통을 체감했다.
시조 <아궁이>가 보여주듯, “끝끝내 못한 말들은 검불처럼 박혔”던 시간은 오늘까지도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다. 할머니의 아궁이는 단순한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죽음을 견디고 남은 자들이 다시 불씨를 일으켜야 했던 기억의 자리였다. 그래서 시는 얼어붙은 시간을 부서뜨려 넣고, 다시 끓어오르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목소리로 화해와 생명의 기원을 건넨다.
시집⟪돌고래가 지난다⟫에 실린 4·3 시편 <사월 둥지>를 함께 떠올리면, 아픔을 넘어서는 또 다른 결을 만난다. 둥지는 새 생명을 품고 날개를 기다리는 자리다. 시인은 그 둥지의 이미지를 통해 4·3의 비극을 고통의 언어로만 남기지 않고 상생과 회복의 언어로 돌려준다.
“내집 네집 문패 없이 / 낯빛들 환환 사월 // 울타리 걷어내고 / 같이 같이 앉은 꽃들 // 꿀풀꽃 / 둥근 화분에 / 제비꽃이 활짝 펴.”
- 강영미의 ⟪돌고래가 지난다⟫, <사월 둥지>전문
총살로 한꺼번에 스러진 세화리의 마을은 매년 음력 11월 16일이면 집집마다 제를 올리고 향을 피운다. 그날의 슬픔은 여전히 잔설(殘雪)처럼 남았으리라. 그러나 시 속에서는 꽃들이 울타리를 넘어 같이 앉아 있는 풍경으로 환치된다. “같이 같이 앉은 꽃들”은 아픔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꽃으로 전환된 기억 속에서 슬픔을 더욱 선명히 드러내는 동시에 서로를 품으려는 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시인의 평소 품성에서 베어진 언어들이 살아난다.
무엇이든 따뜻하게 감싸 안는 강영미 시인의 어법은 곧 기억과 상처가 언어 속에서 화해하는 자리를 열어준다. 그는 고통에 머무르지 않고 품어냄으로써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화해를 요청한다. 마지막 구절 “둥근 화분에 제비꽃이 활짝 펴”는 바로 그 표징이다. 닫히지 않은 상처 위에도 봄은 다시 돌아와 꽃을 피우고 그 꽃은 상생의 가능성을 함께 기대하는 우리들의 자리를 마련한다.
만남과 이별의 한모살- 임채성의 <표선>
만남과 이별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재의 무게를 감각한다. 제주 4·3은 한 개인의 사랑과 꿈이 집단의 죽음과 상실로 전환되는, 만남과 이별의 역설이 집약된 역사의 현장이다. 임채성 시인은 <표선>에서 이러한 존재의 조건을 만남과 이별로 환치하며 4·3의 아픔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켰다.
1.
만났네, / 한 여인을 용궁올레 길목에서 // 섶 풀린 물소중이 높하늬에 나풀대며 / 볼우물 미소를 캐던 그는 분명 용녀였네 // 곰살궂은 목소리엔 해조음이 묻어났네 / 귓바퀴에 찰박대는 물과 뭍의 이야기를 / 이어도 숨비소리에 내 심장은 뜨거워지고 // 맑디맑은 눈동자엔 수평선이 어리었네 / 깊이 모를 동공 속에 윤슬을 풀어놓고 / 밤에는 별을 끌어와 은하수로 수놓으며 // 먹보말 한 줌에도 배부르던 신접살이 / 초가지붕 낙숫물소리 꽃잠을 깨고 보면 / 수선화 노란 꽃망울 봄을 물고 있었네
2.
떠났네, / 그해 사월 갈마바람 드세던 날 // 어질머리 물마루에 테왁만 남겨둔 채 / 간다고 아주 가리까, 물어볼 짬도 없이 // 남해용왕 부름 앞에 짧기만 했던 사랑 / 가슴에 구멍 뚫린 검은 돌담 올레 너머 / 세명주 할망당에도 문빗장이 걸렸네 // 햇살 환한 푸른 날도 파랑은 안다기에 / 갈매기 무동을 탄 물밑 소식 행여나 올까 / 망부석 하얀 등대는 그림자가 길어지고 // 억새도 머리 풀고 비손하는 상달이면 / 한모살 백사장에 피 토하며 우는 바다 / 하늘도 노을을 따라 함께 젖고 있었네
- 임채성의 ⟪메께라⟫, <표선>
임채성의 <표선> 1부를 감상했을 때, 필자는 어느새 맥락에서 벗어난 상상을 불러왔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바다 물질을 다니던 어머니의 해조음이 귓가에 울린 것이다. 가쁜 숨결 속에서도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던 시절, 어머니는 그 눈빛 속에서 아버지를 만나 별빛을 품고 행복을 꿈꾸셨으리라. 찢어지게 가난한 신혼살림도, 초가지붕을 타고 흐르던 낙숫물 소리도, 꽃망울을 터뜨리던 수선화의 노란 봄빛도 그 시절의 맑음을 머금은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그러나 <표선> 2부를 감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다는 더 이상 사랑과 환희의 삶을 노래하지 않는다. 사월의 거센 바람이 몰아치던 날, 해녀의 삶과 청춘의 꿈은 허망하게 끊어지고 만다. 물 위에는 고향을 지켜주던 테왁만 남아 있고 삶의 주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남겨진 것은 사랑하는 이들을 부르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상실과 허무였다. 검은 현무암돌담 너머 공동체의 문은 닫히고, 제의와 기도의 자리마저 끊어진 풍경은 곧 1948년 4·3 그날 한모살의 수많은 목숨들의 참상이었다.
그때의 바다는 돌아오지 않는 이를 끝없이 기다리던 유가족의 자리였다. 망부석처럼 서 있는 등대는 길어진 그림자로 슬픔을 드리우고, 억새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제를 올리는 여인의 몸짓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한모살 백사장은 노을조차 함께 울며 하늘마저 붉게 물들었다. 이는 총칼 앞에서 쓰러진 무고한 이들의 넋이 피와 울음으로 젖어 떠돌고 있는 영혼들을 화자는 부르고 있었다.
다시 1부로 돌아가 이 시를 읽으면, 용녀는 신화 속 존재나 한 개인의 어머니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물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해녀이자, 억울하게 희생된 제주 여성들의 얼굴을 동시에 품고 있다. 수평선을 가득 담았던 맑은 눈동자는 바다 위에서 청춘을 일구던 삶의 빛이었지만, 곧 폭력 앞에 스러져야 했던 희생의 눈빛들과도 겹쳐진다.
따라서 용녀는 곧 제주 공동체를 지탱해온 이들이다. 가난 속에서도 사랑을 꿈꾸던 신혼살림의 장면은 4·3의 총칼 앞에서 단절된 수많은 이들이 ‘생生’에서의 삶을 환기한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진혼곡을 듣는 듯 감정에 휩싸인다. 피와 울음으로 얼룩진 참상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단순한 기록이나 증언이 아닌 시의 언어로 형상화했기에 오히려 더 깊은 진정성이 전해진다. 나아가서 시적 화자가 노래하는 큰 줄기의 흐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났네”는 4·3 이전의 제주의 삶을, “떠났네”는 4·3 이후의 집단적 비극을 표징한다. 1부와 2부의 환치(換置)는 단순한 시적 전환이 아니라, 개별적 체험과 공동체적 역사, 삶과 죽음의 장면을 서로 맞바꾸어 보여주는 구조적 장치다. 이 환치는 ‘대화적 긴장’처럼 서로 다른 차원이 충돌하면서도 동시에 공명하는 효과를 낳는다. 즉 개인의 사랑과 공동체의 상실, 생의 환희와 죽음의 비극이 교차하며, 독자는 시적 음향 속에서 역사와 삶의 중층적 의미를 감각하게 된다.
이때 연시조라는 형식은 개별 시조의 닫힌 구조를 넘어 앞뒤의 시편들이 서로 반향하는 ‘순환적 구조’를 형성한다. 구조적 반복과 대립은 단절된 역사를 하나의 리듬 안에서 관조하게 만들며, 이는 곧 집단적 비극을 ‘기억의 음악’으로 전환하는 시적 힘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표선>은 4·3의 참상을 증언하는 동시에 삶과 죽음을 동시에 품어내는 시적 울림으로 승화된다. 연시조의 구조적 장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작별하지 못한 이름들- 김영란의 <표선 백사장>
4·3 항쟁 77주년에 발간한 김영란 시인의 시조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는 제주 4·3을 증언하고 기리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집으로, 개인적 기억과 공동체적 상처를 시조 형식에 담아 억울하게 스러진 넋들을 불러내고 위무하는 목소리를 전한다. 이 시집은 단순한 비극의 기록을 넘어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역사를 새겨내려는 윤리적 태도를 드러내며, 특히 ‘동백꽃’을 4·3의 죽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삶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기표로 사용한다. 절제된 언어 속에 응축된 참상은 증언–진혼–위무–화해라는 흐름을 만들어내며, 오늘의 독자에게 4·3의 윤리적 기억을 계승할 것을 요청한다.
짙은 보라의 표지 위에 흩어진 동백송이는 제주 4·3의 넋을 불러내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차갑게 떨어진 꽃송이는 쓰러진 생명을 증언하며 애도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 같다. 특히 시집에 실린 4·3 시편들은 시인이 오랜 시간 현장을 살피고 증언자들을 만나온 삶의 궤적 속에서 길어 올린 목소리다. 4·3 제의 제물을 맡아 준비하는 자리에서 품어온 김영란 시인의 삶이 녹아든 까닭인지 시편들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시편들 가운데 <표선 백사장>을 읽으며 내내 가슴을 후벼 팠던 것은 ‘P읍’이라는 낱말이 불러낸 아픔이었다. 그 단어는 곧 나의 개인적 기억을 건드리며, 그리운 ‘표선 백사장’을 떠올리게 하는 표식이 되었다.
바람의 손목을 / 물어뜯고 싶었어 // 명치를 때리며 / 밀려갔다 밀려오는 // 바다의 울음소리는 / 자꾸만 깊어지고 // 꽃다운 목숨들이 아무렇게나 스러지던 /피 읍이라고 했었어 피 읍이라 들었지 // 그 밤은 용서하지 마 / 잃어버린 밤들을 // 새하얀 도화지 같은 모래사장 한모살에 / 목 잘린 꽃송이 붉은 넋을 위로하며 / 더 이상 작별하지 못한 이름들을 새겼어
-김영란의 ⟪동백 졌다 하지 마라⟫, <표선 백사장> 전문
이 시를 접하는 순간 참혹했던 지난겨울이 떠올랐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듣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우리는 계엄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가슴에 받치며 떨던 사람들,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날밤을 지새우며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속 문장들이 내면을 울리던 그 무렵, 우리는 다시 국가 공권력 앞에서 공포스러운 사태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촛불의 힘으로 그 참사를 이겨내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필자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을 때 처음에는 설마 이 해수욕장이 표선일까, 하는 짐작에 머물렀다. 그러나 곧 필자의 친정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학살의 기억과 장면들이 겹쳐 떠오르며 내 고향의 이야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시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바람은 잡히지 않는 손목처럼 다가오고, 바다는 끊임없이 밀려오며 깊은 울음을 토해낸다. 그 울음은 억눌린 듯 점점 더 깊어져, 젊디젊은 목숨들이 무참히 스러져 간 자리를 환기한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속 기록처럼, “P읍 국민학교에 한 달간 수용된 뒤 지금은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군경 가족을 제외한 젖먹이 아이들까지 총살당했다”는 비극이 어렴풋이 되살아난다.
그렇다. 우리는 이 밤을 용서할 수 없다. 모두가 사라진 잃어버린 밤, 그 어둠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김영란 시인은 바로 이 밤의 참상을 품은 영혼들을 달래고자 시적 형상으로 다시 불러낸 듯하다. 그래서 사라진 생명들은 도화지 같은 모래사장 위에 흔적처럼 남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상흔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모래사장은 처음에는 순결하고 비어 있는 자리,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희망의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위로 피 흘린 흔적과 잘린 꽃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그 하얀 바탕은 곧바로 얼룩진 증언의 장소로 전환된다. 시 속에서 표현된 “새하얀 도화지 같은 모래사장 한모살”은 곧 “목 잘린 꽃송이”와 “붉은 넋”과 만나며, 하양과 붉음, 도화지와 잘린 꽃, 넋과 모래사장이라는 대비를 이룬다.
이처럼 상반된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며 긴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바흐친이 말한 ‘대비와 대립의 대화성’과 연결된다. 바흐친에 따르면 언어와 텍스트 속의 의미는 단일하게 고정되지 않고 서로 다른 목소리와 세계관이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된다. 즉, 모래사장의 ‘희망과 순결’이라는 목소리와, 잘린 꽃과 붉은 흔적이 지닌 ‘죽음과 폭력’의 목소리가 충돌하며 독자는 두 세계를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긴장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역사적 진실과 감정의 층위를 열어젖히는 다성적 의미 공간을 형성한다.
여기서 강조한 대화성은 단순히 인물 간 대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이미지, 상징, 기억이 겹치고 부딪히면서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시의 모래사장은 ‘비어 있음’과 ‘피로 얼룩짐’이라는 모순된 목소리가 교차하는 장이며, 바로 그 충돌의 자리에서 독자는 역사적 부조리와 사건의 부당함을 더욱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결국 김영란의 <표선 백사장>은 모래사장이라는 순결한 배경을 피로 얼룩진 증언의 장소로 바꾸어, 무고하게 스러진 생명들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낸다. 아울러 그 넋들을 위로하고 있는 시 한편을 남긴다.
“뭇매처럼 / 쏟아지는 / 부신 빛이 아려서 / 지천으로 봄까치꽃 / 온몸이 다 퍼렇다 // 하늘도 아래로 내려 / 꽃에 입을 맞춘다
-김영란⟪동백 졌다 하지 마라⟫, <꽃도 아픈 사월에> 전문
봄까치꽃의 퍼런 몸빛은 사월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은 넋의 형상처럼 다가온다. 눈부신 빛조차 상처로 스며드는 순간, 하늘이 꽃에 입을 맞추는 장면은 쓰러진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몸짓이 된다. 꽃은 피고 지는 생의 순환 속에서 다시 기억을 불러내며 “꽃에 입을 맞춘다.” 그렇다. 다시 불러낸 상처에 입을 맞추며 새로운 숨결이 깃들기를 바라는 화자는, 상처와 아픔을 넘어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담담히 드러낸다.
화해를 향한 SOS- 김연미의 <바다와 교신>
김연미의 <바다와 교신>은 지난한 표선 바다의 기억을 불러냈다. 여고 시절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전 농담처럼 남긴 “내 무덤가에 꽃 한 송이”라는 말은 지금도 아프게 남아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백사장에 꽃을 놓으며 그 부재를 애도한다. 그래서 이 시가 고맙다. 詩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특정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힘을 갖는다. 무뎌진 감정과 감추어둔 아픔은 시 속 특정한 좌표들이 열리는 순간 다시 불러내어진다.
당신은 늘 반짝이죠 / 눈이 멀 것 같아요 // 당신을 볼 때마다 활성화된 파란 가슴 / 하얗게 웃던 치아가 파도치고 있어요 // 더 깊어졌네요 / 생각이 많은 눈빛 / 살다가 살다보면 문득 궁금해진 좌표 / 편집된 흔적을 찾아오던 길을 되돌아가죠 // 당신이 걸던 쪽으로 배를 띄워볼게요 / 추신된 그리움이 엉거주춤 걸린 오후 / 밀물에 검지를 대고 교신하고 있어요
-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늘 반짝이죠⟫, <바다와 교신> 전문
바다와 교신>의 시적 화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4·3을 둘러싼 역사적 현실과 맞닿아 있다. 시적 화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반짝이는 기억과 동시에 눈이 멀 것 같은 아픔이 겹쳐진 자리다. “활성화된 파란 가슴”은 단순한 개인의 정서가 아니라 4·3의 흔적과 맞닿은 집단적 울림이다. 하얗게 웃던 치아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장면은, 지워진 얼굴과 사라진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의 고향이 토산리인 점을 감안하면 시적 화자는 4·3 전후 토산리의 정황을 떠올리며 이 시를 쓴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당시 토산리 청장년들 100여명이 집단 연행되어 총살당한 사건은 긴 세월 동안 은폐되거나 침묵 속에 묻혀야 했다. 이러한 배경은 눈 위에 붉게 번지는 동백꽃 이미지와 겹쳐지며 비극의 기억을 환기한다.
그렇다. 살다 보면 문득 궁금해지는 좌표들이 있다. “편집된 흔적을 찾아오던 길을 되돌아가죠”라는 시구는 반어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니 바로 그 마음 상태로 돌아가자고 시인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추신된 그리움이 엉거주춤 걸린 오후 / 밀물에 검지를 대고 교신하고 있어요” 편집된 듯 사라진 기록을 찾아 되돌아가는 길은 곧 잊힌 이들의 삶을 더듬는 행위다. 화자는 배를 띄워 잃어버린 방향을 향하고, 오후의 그리움 속에서 밀물에 손가락을 대어 교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 모든 장면은 4·3 당시 총살당한 사람들과 흔적조차 지워진 역사적 현실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도 배경으로 드러낸다. 바다와의 교신은 사라진 존재와 이어지려는 절박한 마음이자 침묵 속에서도 응답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증언이 된다.
무엇보다 김연미 시인의 독창성은 언어의 결에서 드러난다. 그의 시조에는 교신, 활성화, 좌표, 편집, 추신 같은 단어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얼핏 차갑고 기호적인 낱말처럼 보이지만 종결어미 ‘요’와 맞물리며 그 안에서 고유한 울림이 생겨난다.
이러한 색채는 비단 <바다와 교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시조집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감성언어와 수학적 언어의 교차점에서 예기치 않은 선율처럼 번져 나가는 것 같다. 이질적인 단어들이 맞부딪히며 빚어내는 긴장은 독자의 감각을 천천히 흔들며 김연미 시인만의 독특한 언어의 결을 만나게 한다. 이 지점은 로만 야콥슨이 ⟪문학 속의 언어학⟫에서 말한 바 있는 ‘시적 기능’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언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언어 자체의 형식과 결, 낯선 배치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순간에 시적 기능이 작동한다. 김연미의 시조에서 감성적 언어와 기호적·수학적 언어가 불현듯 충돌하고 어울리는 장면은 바로 그 시적 기능의 발현으로, 언어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새로운 미적 질서를 창조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바다와 교신>은 언어가 지닌 긴장과 파열을 통해 우리를 잃어버린 세계의 좌표로 이끌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아픔을 품어안으며 새로운 화해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작년 겨울 싸락눈 휘몰아치던 날, 김연미 시인의 언어를 감상하며 마음을 함께했던 기억을 다시 꺼내 본다.
(생략) // 죽음을 설계하던 결 7 호 그물에 갇힌 / 일자형에 왕자 王字 형 동굴 그 가슴의 칼자욱들 / 수마포 말울음 소리가 동굴 깊숙이 들렸다 // 생략 // 밀물에도 잠기지 않는 그날의 흔적을 안고 / 괜찮다 괜찮다 하며 일렁이는 바다를 안고 / 당신은 아침을 향해 붉은 얼굴을 들었지 // 까슬한 가슴에도 생명을 키우는 당신 / 어둠보다 먼저 온 노을 한자락 타고 앉은 / 동굴 벽 푸른 고사리 손을 내밀고 있었다
-24년 정형시학 가을호, 김연미의 <당신의 가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부분
김연미의 시 <당신의 가슴속으로 들어갔습니다>는 성산일출봉 자락 수마포에 스며든 4·3의 상흔을 형상화한다. 결 7호 그물과 왕자(王字) 형 동굴의 칼자국은 죽음의 설계를 연상시키고, 말울음 같은 수마포의 소리는 동굴 깊숙이 메아리쳐 당시의 참혹함을 불러낸다. 시간의 삼투압으로 절여진 눈물과 물러설 곳 없는 흔적은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무릎 꿇은 존재들의 고통을 전한다. 밀물에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끌어안고 “괜찮다”를 되뇌는 목소리는 억울한 죽음을 위무하면서도, 아침을 향해 붉은 얼굴을 들던 저항과 생명의 기운을 드러낸다.
절망의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동굴 벽 푸른 고사리”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로 치환하는 이 시는 잃어버린 길 위에서 다시 관계와 연대를 회복하자는 화해의 신호이다. “까슬한 가슴에도 생명을 키우는 당신”이라는 시구에서 이제 상처를 감싸 안으며 새로운 아침을 함께 맞이하자고 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다시 서로의 가슴속으로 들어설 수 있음을 생명의 언어로 전하고 있다.
상생의 소리 -고정국의 <한라산 뻐꾸기>
고정국 시인은 표선 백사장과 인접한 남원읍 위미에서 4·3사태 일 년을 앞두고 태어났다. 그 불타는 마을 복판에서 누나의 등에 엎여 바닷가 바위틈에 숨는 등의 순간을 넘기며 생존해왔다. 자칫 젊은 세대들은 4·3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탱해온 1950년대 아픔을 강 건너 불 보듯 할지 모른다. 그런데 고정국 시인이 고향 위미사투리로 엮어낸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에 사삼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연들을 적나라하게 펼쳐놓고 있다.
흰동산 외하르방 저슬틀엉 외갓집가민 / 낭캉알에 눈이묻엉 눈질우이 돔박고장 / 돔박꽃 헤카진 질에 피가 벌겅행 있국
- 고정국, ⟪지만울단 장쿨레기⟫, <흰동산 돔박생이> 전문
이 시는 외할아버지댁 가던 길에 눈길을 걷다보면 그 위에 떨어진 동백꽃을 밟으면 꽃송이가 으깨지고 눈 위에 마치 피가 붉게 번진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눈과 꽃, 붉은 피의 대비 속에서 생명의 덧없음과 역사적 상흔을 함께 환기시킨다.
한편, 4·3의 중심에서 고모부를 잃고 홀로 90평생을 살다 돌아가신 고모님의 울음소리를 위미마을 자배봉 뻐꾸기 울음소리에 담아내고 있다.
한라산 잡목 숲에 텃새 한 마리 숨어서 산다 / 고 씨 집안 대물림에 늙어서도 목청이 고운/ 4·3때 청상이 됐던 올해 팔순 고모가 산다 // 산이 산을 막고 무심이 무심을 불러 / 해마다 뻐꾸기소리 제삼자처럼 듣고 있지만 / 고모님 원통한 숲엔 오뉴월 서리도 내렸으리 // 한 백년 나앉은 산은 등신처럼 말이 없고 / “꺼꾹 꺼꾹, 꺼어꾹 꺼어꾹” 숨어 우는 우리 고모 / 간곡히 위미사투리로 되레 나를 타이르네.
-고정국의 <한라산 뻐꾸기> 전문
<한라산 뻐꾸기>는 4·3의 상흔을 가족사와 자연의 이미지 속에 녹여낸 작품이다. 한라산 잡목 숲에 울어대는 뻐꾸기는 단순한 텃새가 아니라, 고모의 원통한 생애를 상징하는 존재로 제시된다. 늙었음에도 여전히 맑은 목청을 지닌 뻐꾸기 소리는 고모가 지닌 내면의 울분과 고통이 자연의 리듬 속에서 이어진다.
“산이 산을 막고 무심이 무심을 부른다”는 시구는 그 자체로 막혀버린 세월과 억눌려 말하지 못한 한을 응축한다. 산이 산을 가로막듯, 세월은 고모의 삶을 끊임없이 가로막고 침묵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 무심 속에서도 울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곧 드러낼 수 없는 울분이었고, 외면할 수 없는 기억이다.
더욱이 “백 년을 버텨온 산은 말이 없고, 꺼꾹 꺼어꾹 숨어 우는 고모”라는 시구는 산처럼 묵묵히 살아온 세월 뒤에 숨어 울 수밖에 없었던 목소리는 4·3의 참상이 얼마나 깊고 처절했는지를 몸으로 전해준다.
일반적으로 뻐꾸기의 표준어 울음소리는 “뻐꾹뻐꾹”이라 표기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꺼꾹, 꺼어꾹” 노래하고 있다. 결국 생의 절반을 고향에서의 아픈 삶을 체험한 고정국 시인은 그 뻐꾸기 울음소리에서 ‘간곡’이라는 형용사를 놓칠 리 없다. 결국 ‘상생과 화해’의 장을 열어달라는 시대의 간곡한 고모님의 목청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표선 백사장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고정국 시인의 시조 <스며들기> 중 한 首를 적어 본다.
“아픈 자여, 그 곁에서 아프게 했던 자여 / 이제 다 맨발로 내려와 저 눈밭에 함께 서자 /우리의 국경선에도 / 눈이 오고 있으니…”
-고정국의 <스며들기> 부분
함박눈 내리는 날이면 너와 나의 모든 경계선이 허물어진다. 용서, 화해, 상생 역시 힘이 있을 때 발휘된다. 이처럼 고정국 시인은 삶의 도처에서 긍정의 언어를 찾아 우리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도출시키고 있다.
화해와 상생의 길로 들어서는 길
4·3의 봉홧불은 제주 현대사를 이해하는 핵심 축이다. 오랫동안 ‘사건’이라 불리며 왜곡되어 온 역사는, 뒤늦게 ‘항쟁’이라는 이름을 되찾기까지 수많은 침묵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아직도 ‘4·3’에 대한 용어 전환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많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여전히 ‘4·3항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이름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4·3의 진실 규명과 화해의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말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우리의 힘이다.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되 그것을 화해와 상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특정 세력이나 권력층의 의지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 전체가 긍정적 인식을 공유하고 상호 신뢰를 회복할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경제적·문화적 기반 속에서 든든한 국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진보와 보수, 세대와 세대, 지역과 지역처럼 대립을 부추기는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유를 묻지도 않고 자기와 다른 진영이나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배척하거나 불신하는 사회 속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이제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와 신뢰의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성숙한 의미의 화해가 다가올 것이다.
필자의 고향인 표선바다. 한모살의 모래 위에 쌓여 있던 기억은 곧바로 진혼의 노래로 이어졌고, 그 노래는 위무의 울림으로 확장되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 끌어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길어 올린 언어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다시 표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그 길을 시로 증언해 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임채성, 강영미, 김영란의 시는 집단 학살의 흔적과 청춘의 죽음, 끝내 작별하지 못한 이름들을 다시 불러냈다. 파도는 흔적을 덮었다가도 다시 드러냈고, 시는 그 자리를 오늘의 언어로 꽃피웠다. 김연미와 고정국의 시는 이 지점에서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단절된 기억을 잇는 교신은 상처에서 화해로의 손길이 되었고, 간곡한 고향사투리로 우는 뻐꾸기의 소리는 상생의 메시지를 전한다.
“꺼어꾹 꺼어꾹” 이제는 제발 화해와 상생의 길로 들어서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