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행복한 여성과 가족 둥지] <3> 동화 속 ‘아름다움’, 그 너머를 보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 백설공주.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졌다고 해서 ‘백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 공주는, 독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졌고, 유리관 안에서 오랜 시간 잠들어 있다가 왕자의 입맞춤으로 깨어납니다. 이야기 속 백설공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설공주는 아름답다! 과연 “아름답다”라고 여겨졌던 그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기준은 보편적인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특정한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이 칼럼에서는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여 왔던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을 통해, 동화 속에 숨어 있는 젠더 관점의 메시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아름답다’는 누구의 기준일까요?
백설공주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니?” 마법의 거울 앞에서 새어머니 왕비는 매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거울은 언제나 솔직하게 대답하지만, 어느 날부터는 “왕비님보다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에 왕비는 극도로 분노하며, 백설공주를 없애려는 시도를 이어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왜 여성은 서로를 비교하고, 평가받으며, 결국엔 경쟁자가 되는 걸까요? 왜 아름다움은 언제나 경쟁 해야 하는 것이 되었을까요?
이 장면은 단순히 질투하는 왕비와 착한 공주의 갈등 구조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 이면에는 여성의 가치를 외모로 판단하고, 그 외모의 기준에 따라 여성들 간에 위계가 매겨지는 사회적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왕비와 백설공주는 서로 적대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그 둘 모두 남성 중심적이고 외모 중심적인 사회의 기준 아래에서 경쟁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결국 ‘누가 더 예쁜가’라는 질문 자체가 남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구성된 서사이며, 우리는 이를 어린 시절부터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생각해봅니다.
두 번째,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에는 어떤 이미지가 담겨 있었을까요?
백설공주는 새하얀 피부, 붉은 입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단순히 외형적 특징을 넘어 이상화된 여성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얀 피부’는 순결함을, ‘붉은 입술’은 생기와 여성스러움을 ‘검은 머리’는 피부색과의 강한 대비를 통해 눈에 띄는 이미지를 부각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다양성과 개성을 반영한 모습은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백설공주의 외모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외모’의 틀 속에 갇혀 있고, 이 모습은 현재 미디어나 광고 속 여성 이미지와도 유사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특정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이 모두 맞는 것처럼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비교와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타인의 시선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 번째, 침묵과 순종, ‘착한 여자’의 조건이었을까요?
백설공주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말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따르고, 일곱 난쟁이의 집에서 묵묵히 집안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녀는 경계심 없이 낯선 노파에게 독이 든 사과를 받아먹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가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백설공주는 말을 잘 듣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수동성—즉, 말을 잘 듣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여성상—이 아름다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동화 속에서 백설공주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사냥꾼에게 버림받고, 난쟁이에게 보호받고, 결국에는 왕자에 의해 새로운 삶을 살게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백설공주는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 침묵과 순종의 인물로 존재합니다.
“왜 침묵과 순종이 아름다움과 연결되었을까요?”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유리관 안에 갇힌 백설공주’처럼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서로를 경쟁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동화를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는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 안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기준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면에서 동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가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가치와 의미를 담아 둔 작은 지혜의 상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른의 시선으로 동화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동화 속 백설공주 이야기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편견과 기준, 상징들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며, 그 이야기를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질문’을 다시금 떠올려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더 넓고 다양한 세계를 함께 상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는, 유리관 안에 잠들어 있는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문을 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바로 그런 삶 속에 존재하니까요.
그런 관점들은 바탕으로, (재)제주여성가족연구원 제주양성평등교육센터에서는 동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 본 카드뉴스 시리즈 <우리가 몰랐던 동화 속 젠더 이야기> 를 제작했습니다. 익숙하지만 다르게 읽히는 동화들을 통해, 일상 속 성평등 감수성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카드뉴스는 (재)제주여성가족연구원 제주양성평교육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으며, 교육 현장이나 가정에서도 쉽게 활용하실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