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아의 독서평론] <30>
1부 숨은 들꽃, 드러난 마음 — ⪡엥기리젠⪢의 동심 생태 시학

1부 숨은 들꽃, 드러난 마음 — ⪡엥기리젠⪢의 동심 생태 시학
1) 박희순 동시의 생태적 시간
2) 말과 그림이 빚은 시적 생태 놀이터
3) 동심의 눈, 詩의 귀
4) 작은 생명에게 말을 거는 詩

2부 부리 끝에 맺힌 봄- 쪼글락하고 아꼬운 ⪡생이⪢의 경고

3부 작은 몸, 큰 울림 ― 꼬물꼬물⪡베렝이⪢의 자존감

마무리- 박희순과 제주어 생태 동시의 세계

 

너를 불러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는 자연의 친구들과 꽤 가까운 사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박희순 시인의 동시집을 읽고서야 그 믿음이 얼마나 빗나간 생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아꼬운 아이들아, 정말로 미안하구나.” 매일 스치듯 지나쳤던 아이들에게 이 말이 목울대까지 차올랐다. 들풀, 새, 벌레, 바다 생물처럼 눈을 두고 마음을 열면 보이는 생명들이었지만, 정작 이름조차 몰랐던 존재가 얼마나 많았던가. 박희순 시인의 동시집을 통해서야 그 얼굴들이, 목소리가, 정체성이 비로소 그려졌다. 그래서 더 간절히 다가가 부르고 싶고, 그래서 더 그립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존재는 깨어난다. 멈춘 명사의 자리를 벗어나 동사형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던 숨결이 가까워진다. 박희순 시인의 뛰어난 시심(詩心)은 바로 그런 믿음을 가능하게 한다. 불현듯 양전형 시인의 시집 제목 “동사형 그리움”이 떠오른다. 그리움은 멈춰 있는 감정이 아니라 늘 살아 움직이는 실체로 존재하는 이 메타포는 박희순 시인의 동시 속 존재들에게도 그대로 스며든다. 들꽃 한 송이, 돌담 위를 스치는 새 한 마리, 풀잎 끝을 기어가는 베렝이 그리고 여름 한복판을 뒤흔드는 매미의 울음까지. 이 작은 생명들은 동심의 언어를 타고 우리 가슴 한켠에 꼬물꼬물 뿌리 내린다.

이 동시집에는 독자의 감성을 톡톡 건드리는 또 하나의 협업이 있다. 음성의 말맛을 고스란히 살린 제주어, 그리고 시각적 생기를 불어넣은 신기영 화가의 그림이다. 제주어는 바람이 빚은 진솔한 언어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계절에 따라 억양이 달라지고 말맛과 감정의 온도 또한 함께 흔들린다. 화산섬 돌 틈을 스치며 다져진 입말은 부사 하나, 형용사 하나에도 땅의 감촉과 섬의 사유를 오롯이 품고 있다.

특히 동시로 표현된 제주어는 정겹고도 아꼽다. 그 자체로 생명력 있는 숨결이 되어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잊혀가는 고유어를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이에 응답하듯 신기영 화가는 제주 전역을 돌며 작은 생명들을 직접 만나 관찰했고, 박희순 시인이 그 감응을 시로 길어 올렸듯 화가는 그것을 그림으로 되살려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벌레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점도 인상 깊다.

박희순 시인은 사라져가는 제주어와 황폐해지는 제주의 자연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제주의 아이들에게 전할 선물로 특별한 동시집을 펴냈다. “제주어 생태 동시 컬러링북 시리즈”는 동시집이자 그림책이며, 동시에 컬러링북이자 필사노트로 구성된 총체적 언어 놀이책이다. 단순히 읽고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태 속 동식물이 되어 한순간 동시로 살아보게 하는 새로운 시적 실험이 담겼다. 특히 시와 그림이 동등한 비중으로 어우러지며 하나의 통합적 창작 성과를 이뤄낸 이 책은, 동시의 문학성을 넘어 다양한 독자층의 참여와 실천을 이끄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자리매김한다.
 

박희순 시인
박희순 시인

박 시인은 ‘오늘’이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는 관계들을 소중하게 만드는 창작 활동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에게 동시 창작은 새벽을 여는 기도이자 삶의 중심이며, 동심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건네는 ‘치유의 언어’라고 덧붙인다.

필자가 만난 박희순 시인의 동시집에는 크게 세 갈래의 소명 의식이 흐르고 있었다. 첫째, 사라져가는 제주어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어 언어를 되살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둘째, 지구 생태계의 작은 생명들을 품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노래하고자 한다. 셋째, 그 모든 시선 속에서 아이들의 본모습을 따뜻하게 비추며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박 시인의 동시는 언어의 회복, 생명의 감수성, 어린이의 자아 인식을 하나로 아우르며, 그녀만의 시적 실천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본 평론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따라, 1부 들풀과 제주어의 말맛을 담은 ≪엥기리젠≫, 2부 새의 시선으로 전하는 생태적 경고 ≪쪼끌락허고 아꼬운 생이≫, 3부 작은 몸짓으로 큰 울림을 주는 곤충들의 세계 ≪꼬물꼬물 베렝이≫ 등 세 권의 생태 동시집을 중심으로 3회에 나눠서 연재하며, 박희순 시인의 예술 생태계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1부 숨은 들꽃, 드러난 마음 — ≪엥기리젠≫의 동심 생태 시학
 

≪엥기리젠≫ 표지.
≪엥기리젠≫ 표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부터 아이들의 것이 되었을까. 어린이는 본능적으로 자연 가까이 다가가 풀꽃 하나 바람 한 줄기에도 마음을 연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감수성은 점차 잊히고 자연은 삶의 배경으로 물러난다. 생태시와 아동문학이 다시 주목받는 까닭은 바로 이 생태적 시선을 되돌릴 가능성에 있다. 1990년대 이후 생태 문학 논의는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관계와 공존 돌봄과 감응의 윤리를 강조해 왔고 아동문학 역시 자연과 감정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명의 가치를 되살리고자 하는 흐름을 보여 준다. 박희순 시인의 동시집 ≪엥기리젠≫은 이 흐름 속에서 빛난다. 이 시집은 작은 생명을 주체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대화하며 동심의 언어로 세계를 다시 짜는 시적 실천으로 자리매김한다. 표준어와 제주어를 병기한 덕분에 독자는 두 언어를 번갈아 낭송하며 제주어의 깊은 맛을 체험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잊혀가는 입말에 다시 스며들게 한다. 또한 도외 지역 독자들에게 감정언어인 제주어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 박희순 동시의 생태적 시간
 

박희순 시인의 동시는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간을 담담히 고백한다. 우리 집 마당의 애기똥풀 하나를 알아보는 데 “아홉 해”나 걸렸다는 고백은 무심함과 바쁨이 쌓여 ‘자연’과 ‘자아’ 사이에 놓인 거리를 또렷이 드러낸다. 애기똥풀은 한 포기 식물을 넘어 오래 미뤄 두었던 소중한 과제 혹은 진실한 목표를 상징한다. 잠시 멈추어 발밑을 바라보는 행위는 곧 존재를 다시 발견하는 첫걸음이며 이해와 환대가 서서히 스미는 순간이 된다. 시는 그렇게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출발점 삼아 자기 존재를 돌아보는 길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새삼 필자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반생을 훌쩍 넘긴 어느 날 필자에게도 우연처럼 꽃을 가꾸게 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주체가 되어 흙을 손에 쥐고 땅을 고르고 뿌리를 만졌다. 손끝에 닿은 흙의 온도와 미세한 떨림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반가웠다. 까무러치게 놀라서 거부했던 지렁이를 받아들이고서야 비로소 작은 생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벌초 길의 들꽃을 유심히 살폈고 숲길에서의 동식물 숨소리가 들렸다. 인도 블록 틈에 솟아난 민들레에게서는 꿋꿋이 자라는 아이의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저녁 바닷가에서 절뚝이던 물오리에게서는 소외된 아이의 눈빛을 읽었다. 결국 잊고 살았던 펜을 다시 꺼내 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깨달음은 박희순 시인의 동시를 만나며 더욱 깊어졌다. 시인은 ‘가던 길 잠시 멈추라’고 청한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애기똥풀을 알아보는 데 “아홉 해 걸렸다”는 고백은 멈춤 없이는 소중한 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완두콩과 민들레, 베렝이와 매미 같은 작은 존재를 불러내 온 그의 작업 앞에서 시구는 시인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자 답이다. 아홉 해라는 시간의 두께는 생명을 바라보는 눈을 얻기까지의 긴 여정이며 이 성찰은 연작 동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심장으로 남는다.

제주어 말맛 ‘아쓱’(잠깐 사이)과 ‘발밋듸’(발밑)가 겹치며 ‘잠시’라는 시간이 삶의 태도로 확장된다. 시인은 “잘도 오래 걸렷저” 하고 툭 내뱉어 독자에게 속도를 늦추고 발밑을 살필 것을 권한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생명 앞에 고개를 숙이는 시인의 태도를 더욱 선명하게 마음에 새긴다.


2) 말과 그림이 빚은 시적 생태 놀이터
 

이 동시는 천진한 아이들의 숨바꼭질 같다. “꼭꼭 곱으라 머리꺼럭 보염저 다 곱안?” 같은 골목길 외침은 아이들을 단숨에 숨바꼭질의 주인공으로 이끈다. 이처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익숙한 주문으로 문을 열어, 식물 씨앗의 퍼뜨리기를 놀이 언어로 생동감 있게 풀어낸다. 완두콩, 민들레, 도꼬마리, 야자나무, 단풍나무까지 각기 다른 흩어짐은 숨고 도망치는 아이들처럼 재기발랄하며, 시인은 이 움직임을 유쾌한 시적 상상력으로 풀며 자연의 지혜를 놀이로 바꾼다.

“꼭꼭 숨어라”로 시작해 다시 “꼭꼭 숨어라”로 닫는 환형 구조는 숨바꼭질의 긴장과 설렘을 반복시키며 읽는 이를 빠져들게 만든다. “찰싹” 같은 의태어는 도꼬마리가 다리에 붙는 순간을 생생히 살려내고, “헬리콥터 날개”라는 비유는 단풍 씨앗의 선회 낙하를 한눈에 그리게 한다. 짧은 행과 현재형 동사는 씨앗을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바꾸며 시적 생기를 더한다.

제주어는 이 시의 흥을 한층 끌어올린다. “꼭꼭 곱으라 머리꺼럭 보염저”라는 주문부터가 말맛 자체로 장난스러운 리듬을 튕기며, 읽는 순간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곱으라’(숨어라), ‘머리꺼럭’(머리카락), ‘보염저’(보인다)는 혀끝에서 후두둑 튀어 오르듯 울려 퍼져, 말놀이처럼 재미와 박진감을 더한다. 특히 ‘ᄎᆞᆽ아뎅겸쩌’(찾아다니고 있어)처럼 호흡이 길게 이어지는 종결어미는 단풍 씨앗의 선회 움직임을 소리로 그려내며, 제주어 고유의 리듬감을 생생하게 전한다.

된소리와 장모음, 그리고 ‘-쩌’, ‘-감쩌’ 같은 어미는 표준어보다 더 역동적으로 숨바꼭질의 긴장과 들뜸을 전달한다. “찰싹 붙엇저”에서 터지는 음성적 리듬은 도꼬마리의 장난기 어린 접촉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씨앗들을 각기 개성 있는 놀이 친구로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말맛은 어린 독자들이 읽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노는 몸짓에 빠져들게 하며 제주어가 가진 말놀이적 특징이 놀이의 장벽을 허물고 생태 감수성을 가까이 끌어당긴다.

이처럼 제주어와 동시, 그리고 신기영 화가의 그림이 어우러진 협업은 말과 시각, 놀이가 하나 되는 입체적 생태 체험을 선사한다. 그림 속 씨앗들은 색칠하기 활동으로 이어져 아이들이 손으로 자연을 만지게 하고, 말로는 주문을 외우듯 씨앗의 여정을 따라가게 한다.


3) 동심의 눈, 詩의 귀
 

작고 흔한 들꽃 하나를 통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생명을 되묻는 동시 개망초. 시인은 “개밥바라기별이 하늘에 핀 꽃이라면 / 망울망울 개망초는 땅에 핀 별이야”라는 시구를 내보이며 이름조차 평범한 풀꽃을 하늘의 별자리와 나란히 놓는다. 초여름 들판을 “은하수”에 비유한 시적 상상력이 기발하다. 박시인은 개망초의 번짐을 성가심이 아니라 흩뿌려진 생명의 반짝임으로 환대했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동심이 더욱 반짝이는 것 같다. 별과 꽃을 연결하는 시인의 발상, ‘망울망울’ 피어나는 꽃망울에 눈을 맞추는 따뜻한 시선, 성가시다며 뽑아버리는 대신 잔잔히 바라보며 말을 거는 마음이 참 곱다. 아이들이 이 동시를 읽는다면, 들판 한가운데 피어난 개망초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눈에 띄지 않아도, 작고 흔해도, 심지어 누군가에게 외면받는 존재일지라도 그 안에 깃든 생명의 빛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시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속삭인다. 너도 누군가에게는 땅에 핀 별이라고.

이 동시는 개망초에 얽힌 웃픈 추억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꽃을 심기 시작하던 어느 날, 벌초하던 산소 근처에서 눈부시게 피어 있던 개망초를 만났다. 그때만 해도 나는 꽃 이름도, 꽃들의 속성도 잘 모르던 때였다. 너무 예뻐서 들에만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에 한아름 뿌리째 캐 와 시댁 감나무 아래 정성스레 심었다. 아마도 그 순간, 박 시인이 노래한 “이 꽃이야말로 야생의 은하수!”라는 말을 들은 듯한 기분으로 들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개망초가 번식력 강한 귀화식물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시어머니와 남편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걸 그냥 놔둬야 하나, 말려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내가 꽃을 껴안고 흙을 다정히 덮는 모습을 보고는 차마 말리지 못하고 속만 끓였던 것이다.

결국 시어머니는 “메누리가 곱덴 허멍 싱근 꼿인디 ᄒᆞᆯ수엇다게”라며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물까지 주셨다. 하지만 꽃이 핀 채로 옮겨 심어진 개망초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시어머님의 정성과 남편의 말 없는 인내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사랑의 별로 반짝거리고 있다. 잡초라 불리더라도 누군가의 애정이 깃든 순간, 그 존재는 ‘땅에 핀 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개망초가 가르쳐준 것이다.

그 경험은 시의 언어를 만나면서 더욱 깊은 울림으로 되살아났다. 내가 겪은 한 장면이 박희순 시인의 동시와 마주하자, 평범한 풀꽃이 지닌 의미는 어느새 시 속 별자리처럼 반짝이며 떠올랐다.

이처럼 ≪개망초≫는 낮고 흔한 존재에 마음을 기울이는 태도를 일러준다. “반짝이는 것 좀 봐봐”라는 마지막 구절은 동심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라는 초대이자, 작디작은 생명 앞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태도를 담고 있다. 아이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안다. 들판에 핀 개망초처럼 평범해 보여도, 누구나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시는 말없이 속삭인다. 누구나 한 송이 ‘땅에 핀 별’이 될 수 있다고. 동심의 눈이 닿는 자리에서, 시의 귀는 생명의 작은 목소리를 끝까지 듣고 있다.


4) 작은 생명에게 말을 거는 詩
 

⪡엥기리젠⪢ 뒷 표지.
⪡엥기리젠⪢ 뒷 표지.

어떻게 그냥 가니. 이 한 구절만으로도 발걸음이 멈춘다.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건네는 인사 앞에서 서 보라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부탁이다. 담벼락 밑 뽀리뱅이와 소리쟁이, 돌단풍과 아기별꽃이 차례로 얼굴을 내밀 때마다 시인은 한 번 더 묻는다. “어떻게 그냥 가니?” 되풀이되는 이 물음은 바쁜 걸음에 브레이크를 거는 시적 멈춤이며, 가만히 마음을 두드리는 속삭임이다.

이 시가 특별한 까닭은, 생명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문학적 울림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꽃잎 하나, 풀잎 하나도 삶의 주체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생태시가 지닌 깊은 철학을 드러낸다. ‘예쁘다’는 감탄을 넘어 ‘손을 흔들고 있다’는 해석은 동심의 언어로 생명을 읽는 방식이자, 우리가 놓쳐 두었던 작은 목소리를 되찾는 길이 된다.

필자 역시 그 물음을 늦게나마 배웠다. 시댁 마당을 오가며 주말마다 손을 보태던 꽃삽이, 이제는 더 가까운 아파트 화단으로 옮겨졌다. 이곳에 씨를 뿌리고 매일 물을 주며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손바닥만 한 십 평 남짓한 터전에도 수많은 숨결이 솟아오른다. 풀 한 포기, 꽃잎 한 장, 감나무와 칸나줄에 집을 튼 호랑거미, 가지를 오가는 참새, 꽃밭을 찾는 길고양이까지. 이 작은 정원 속 생명체들이 하나하나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이상 배경이 아니라, 마치 아이처럼 품고 싶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기쁨을 혼자 누리기 아까워 주변 사람들에게도 꽃을 나누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 함께 심어보자고 권하고 있다. 아마 그래서 박희순 시인의 동시가 더욱 애틋하게 가슴에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꽃을 나누는 이들에게, 박희순 시인의 동시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피어난다.

“그 조그맣고 조그만 꽃잎이 / 손 흔들며 부르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가니?”라는 마지막 연은 깨달음의 닻이다. 일상의 흐름 속에서 문득 멈춰 서는 순간 우리는 생명의 눈빛과 마주하게 된다. 박희순 시인은 말한다. 작고 여린 존재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다정하게 일깨우는 첫 친구라고. 이 대목에서 동시의 문학적 가치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것은 자연의 묘사를 넘어 생명감수성을 회복하고 동심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회복의 언어다.

그런 존재는 교실 안에도 있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아이, 말이 느린 아이, 발표를 두려워해 자주 잊히는 아이들, 시인은 그 아이들을 본다. 그리고 그가 만나는 아이들이 저마다 그런 친구를 알아보는 따뜻한 시선을 품길 바란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빛나는 계기가 되어 아이는 스스로를 밝히며 자란다. 동시는 그 작고 보이지 않던 존재에게 첫 목소리를 내어주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는 언어로 곁을 내어준다.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詩의 자리

박희순 시인의 ≪엥기리젠≫은 자연과의 거리를 다시 가늠하게 한다. 말은 많지 않지만 분명한 문장들 속에서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시인은 그들을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이 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출발하지만, 그 시선은 어린이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자연을 바라보는 이라면 누구나 이 시를 통해 낯익은 풍경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제주어가 함께 실린 시편들은 언어가 단지 표면적인 전달의 도구를 넘어 삶의 방식이자 감각임을 일깨운다. 익숙하지 않은 말이지만, 오히려 그 낯설음 덕분에 풍경이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엥기리젠≫은 읽는 이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걷는 속도가 조금 느려지고, 머릿속을 채우던 말들이 잠시 멈춘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머무는 여운은 우리가 어디서부터 다시 바라봐야 하는지를 가리킨다. 생명을 대하는 태도, 언어를 감각하는 방식, 그리고 하루를 지나는 마음자리를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동시집이다.

※ 본 평론은 총 3회에 걸쳐 연재되며, 다음 회는 2부 '부리 끝에 맺힌 봄 — 쪼글락하고 아꼬운 ≪생이≫의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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