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장윤우 (미디어제주 청소년기자, KIS 10학년)

7월 14일 세계정치학회 등 세션 참가

“관용의 섬 제주도는 세계의 불턱”

7월 1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 C327.

세계정치학회(World Congress of Political Science)의 한 세션은 다른 세션들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안내에는 ‘라운드 테이블’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정작 테이블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사람들은 의자에 둥글게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주의 전통 공간 ‘불턱’을 그대로 옮겨온 특별한 시도였습니다.

제주해녀의 '불턱'을 재현한 라운드 테이블. ⓒ장윤우
제주해녀의 '불턱'을 재현한 라운드 테이블. ⓒ장윤우

이 실험적인 세션은 유엔 관용 프로그램(UNTP)과 제주평화학교(JEJU PEACE SCHOOL)를 소개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고창훈 제주대 명예교수와 그의 오랜 학문적 친구인 프랑스의 더글라스 예이츠 교수(파리 아메리칸 대학), 칼튼 워터하우스 교수(미국 하워드대학) 등이 있었습니다.

‘불턱’은 제주 해녀들이 물질을 오갈 때 모여서 이야기 나누던 전통의 공간입니다.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생존의 정보를 나누던 신뢰와 연대의 장소였죠. 그날 컨퍼런스룸도 그랬습니다. 불턱에서 발표는 대화가 되었고, 대화는 공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이츠 교수는 불턱에 앉아 제주와 4·3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의 말을 인용하며 “역사는 기록된 과거이지만 기억은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고 “제주 4·3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계속 꺼내어 기억하고 행동해야 할 ‘살아 있는 기억’이 되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제주 4.3을 기억하기 위해서 특별한 이벤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학생 발표자로 참가한 김연아 양(페이스튼)은 기후 변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며 기후의 위기는 무기 없는 전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미래가 지켜야 하는 평화를 위해서는 기후 위기 해결 또한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불턱 안에 있던 참가자들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에는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제주에 관한 중요한 정책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제주에 UN제5사무국 유치를 위한 국제적인 토론이었습니다.

예이츠 교수와 워터하우스 교수(미국 하워드대학교)도 세계학회 이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본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아홉 명의 청소년 친구들도 토론회에 ‘미래세대’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간담회는 WAESG(학회장 김호림)와 제주도의 위성곤, 문대림 국회의원 주관으로 열렸고, 정대연 아시아기후변화교육센터 센터장, 고윤주 전 제주특별자치도 국제관계대사, 허상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 뿐 아니라 각계의 전문가 40 여명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좌장인 김호림 교수(동양대)는 우리가 이제 ‘디지털 문명의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환경으로 국제 질서 또한 그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듯 이날 간담회에는 직접 참석하지 못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김광수 제주특별자치도 교육감, 그리고 멀리 벨기에에서 전해온 이그나스 샵스 총재(벨기에 국립공원연맹 소장)의 축사와 축전이 스크린을 통해 소개되어 디지털 문명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가한 이들은 제주도가 유엔 제5사무국을 유치할 최적의 장소임을 이야기했다. ⓒ장윤우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가한 이들은 제주도가 유엔 제5사무국을 유치할 최적의 장소임을 이야기했다. ⓒ장윤우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국제적인 디지털 격차, 기후 위기, 국가 간 갈등 등 어두운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국내외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복합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틀을 넘는 새로운 유엔 사무국, 즉 제5사무국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최적의 장소로 '평화와 관용의 섬' 제주를 제안했습니다.

강대엽 교수(미국 로욜라대학)는 유엔 제5사무국이 단순한 행정기구가 아니라 공감 교육, 모두가 함께 누리는 번영, 그리고 책임 있는 혁신의 조율을 이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의도된 관용’으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제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정부, 기술 리더, 시민사회가 함께 어울리는 구조가 제주에서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예이츠 교수는 제주가 가진 실질적인 장점을 설명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젊은 세대가 많고, 아름다운 자연과 쾌적한 환경은 국제기구의 본부로서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한국은 세계적으로 빠르고 안정된 인터넷 인프라를 가지고 있어서 디지털 교육이나 원격 협업이 필요한 요즘 같은 시대에 제주가 좋은 선택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화는 회의실만이 아니라, 제주의 바다, 산, 그리고 사람들이 웃는 모습 속에 있다”고 말해 인상을 주었습니다.

워터하우스 교수는 제주 4·3 사건을 언급하며, 제주가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해 온 과정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잘못된 역사를 솔직하게 마주하고 기억할 때, 개인이나 나라 모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의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주가 그런 ‘기억과 치유의 장소’로서 세계인들이 함께 배울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전, 세계정치학회에서 발표한 이혜인(SJA) 양의 이야기도 그 흐름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주 4·3 생존자 임경재 화백의 그림일기를 소개하며, 기억의 트라우마를 예술로 표현하는 과정이 얼마나 깊은 치유의 힘을 지닐 수 있는지를 전했습니다. “예술은 고통을 공동체의 기억과 회복으로 이끄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제주는 고통을 품고도 다시 평화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섬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참석자 모두 공통적으로 “제주는 단순히 위치나 환경이 좋은 곳이 아니라 평화와 관용을 가르치고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가치들을 실천할 수 있는 장소” 라고 강조했습니다.

저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섬이 앞으로 세계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3이라는 아픈 역사를 관용을 통해 기억과 평화로 승화시킨 이곳, 제주는 관용의 섬입니다.
제주의 시련 극복 사례는 세계에서도 매우 드뭅니다. 
제주의 평화는 외부의 개입이 아닌, 고통을 관용으로 이겨낸 내면의 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관용은 평화를 만들고 지키는 힘이고 제주는 관용으로 피어난 섬입니다. 
제주의 관용 정신은 앞으로 전 세계 미래를 준비할 힘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풀어가야 할 가장 큰 과제인 기후와 환경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이미 제주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는 이미 미래세대 청년들이 참여하는 국제 평화교육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지정학적으로도 제주만큼 평화적인 중립성을 상징할 수 있는 곳은 드뭅니다.

아무래도 제주의 유엔 제5사무국이 신설된다면 제주는 세계의 새로운 ‘불턱’이 될 것 같습니다.
불턱’은 삶의 기억이 살아 숨 쉬고, 대화가 위계를 넘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방식을 상징하는 단어가 될 것입니다.

디지털문명 시대에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다면 세계 어느 곳이든지, 원하는 시간에, 우리는 제주 불턱에 앉아 미래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평화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 오늘의 미래세대가 서울에서 개최된 제28회 세계정치학회(WORLD CONGRESS)와 국회회관 정책 간담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그리고 제주도청, 제주도교육청, 제주특별자치도 관계자분들, 사회복지법인 청수 이사장 임애덕 원장님, 고창훈 제주대학교 전 명예교수님, WAESG 학회의 강대엽 이사장님, 김호림 학회장님과 생명사랑봉사대,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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