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아의 독서평론] <28>
안현순의 작곡 발표회 ≪제주, 애(愛)≫를 중심으로
1. 안현순 작곡 세계와 ≪제주, 애(愛)≫
2. 김순이의 시 <제주수선화>
3. 고정국의 시조 <길>
4. 고성기의 시조 <내 마음의 바다>
5. 이청리의 시 <그 섬에 고운님이 있었네>
6. 고영숙 의 시 제주 4·3노래 <섬의 연가>
7. ≪제주, 애(愛)≫가 완성한 시와 음악의 복합예술
2024년 여름밤, 음악은 침묵을 뚫고 우리에게로 스며들었다. 문예회관 대극장을 가득 채운 안현순 제2회 작곡 발표회. 무대와 관객 사이의 숨결을 조율하는 제주의 빛과 떨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이날,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마이크를 든 안현순 작곡가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인사말에는 어느 시인에 못지않은 제주사랑의 여운이 흐르고 있었다. 침묵 속에 숨어 있던 동사형 음표들이 그의 손짓과 숨결을 따라 하나둘 일깨워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주의 시간, 관객들은 어느덧 시작도 끝도 없는 음의 여백 속으로 빠져들었다.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비밀스런 장소에 도달한다.”라는 플라톤의 말처럼, 어떤 음악은 언어보다 먼저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필자에게 음악은 글을 쓰기 전이나 책장을 넘기기 전, 감정의 온도를 가다듬기 위해 건네받는 가장 사적인 언어다. 대중가요에서 영화음악, 레게의 저린 박자, 때로는 낯선 리듬의 클래식까지 음악은 언제나 삶의 결을 따라 다가온다.
멕시코 가수 티시 히노호사의 “Donde Voy”처럼, 어떤 곡은 정서적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들어야만 감정의 문이 열린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은 감정의 카오스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맑게 풀어주는 숨결이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음악을 찾아 헤매는가.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어쩌면 저마다의 ‘비밀스러운 장소’를 마음속에 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음악은 버티게 하는 힘이며, 자유로울 수 있는 여백이고, 혼돈 속에서도 다시 삶을 꿈꾸게 하는 아름다운 앤트로피다.
가곡 연주회 같은 조금은 낯선 자리에서는 가곡만이 지니는 정적인 무게 앞에서 긴장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정장을 차려입고 제대로 준비된 한정식 앞에 앉는 순간처럼 마음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만든다. 무대 위의 진동, 성악가의 호흡과 발성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작곡의 숙성된 감정의 결이며 발효된 시간의 흔적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한여름밤의 선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작곡이라는 초점이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날,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음악이라는 예술의 층위’을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성악가, 연주가가 있는 감동의 순간을 가능하게 했던 무대 이전의 수많은 선택과 망설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한 침묵의 시간들까지, 그날의 음악은 삶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우리는 듣기의 감흥에서만 멈춰 서 있었던 건 아닐까. 관객의 무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음표들이 쌓이고, 몇 번의 망설임과 수정을 거쳤을까. 한 편의 선율을 완성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고뇌의 시간들이 얼마나 켜켜이 쌓여 있었을까. 그리고 그 끝에서 음표 하나 쉼표 하나에도 삶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게 된다.
이처럼 작곡은 조성과 조화(harmony), 리듬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음악적 의미를 구성해 내는 청각적 구조이자 형식의 언어화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것은 말 없는 언어를 감각으로 옮기는 행위이며, 존재하지 않던 울림을 삶의 리듬으로 이끌어내는 지극히 인간적인 창조의 순간이기도 하다. 특히 이날의 작곡은 제주를 노래하는 시인들의 언어에 곡을 입혔다는 점에서 무대의 울림은 더욱 각별했다. 무대 위에 피어난 노래가 찬란한 꽃이라면, 그 꽃을 지탱하는 것은 언 땅을 뚫고 자라난 수선화의 뿌리 같은 작곡의 시간일 것이다.
1. 안현순 작곡 세계와 ≪제주, 애(愛)≫
안현순의 작곡은 제주 감수성과 제주어의 숨결을 품고 있다. 제주도립제주합창단의 편곡자로 활동해온 그녀는 음악을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풀어내는 문화의 번역자다. 그의 작품은 교육 음악부터 예술가곡, 민요 편곡, 음악극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아우르며, 특히 제주 시문학을 바탕으로 시어의 결을 살려낸 해석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합창곡집 ≪관객을 사로잡는 합창≫ 시리즈를 비롯해 다수의 창작곡집을 펴냈고 일부 곡은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KBS 다큐멘터리 <제주 덕판배>의 배경음악, 음악극 <해녀의 길>, 위촉작 <애월찬가>, 제주국제합창축제 개막곡 등 그의 음악은 제주의 삶을 서사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2023년 ‘색 다른 카름’과 2024년 ‘카름 노래에 스며들다’ 등의 마을노래 창작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음악으로 재현하고 있다. 주민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한 이 작업은 마을의 기억을 노래로 엮으며 공동체적 연대와 자긍심을 회복하고, 나아가 사회적 치유와 문화 재생의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2024년 안현순의 제2회 작곡 발표회 ≪제주, 애(愛)≫는 제주의 자연, 사람, 해녀, 부부, 상처와 회복 등을 주제로 구성된 서사적 무대이다. 작곡가가 직접 해설자로 참여해 곡의 배경과 감정을 관객과 나눈 이 공연은, 김순이의 <제주수선화>(남성중창, 바이올린 김민희)와 고정국의 시조 <길>(바리톤 김훈석)로 문을 열며 제주의 외로움과 순명의 정서를 절제된 선율로 표현했다.
이어서 고성기의 <내 마음의 바다>(바리톤 최규현, 첼로 박소현), 이청리의 <그 섬에 고운 님이 있었네>(바리톤 김훈) 등이 제주의 상처와 회복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고영숙의 <섬의 연가>는 김민희의 바이올린 독주로 제주 4·3의 아픔을 말없이 감싸안았고, <공생>에서는 첼로·바이올린·피아노가 해녀들의 호흡과 협업 정신을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여명옥과 고훈식 시인의 작품들 역시 부부라는 공동체 안의 유머와 삶의 무게를 따뜻한 선율 속에 녹여내며 공감을 자아냈다.
공연의 마지막 곡인 합창 <사랑을 만나서>는 전 출연진이 함께 부르며 제주의 사랑과 연대를 하나로 모았다. 촛불처럼 출렁이는 무대와 관객석은 경계를 허물었고, “당신의 사랑입니다”라는 음악이 전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감동으로 속으로 빠져들었다. 본 글에서는 이 중에서도 김순이, 고정국, 고성기, 이청리, 고영숙 시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제주의 서정과 서사의 깊이를 다시금 되새기고자 한다.
2. <제주수선화> — 겨울 한가운데 피어난 시적 하모니
김순이 시인은 필자의 긴 머리를 싹둑 자르게 했던 시인이다. ‘마흔 살은 긴 머리가 안 어울리는 나이’라는 시의 메시지는 내 안에서 결단을 끌어낸 문학적 주문 같았다.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넘어가던 그 시절, 얼마나 예민했던지 나이 들어감을 의식한 우울감과 채우지 못한 내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이 깊었던 때였다. <마흔 살>이라는 시집은 그 시기의 나를 비추는 조명처럼 다가왔고 삶의 궤적을 부지런히 따라가느라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내면의 소리를 들여다보게 했다.
너는 곁에 두어도
멀리 떠돌고
그리워 손을 뻗으면
허공 집히는 어느 날
슬픔에 젖은 채
끝나는 마지막 악장처럼
눈이 내린다
지독하구나
네 미움
겨울 한가운데
꽃으로 피어
외로움 더욱 외롭게 하는
사랑 되는가
너는 곁에 두어도
멀리 떠돌고
- <제주수선화 1> 전문
필자가 ≪마흔 살≫을 곁에 두고 지낸 이후 새롭게 만난 시집은 ≪제주 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였다. 이 시집 또한 오랫동안 애송해 왔다. 내게 문학은 언제나 바다였고, 바다는 언제나 문학이었다. 열여덟의 바다, 스물다섯의 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늘 찾아다니는 바다는 어머니의 생계의 터전이자, 나의 정서적 감정을 감싸안아 주었던 품이었다. 그렇게 바다는 곳곳의 장소성을 달리하며 은밀한 내면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어쩌면 “제주 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라는 말을 지금껏 가슴에 품고 살아온 것도 바로 그 이유였을 것이다. <제주수선화>는 바로 이 시집에 수록된 시다.
<제주수선화>는 그런 마음의 간극을 차디찬 계절 속 피어난 한 송이 꽃으로 응축해낸다. 곁에 두었으나 멀리 떠도는 존재 ‘너는 곁에 두어도 멀리 떠돌고’라는 시구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 정서적 단절의 감각을 드러낸다. 존재는 곁에 있으나 그로 인해 더 깊어지는 고독이다. 시인은 눈 내리는 풍경을 ‘슬픔에 젖은 채 끝나는 마지막 악장처럼’ 묘사하며 이별의 정서를 소란 없는 음악적 종지(終止, cadence)로 가라앉힌다. ‘멀리 떠돌고’, ‘마지막 악장처럼’ 같은 구절은 언어 너머의 감각을 환기하며 독자에게 상상과 여운의 공간을 남긴다. 시의 감정은 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절제된 표현 속에서 한층 더 스며들게 된다.
‘지독하구나 네 미움/ 겨울 한가운데 꽃으로 피어’라는 시구가 오래도록 가슴에 꽂힐 것 같다. 사랑이 남긴 응어리가 차가운 계절 속에서 되레 생명처럼 피어나는 역설의 장면이다. 생의 끝처럼 느껴지는 겨울 그 시간에 상처는 오히려 꽃을 틔운다. 외로움 속에서도 피어나고야 마는 감정의 아이러니는 지독한 사랑, 지독한 그리움인 것 같다. 어쩌면 이 시의 가장 깊은 정조가 아닐까 싶다.
“외로움 더욱 외롭게 하는 사랑 되는가” 안현순 작곡가는 이 시구에 담긴 감정을 절제된 남성 5중창으로 풀어낸다. 화려함보다는 속울음을 닮은 울림으로 눈처럼 조용히 쌓이는 감정을 감싸안는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 결국 음악이 되어버린 순간 그 노래와 선율 속에서 관객은 문득 자기 안의 오래된 장면을 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상처마저도 꽃이 되는 순간! 이것이 시적 울림이다. 겨울 한복판에서 피어난 수선화처럼 차갑고도 따뜻하게.
어쩌면 그날의 무대는 김순이 시인이 써내려간 ‘제주수선화’의 물결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끝내 말하지 못했던 사랑, 그 고독과의 싸움을 음표로 건네준 안현순 작곡가의 선율 또한 제주수선화의 한 대목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3. 고정국의 시조 <길> — 굽이굽이 인생길 위에서 피어난 노래
우리의 젊은 날들을 돌아보면 불확실성과 내면의 갈등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왜 그토록 굽이진 길을 돌고 돌아가야 했는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문득 그때의 막막함이 떠오를 것이다. 그의 시조를 읽다 보면 현실을 꿰뚫는 예리한 인식과 치밀한 언어 감각,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결이 드러나는 상징성과 시적 밀도로 가득 차 있다. 겹겹이 숨어 있는 언어의 결과 그 속살 같은 층위들은 독자로 하여금 시의 결을 반복해 더듬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안에서 우리 삶과 시대를 다시 응시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단지 정서를 담는 그릇을 넘어 치열한 사유의 문장으로 기능하며 자아성찰의 뼈대를 매번 새롭게 일깨워준다.
한 세상 사는 것이 다 길이라 하는 것을
물빛 글썽이는 산만 보고 가노라면
세월은 소롯길로 와서 억새꽃을 피웠네
노을 녘 산마루엔 하늘만한 뉘우침이
웃자란 억새밭에 하얗게 눕던 날은
길 잃은 조랑말 한 마리 산을 향해 울었다
한 평생 구빗길을 먼발치로 따라와서
때로는 이마 섶에 주린 듯 돋는 별빛
그 순명 비포장 길에서 삐걱이는 내 수레여.
- 고정국의 <길> 전문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한 <길>은 인생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리 의 내면을 자연의 소재를 통해 담담히 그려냈다. 삶은 그 자체로 수많은 길이다. ‘물빛 글썽이는 산만 보고 가노라면’ 물빛 글썽이는 산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어떤 매개일 것이다.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독자들에게는 저마다의 삶에서 바라보는 지향점일 수도 있다. 그 길이 때로는 정신적으로 고단하고 육체적으로 배고픈 순간들일지라도 끝내 믿고 기대며 걸어가는 것이다. ‘길’ 자체가 바로 삶이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흘러온 세월은 어느덧 눈에 띄지 않던 소롯길로 접어들었고 그 길 위에 억새꽃 하나 피어난다.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부드럽게 흔들리는 억새처럼 삶 또한 요란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겸허함으로 피어난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노을 녘 산마루엔 하늘만한 뉘우침이’로 시작되는 구절은 회한을 지나 수용의 정서로 우리를 이끈다. 안현순 작곡가는 이 시에 바리톤의 낮은 음색을 입혀 깊은 울림을 더했고 ‘길 잃은 조랑말 한 마리 산을 향해 울었다’는 대목에서 곡은 감정의 정점에 도달하는 울림을 표현한다. 고정국 시인의 시, 안현순의 작곡, 김훈석의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는 순간, 길 잃은 조랑말처럼 그날의 감정들이 겹겹이 포개어졌다.
삶이란 어쩌면 ‘비포장 길에서 삐걱이는 내 수레’를 이끌며 묵묵히 나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시구는 같은 언어를 새롭게 되새기게 했고 그것은 어느새 인생의 리듬처럼 다가왔다.
노래는 시를 따라가되 결코 앞장서지 않았고 감정을 덧입히며 천천히 우리 안에 스며든다. 우리는 ‘한 평생 구빗길을 먼발치로 따라와서’ 이 시를 만났고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시가 노래로 피어나고 그 노래가 어느 날의 기억을 스치며 뭉클한 감정으로 되살아난다.
지나온 굽이굽이 길들이다. 분명, 한 시절 우리 곁에도 그런 길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안현순 작곡가의 선율을 따라 오늘의 길 위에서 이 노래를 듣는다.
4. 고성기의 시조 <내 마음의 바다>— 시와 음악이 빚은 정서의 해안선
어느 날 신문 한 귀퉁이에서 마주한 시 한 편, 제목은 ‘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파고들며 유독 그날따라 뼈에 사무쳤던 시어였다. 이처럼 시는 독자의 내면과 공명을 이루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의 발화로 이어진다. 결국 시란 시인이 주인이 아니라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독자의 것이 되어버리는 장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독자 중심’의 감상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학 장르가 바로, 詩시가 아닐까.
제주를 떠나 막내가 공부하는 이국땅으로 건너가는 하늘길에서 내려다본 제주섬은 그야말로 지구의 한 점이었다. 창 아래 펼쳐진 바다는 한없이 드넓고 그 끝자락에 바람 부는 바다 위 홀로 놓인 섬 하나. 수많은 상흔과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주름이 겹겹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꾹꾹 눌러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었다. 멀리서 내려다본 섬은 물빛과 하늘빛에 녹아 아스라히 희미했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서로의 온기를 붙들고 빛나고 있었다.
그는 섬을 떠나야 섬이 보인다고 했다. 실은, 자신을 한껏 밀어내야만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처럼. 고성기 시인의 시 곳곳에 등장하는 ‘섬’은 곧 삶의 숨결이자 우리들의 정서를 보듬어주는 중심이었다. 그날 이후 내 책장 한켠에 꽂힌 ≪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는 나의 애송 시집이 되었고, 그의 시는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일렁이는 작은 섬 하나가 되었다.
다가가 밀물이거나
돌아서 썰물일 때도
항상 그 깊이
그 높이로 노래했거늘
그대를
가슴에 넣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
파도야 네가 언제
내 가슴을 친다 했나
모랫벌 깊이 묻은
상처까지 붉게 덧나
하루를
부둥켜안고
타악기로 우는 바다
-<내 마음의 바다> 전문
정형시의 미학 안에서 섬세한 감성과 깊은 사유를 품어내는 고성기 시인. 그는 제주적 정서를 간직한 채, 보편적 삶의 결을 환기시키며 섬의 삶과 바다, 그리고 존재의 내면을 잔잔히 건네준다.
고성기 시, 바리톤 최규현의 독창, 박소현의 첼로연주, 김향숙의 피아노 연주가 어우러지며 한 곡의 입체적 서사가 완성된다. 고성기 시인의 시에는 바다가 있다. 다가갈 때는 밀물처럼 돌아설 때는 썰물처럼 출렁이는 가슴이 있다. ‘그대를/ 가슴에 넣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 사랑은 가슴 안에서 진동하고 그 떨림은 어느 순간 음악이 된다. 안현순 작곡가는 이 정서를 첼로와 피아노 그리고 바리톤의 병렬 구성으로 입체화한다. 첼로의 선율은 바람 같고, 파도 같으며, 바리톤의 울림은 속 깊은 물결처럼 퍼져나간다.
“파도야, 네가 언제 내 가슴을 친다 했나.” 이 독특한 감정 앞에서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잠시 멈칫하게 된다. 울컥하는 격정보다는 오래 눌려 있던 심상의 마디를 툭 건드리는 떨림과 함께 마음 깊이 침잠해 있던 기억이 슬며시 떠오르는 듯하다. 마치 바다와 파도가 내면의 상처를 두드리는 건반처럼…. 그렇게 묻어두었던 아픔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모랫벌 깊이 감춰져 있던 상처는 다시 덧나고 바다는 그 고통을 끌어안은 채 떨며 마치 타악기처럼 감정을 토해낸다. 그것은 침묵 속에 숨겨진 울림,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슬픔의 몸짓인 것이리라.
가라앉아 있던 감각은 첼로의 떨림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타악기의 리듬을 타듯 다시 생기를 얻는다. 안현순의 선율과 바리톤 최규현의 목소리는 청자의 내면을 파고들며 음악의 결 속으로 점점 더 끌어들인다.
‘그대를 가슴에 넣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 파도야 네가 언제 내 가슴을 친다 했나’ 이 두 시구가 반복될수록, 노래는 점점 중심으로 피어나 정서의 심지를 흔드는 후렴이 되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간주 이후 되풀이되는 구절들은 그동안 눌려 있던 감성의 층을 하나씩 걷어내며 관객의 내면을 정화의 길로 이끈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여진이 음악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그 미세한 흔들림은 끝내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에 머문다. 후주(後奏)의 네 마디가 끝나갈 즈음 파도는 서서히 잦아들고 그것은 마치 ‘상처를 품은 고요한 해안선’처럼 잔잔한 수면 아래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는 사랑의 서사이자 감정의 해안선이며 감각과 상처, 울림과 침묵이 공존하는 하나의 하모니로 다가온다.
5. 이청리의 시 <그 섬에 고운님이 있었네> — 예술가의 고독과 불멸
이청리 시인은 김영갑의 존재를 시로 다시 불러냈다. 용눈이오름을 오를 때마다 왜 그리도 가슴이 미어졌을까. 그의 시 한 줄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그곳 김영갑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필자 역시 김영갑을 떠올릴 때면 미어지게 그립다. 김영갑의 삶에서 마주한 그의 예술혼은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남겨준 스승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속 모리 교수의 모습과 겹쳐진다. 끝을 향해 가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던 예술과 가르침 그 불꽃 같은 정신은 필자가 만났던 청소년들에게도 종종 들려주는 감동의 이야기다.
지금도 그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의 서두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나는 들녘으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가서 며칠이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라는 섬을 위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시선과 마음을 다해 아름다움을 기록한다. 루게릭병과 싸우며 불태운 그의 삶은 이제 이청리 시인의 시 <그 섬에 고운님이 있었네>와 그에 곡을 붙인 가곡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이청리 시인 역시 수많은 시집을 통해 김영갑 작가처럼 제주의 사랑을 온몸으로 이어가는 작가이다. 현재 제주에 거주하며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사라져가는 풍경과 기억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시로 담아내고 있다.
용눈이오름을 오를 때마다 왜 이리도 가슴이 미어지는 걸까
바라만 보아도 서러움이 밀려와
가슴이 이 가슴이 미어질 듯 목메이고
불꽃같은 그리움이 밀려오는 걸까
불꽃같은 그리움이 내게로 밀려오네
살아서 불멸을 손에 잡는 자
세상도 그 마음 어찌하지 못했으리
바람이 바람이 잠들지 않는 이 섬을
이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 내어
바람이 바람이 잠들지 않는 이 섬에
아름다움을 일구어낸 고운님이여
그 섬에 고운님 있었네
- <그 섬에 고운 님이 있었네> 전문
이 시는 사진작가 김영갑을 떠올리며 쓴 헌시(獻詩)로, 제주 자연과 예술가의 삶이 겹쳐지는 지점을 애틋하게 포착하고 있다. ‘용눈이오름을 오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은 존재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그리움과 통증의 토로다. 바라보기만 해도 서러움이 밀려드는 풍경은 김영갑이 생전에 담아낸 섬의 고단한 아름다움과 맞닿아 있다.
그의 그리움은 ‘불꽃같은’ 감정으로 다가오며, 한 존재가 품은 예술혼 혹은 삶에 대한 절실함으로 읽힌다. 시인은 ‘살아서 불멸을 손에 잡는 자’라는 구절을 통해, 병든 몸으로도 마지막까지 섬을 기록하고자 했던 김영갑의 집념을 기린다. 바람이 쉬지 않는 이 섬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아름다움을 일구어낸 그 사람. 시인의 마지막 구절 “그 섬에 고운 님 있었네”는 자연과 예술, 인간의 고통과 숭고함이 하나의 풍경처럼 겹쳐지는 순간을 응축하고 있다.
특히 ‘용눈이 오름을 오를 때마다 왜 이리도 가슴이 미어지는 걸까’라는 시구를 따라가다 보면, 카메라를 든 채 제주를 기록하던 한 사람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병든 몸으로도 결코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김영갑. 이청리 시인은 그 존재를 시로 불러냈다.
그 섬은 삶과 죽음, 사랑과 고독, 예술과 기억이 맞물리는 내밀한 무대가 된다. 안현순은 그 무대를 선율로 옮겨냈다. 바리톤 김훈의 목소리는 그 울림을 가슴 깊이 끌어올리며, ‘살아서 불멸을 손에 잡는 자/ 세상도 그 마음 어찌하지 못했으리’라는 시구가 지닌 무게를 절절히 전한다. 그것은 시간의 건너편에서 존재를 다시 불러내는 노래이자 그가 남긴 시선의 여운이다.
간주 이후 되풀이되는 “바람이 바람이 잠들지 않는 이 섬에/ 아름다움을 일구어낸 고운 님이여/ 그 섬에 고운 님 있었네”라는 후렴은 슬픔과 존경이 맞물린 절창으로 이어진다. ‘고운 님’은 단지 특정한 인물을 넘어, 제주를 사랑했던 이들 모두를 부르는 이름처럼 들린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 섬 어딘가에 숨 쉬고 있는 존재들 그들에 대한 노래이다. “그 섬에 고운 님 있었노라”는 그 속울음 같은 고백이 가슴을 울린다.
6. 고영숙의 시 제주 4·3노래 <섬의 연가>-4월의 섬, 희망을 향하여
시는 절망을 넘어 희망을 노래한다. 살아남은 자의 무게를 지닌 채 끝내 서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 그 믿음이 이 노래의 숨결이며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다.
4월의 통꽃잎은 섬의 지문처럼 우리 가슴에 아프게 찍힌다.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은 해마다 거리를 돌며 아직도 아물지 못한 이름들을 부른다. 이 섬 어디에도 그 아픔과 무관한 곳은 없다. 필자 또한 그 시간과 연결돼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 유족 보상금 사백만 원을 받자 난산리 친정 하늘에 떠 있는 별 넷이 어느 날보다 또렷하게 다가왔다. 한날한시에 사라진 네 생의 자취가 그날의 총성처럼 서늘하게 반짝였다.
붉은 보상금 서류를 바라보는 순간 막내 이모의 울음이 되살아났다. 외할머니가 세 살배기 막내 이모를 안고 취조실에 섰던 날, “어멍 집이 가자, 어멍 집이 가자… 아앙앙.” 말 한마디, 울음 한 줄기에도 죽고 사는 갈림길이 놓여 있던 시절이다. 그 소리가 생사의 열쇠를 쥔 한 경관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모른다. 그는 “이 아기 데리고 빨리 꺼져 버려”라고 외쳤고 외할머니는 그 틈을 타 말살의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상흔은 지워지지 않았으나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살리고자 했다. 그 경관의 진심이 무엇이었든 죽음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작은 빈틈이 한 생을 이어 준 것이다. 고영숙의 <섬의 연가>도 그 틈을 닮아 있다. 피로 물든 유채꽃이 스러진 자리에 새순이 돋는 4월, 반복해 읽어본다.
잃어버린 들판에 새봄이 다시 태어나리니
우리섬의 사월을 기억하리라
아물지 않은 상처에 서러웠던 이름이여
당당히 그 이름을 불러주리라
붉은 꽃잎들이 쓰러져간 자리
그곳에 다시 돋는 새순이여
절망의 끝에서 새 희망을 피우노라
진실은 뜨거운 생명으로 되살아나리니
용서의 바람 불어와
침묵하던 대지도 끌어안으리
진달래 지천인 푸른 산천에
떠돌다 지친 바람의 넋이여 내 등을 눕혀라 하늘이여 땅이여
설운 맘 보듬어 보듬어 나를 편히 잠들게 하라
희망의 사월에 나는 다시 꿈을 꾸노라
일렁이는 평화의 물결 온섬 물들이면
쓰러졌던 풀잎들 다시 일어서
굳은 맹세로 이 땅 위에 빛의 춤을 추리
가슴을 열고 상생의 깃발 아래
모두 모여 어둠 떨치고 눈부신 새벽 열라
한라 오름들 외치는 평화의 함성이여
- 제주 4·3노래 <섬의 연가> 전문
제주 4·3노래 <섬의 연가>는 고영숙 시인이 제주 4·3의 아픔을 기억하며 쓴 시로, 2015년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한 전국 공모에서 추모곡 가사로 선정된 작품이다. 이 시는 잃어버린 들판과 아물지 않은 이름들을 불러내며, 언어와 선율을 통해 되살아나는 생명과 화해의 메시지를 품은 평화의 노래다. 안현순 작곡가에 의해 음악화되었으며, 제주도립교향악단과 합창단, 그리고 독창 연주를 통해 깊은 울림으로 전해졌다.
77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날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무게를 온전히 짊어진 채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섬의 연가>는 바로 그런 생의 정직한 태도에서 붙여진 가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붉은 유채꽃의 들판을 지나며 우리는 아물지 않은 이름을 다시 부르고, “당당히 그 이름을 불러주리라”고 다짐한다. 죽음 속에서 피어난 생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앞으로를 위한 노래가 된다.
고영숙 시인의 언어는 화해와 상생의 이미지를 잔잔히 깔아 놓으며 가슴 깊은 곳의 울음을 두드린다. 안현순 작곡가는 그 언어 위에 바이올린을 얹어 상처를 다시 밝혀 주고 기억을 조용히 아름다움 속에 놓는다. 노래는 “잃어버린 들판에 새봄이 다시 태어나리니”로 시작해 4·3 이후의 시간을 불러낸다. 아직 아물지 않은 들판 위에서 우리는 봄을 떠올리고 “당당히 그 이름을 불러주리라”는 다짐으로 이름 없이 사라진 존재들을 다시 호명한다.
언어 사이에 놓인 침묵은 바이올린 카덴차로 이어져 말을 잃은 영혼의 떨림을 전한다. 약 45초 동안 이어지는 현의 진동은 제주가 얼마나 오래 말을 삼켰는지 증언하며 그 시간은 추도의 순간이자 부활을 준비하는 순간이 된다. “진실은 뜨거운 생명으로 되살아나리니”라는 구절은 희생의 이름들이 생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감이다. 땅과 사람과 하늘이 함께 울리는 이 부분은 4·3이 과거가 아닌 오늘 우리가 응답해야 할 진실임을 일깨운다.
2절로 넘어가며 곡은 추모에서 다짐으로 나아간다. “굳은 맹세로 이 땅 위에 빛의 춤을 추리”는 저항의 리듬을 품은 평화의 춤이고 “한라오름들 외치는 평화의 함성”은 섬 전체가 기억의 언덕에서 부르는 대합창이다. 이 노래는 기억의 노래이자 미래를 여는 서곡이다. 안현순 작곡가는 바이올린과 목소리로 말 없는 말을 다시 불러내며 절망과 희망 사이를 진동하는 선율로 우리의 심장을 두드린다.
7. ≪제주, 애(愛)≫가 완성한 시와 음악의 복합예술
≪제주, 애(愛)≫는 제주 시문학과 현대 예술음악이 서로를 확장해주는 '장르 간 대화'의 현장이었다. 시는 멈춰 선 감정을 해석의 여지로 남겨두지만 음악은 그 감정에 박동을 부여한다. 특히 ‘제주’라는 구체적인 지역성과 정서가 시적 언어로, 그리고 다시 음악적 언어로 변환되며 이 발표회의 작품들은 다성적 울림을 지닌 복합예술로 완성되었다.
멀티페르소나 시대에 놓여 있는 오늘날의 관객은 하나의 정체성이나 언어, 혹은 장르에 고정되지 않는다. 이 발표회는 바로 그러한 시대적 감수성에 응답하고 있다. 시와 음악, 퍼포먼스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 무대는 서정과 서사, 제주어와 표준어, 전통과 현대, 민속과 클래식이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예술의 실험장이었다. ‘낯설게 하기’와 ‘정서적 몰입’이 동시에 작동하며 다양한 감각과 정체성을 지닌 관객에게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제주어의 회복력이었다. <아영고영>처럼 입말의 생동을 살린 작품은 제주어가 단지 과거의 언어가 아닌, 지금도 유머와 철학을 담는 살아있는 언어임을 증명했다. 아울러 이 무대는 공동체의 기억이 다시 피어나는 의례의 장이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무대 <사랑을 만나서>에서 모든 출연자가 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관객들까지 노래 속으로 끌어들이며 함께 호흡하고 제주섬에 물들어 가게 했다.
이처럼 ≪제주, 애(愛)≫는 대중과 가곡을 잇는 시간이었다. 시를 음악으로 풀어내고 제주어에 숨결을 불어 넣은 이 무대는 통상적 공연의 범주를 넘어선 하나의 문화적 실천 현장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 전반에는 다양한 음악적 장치들과 더불어 김효은 작가의 캘리그래피 영상이 더해져 시각적 예술성과 감성의 깊이를 한층 배가시켰다. 아울러 제주 4·3을 노래한 ‘섬의 연가’에서는 양정환 감독의 독립영화 ≪4월 이야기≫가 배경 영상으로 상영되어, 시와 음악 그리고 영상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복합 예술의 형식을 완성해 냈다.
이 입체적인 무대 안으로 대중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점은 지역성과 예술성 그리고 대중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편의 예술이었다. 결국 이 발표회가 남긴 가장 큰 울림은 ‘섬을 울리는 복합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증명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여름밤의 수선화를 떠올리게 했다. 하얗게 피어나던 촛불의 무대, 말없이 번져가던 멜로디...그것은 삶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오래된 정서를 다시 피워내는 우리의 숨결이었다. 안현순이 빚은 ≪제주, 애(愛)≫. 음악은 시의 숨결을 이어주고, 시는 음악의 심장을 덧입히며, 우리는 이 울림 속에서 ‘제주’라는 말을 다시 부르게 된다.
※ 안현순 작곡발표회 ≪제주, 애(愛)≫는 오는 7월 5일(토요일 오후 5시), 서귀포 김정문화회관에서 같은 내용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