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아의 독서칼럼] <25>
1장 창발적 언어 미학_입말과 문학의 접점 《제주어 용례사전》
2장 지역문학의 회복 가능성, 양전형의 제주어 장편소설 ≪목심≫
1. ≪목심≫의 존재론적 서사구조와 감정의 회복
2. 제주어문학을 통해 불러낸 공동체 의식
3. 기술문명 시대의 윤리적 경계와 존재의 회귀
4. 제주어 소설 속에서 피어나는 지역문학
3장 제주어로 빚은 양전형 작가의 시학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외 제주어 시집편
양전형 작가의 ≪목심≫은 한국문학사에서 전면 제주어로 쓰인 첫 장편소설이다. 1960년대 이후 제주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펼쳐낸 이 작품은, 지역문학이 지닌 생명력과 서사의 깊이를 떠올리게 한다. 심장의 고동처럼 희로애락의 리듬이 반복되는 플롯 구성으로 제주 공동체의 말과 기억은 되살아나고, 기술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의 경계는 섬세하게 포착된다. 아울러 과학기술의 발전이 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세대의 일면을 경고한다.
전면 제주어로 쓰인 이 소설은 제주어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 표준어판을 함께 펴냈고, 최근에는 개정된 제주어판으로 새롭게 돌아왔다. 제주어라는 고유한 언어 형식을 통해 지역성과 보편성, 언어와 존재, 윤리와 서사의 관계를 되짚는 이 작품은, 지금 여기에서 ‘지역문학의 회복’ 가능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소설로 다가온다.
한 권의 소설이 하나의 언어를 살려낼 수도 있다. ≪목심≫이라는 제목은 ‘목숨’의 제주어로, 존재의 본질을 가만히 응시하게 하는 언어로 작용한다. 이 단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 속에는 제주인의 삶의 방식과 말투, 그리고 공동체가 공유해온 기억과 정서가 촘촘히 스며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제주어는 지역문학의 한복판에서 언어의 숨결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 결국 ≪목심≫은 소멸 위기에 놓인 제주어를 다시금 우리의 심장으로 되돌리는 가능성을 비춰주는 작품이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대 이후의 제주를 배경으로 주인공 애순이의 삶과 사랑, 세대 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국내외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얻었다. 시적인 나레이션과 따뜻한 대사, 그리고 인물의 삶을 정서 깊게 포착한 장면들은 제주어라는 언어의 힘과 시대를 관통하는 서사의 보편성을 잘 드러냈다.
≪목심≫ 역시 유사한 공간과 시대를 공유하며, ≪폭싹 속았수다≫와 깊은 정서적 공명을 이룬다. 그러나 시선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이동하고, 서사의 결은 보다 내면적인 윤리적 성찰로 확장된다. 특히 “살아산다, 살아산다”는 말은 주인공 일구가 죽음의 문턱에서 본능처럼 떠올리는 독백이자,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생의 언어이다. 이는 ≪폭싹 속았수다≫의 “살암시민 살아진다”와도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후자가 공동체의 어른들이 건네는 긍정적 다독임의 언어라면, 전자는 절박한 생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처절한 명령에 가깝다. 두 문장 모두 제주어가 지닌 언어적 진폭과 정서적 밀도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예이며, 제주어의 존재론적 힘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처럼 ≪목심≫과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를 살아간 사람들의 언어와 삶을 품고 있다. 공간과 시대 배경, 서사의 결이 겹치는 두 작품은 서로 다른 플롯과 관점으로 제주의 정서를 서사의 중심에 세운다.
≪목심≫ 역시, 19편의 연작 드라마로 각색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각 장면이 뚜렷한 결절점과 정서적 밀도와 사회성을 지닌 소설이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말로 엮인 삶의 연속성은 소설의 완성도뿐 아니라, 독자와의 감정적 공명까지도 견인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1. ≪목심≫의 존재론적 서사구조와 감정의 회복
서사의 전개 흐름은 위기 → 생존의 언어 → 기억과 관계 → 정서의 회복 → 상실과 윤리적 감응으로 이어지며, ≪목심≫은 존재와 언어, 그리고 공동체적 윤리를 유기적으로 직조해낸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심장의 언어와, 떠난 존재들의 목소리를 통해 되살아나는 감정의 결은, 이 소설이 품은 윤리적 울림을 더욱 깊게 만든다. 특히 제주어의 말맛과 정서적 촉감은 인물의 삶을 한 땀씩 꿰매듯 그려내며, 독자에게도 자신의 ‘심장’과 마주하게 하는 문학적 체험을 선사한다.
① 존재의 벼랑에서 시작된 말 ― 절체절명의 개막
≪목심≫은 들개 떼에 쫓기는 주인공의 절박한 장면으로 막을 연다. 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은 이후 전개되는 지난한 삶의 궤적(2~18편)을 열어가는 내적 프레임의 장치로 작용하며, 생존의 의지와 더불어 기억, 관계, 속죄, 사랑, 상실, 공동체적 연루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서사의 기틀을 형성한다.
작품을 읽는 동안 문득, 독자는 침묵 속에 숨어 있던 자아의 목소리를 마주하게 된다. 오래전 가슴 깊이 묻었던 감정과 기억이 불쑥 떠오르며, 어느 순간 심장이 다시 뛸 것이다. 양전형 작가는 주인공 일구를 통해 심장과 대화하며, 말의 진동과 감정의 떨림으로 존재를 위로하는 문학적 장면을 길어 올린다. 그 감응의 순간은 독자인 우리들 또한 각자의 ‘심장’ 앞에 세우며, 삶의 본질을 되묻게 한다.
작품의 첫 장면, 십년벵으로 인해 목숨이 5년밖에 남지 않은 어느 날, 주인공 일구가 준기 삼촌의 무덤 앞에서 터뜨리는 고백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생의 정조를 응축하여 드러낸다.
“준기삼춘! 나 어떵ᄒᆞ민 좋으코양?”이라는 외침은 생존의 의지와 무력감이 교차하는 절박한 자기 고백이자, 존재의 끝자락에서 터져 나오는 심장의 언어다. 일구가 준기 삼촌의 무덤 앞에 앉아 술을 ‘괄락괄락’ 들이키며 속마음을 쏟아내는 장면은, 자기 존재의 바닥을 향해 던지는 절박한 독백이다. 그러나 그 술잔이 비워지기도 전에, 서사는 곧바로 절체절명의 위기로 전환된다. 일구는 그 자리에서 눈 덮인 공동묘지를 가로지르며, 들개 떼와 까마귀 무리에 쫓기는 극한의 장면으로 내던져진다.
② “살아산다!” ― 심장으로부터 터져 나온 생의 언어
“살아산다! 살아산다!”라는 외침 속에서 그는 눈에 빠지고, 개에게 물리며, 본능적으로 뒤치기를 날린다. 이 일련의 움직임은 실존의 심연을 두드리는 처절한 사투로 읽힌다. 작가는 감정의 최고점을 터뜨리는 고백의 장면과 물리적 위협이 겹쳐지는 순간을 병치함으로써, 정서적 절정과 생명의 경계가 교차하는 결정적 전환 지점을 연출한다.
이 장면은 독자에게도 익숙한 문학적 원형들을 환기시킨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에서 정글 속 노인이 암살쾡이와 마주하던 순간처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가 상어 떼에 맞서 싸우는 고독의 장면처럼, ≪스피릿 베어≫의 콜이 백곰과 대면한 위기의 순간처럼, ≪목심≫의 서두 또한 인간 존재의 가장 고독한 결단과 감각의 벼랑에 선 장면을 포착해낸다. 이처럼 서사의 초입부에 배치된 위기 장면은, 주인공의 내면적 균열과 윤리적 갱신을 예비하는 정서적 복선으로 기능하며, 이후 펼쳐질 삶의 회귀 서사를 위한 서사적 지반을 형성한다.
무엇보다 이 장면의 청각적 구성은 인상적이다. “개덜광 가마귀덜이 제만썩 울르는 소리”는 죽음의 기척이 위협으로 다가오는 음향으로 작용하며, 그 위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살아산다! 살아산다!”는 절박한 생의 명령이다. 그것은 언어 이전의 심장 박동처럼, 말보다 앞서는 가슴의 울림이며,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존재의 윤리가 절실하게 발화되는 지점이다.
③ 정서의 멘토, 말로 살아 있는 존재― 준기 삼촌의 목소리
“일구야, 심장광 ᄆᆞ음은 ᄒᆞ나여…”로 시작되는 준기 삼촌의 환청은 일구에게 삶을 지탱해주는 정서적 기억의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구의 내면에 살아 있어 삶의 결정을 이끌고 감정을 다독이는 ‘정서적 멘토’로 남는다. 작품 속에서 ‘심장’은 인간의 진심과 감정, 윤리적 결단이 응축된 상징어로 기능하며, 제주어는 그 떨림을 가장 생생하게 전달하는 감각적 언어로 작용한다.
준기 삼촌이 전하는 “심장이 멈췄다고 우리가 죽는 게 아니여. 마음이 살아 있으면 심장도 끝까지 살아 있는 거여”라는 말은, 생명과 존재를 구분하는 철학적 사유이자, 몸과 마음이 함께 살아 있어야 한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일구는 이 말을 되새기며 “삼춘도 죽지 안ᄒᆞᆫ 거우다”라고 고백한다. 타자의 목소리를 통해 살아 있는 감정의 연속성을 확인하고, 관계의 지속성을 말로 되살리는 이 장면은, 죽음을 단절이 아닌 기억을 통한 연속으로 수용하는 윤리적 태도를 드러낸다. 결국 준기 삼촌은 회상의 대상이 아니라, 말의 울림을 통해 살아 있는 존재로 현재에 감응하는 인물이다.
④ 말의 감촉과 향기의 기억― 시, 꽃, 그리고 존재의 회복
비몽사몽 간에 들려오는 준기 삼촌의 말은, 이미 떠난 아내와의 시적 대화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돔박꽃’과 ‘히야신스’는 감정의 언어이자 회복의 상징으로 기능하며, 제주어 고유의 어조와 말맛이 정서를 더욱 실감 나게 되살린다.
삼촌이 詩를 쓸 때 곁에 머물렀던 아내는 돔박꽃의 향기를 빌려 마음을 건넸지만, “詩는 꺼끌꺼끌하다”며 끝내 그의 언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간다. 감정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詩의 한계는 삼촌의 내면에 오래도록 응어리로 남았고, 그는 한동안 글을 놓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이 장면은 상실의 반복이 아니라, 정서를 회복하자는 내면의 의지로 전환된다.
삼촌은 이제 히야신스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마당 한구석에 그 꽃을 잘 가꾸라고 당부를 남긴 채 사라진다. 이는 ‘향기’라는 감각을 통해 시적 감정을 다시 되살리려는, 말 너머의 위안이자 삶을 이어가는 회복의 언어다. 무엇보다 이 장면에 배어 있는 ‘ᄆᆞᆫ질ᄆᆞᆫ질ᄒᆞᆫ, 꺼끌꺼끌ᄒᆞ게, 고와뷉데다마는, 혀뜩ᄒᆞᆯ...’등등 제주어 고유의 어조와 말맛은 정서를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며, 정겹고도 실감 나는 표현들 속에서 말이 곧 기억이고 향기이며 존재의 흔적이 되는 방식을 섬세하게 구현한다.
생전의 준기 삼촌은 일구에게 정신적 기반을 만들어준 존재였다. 그는 따뜻한 내면의 정서를 시적인 감성으로 표현하는 인물이었다. 싸락눈이 지붕에 부딪히는 소리를 “가심 두들이는 소리”라 표현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탕탕 튄다”고 말하는 장면은, 일상의 미세한 감각조차 생의 떨림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섬세한 존재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준기 삼촌에게 언어란 존재의 리듬을 감지하고 기록하는 방식이자, 감정을 담아내는 詩적 매개였다.
이러한 태도는 일구의 삶에 깊이 각인된다. “가심이 뜨거울 때, 지녁이 정성ᄒᆞᆫ 만이 살당 가는 거”라는 삼촌의 말처럼, 일구는 성공이나 제도적 안정보다 ‘가슴이 뜨거운’ 길을 선택한다. 그는 대학 진학 대신 가족을 택하고, 공동체와 사랑, 책임에 응답하는 삶의 윤리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1950년대 이후 전쟁과 결핍의 제주섬에서, 청상과부였던 어머니와 한량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일구는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책임지며 방목과 학업을 병행했고, 그렇게 생존의 언어를 체득해 나갔다. 준기 삼촌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청년이 되어 존재의 진정성과 윤리적 선택이라는 ≪목심≫의 핵심 주제를 삶으로 구현해낸다.
진정성 있는 청년으로 성장한 일구는 마침내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선다. 그는 수정이라는 인물을 떠올리며 “이녁 소곱더레 자꼬 들어사멍”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이미 그녀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사회적 조건과 부모의 반대를 극복한 끝에 새살림을 시작하고, 온 마을의 기쁨 속에서 태어난 아들 ‘준이’는 일구와 수정에게 생의 한가운데서 찾아온 따뜻한 희망의 상징이 된다.
⑤ 상실과 사랑을 건너는 언어 ― 심장의 윤리와 생의 연속
행복한 결혼생활은 한동안 소박하지만 단단한 평온으로 이어졌다. 서로를 지탱해주는 말과 눈빛, 마을의 축복 속에 태어난 아들 준이는 두 사람의 삶에 빛처럼 스며들었다. 새살림의 고단함마저 기쁨으로 덮이며, 일구와 수정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도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어느 날, 삶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너졌다.
“우리 불쌍ᄒᆞᆫ 준이…”라며 오열하는 아내와, “이녁 따문이 아니난…”이라며 아내를 다독이는 일구의 장면은, 말로 고통을 나누는 윤리적 실천의 한 형태다.
일구의 아내는 “우리 불쌍ᄒᆞᆫ 준이”를 연신 되뇌며 목 놓아 운다. 그 울음은 자식을 지켜내지 못한 어미로서의 처절한 절망이며, “나 때문이야…”라는 자책 속에는 씻을 수 없는 죄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이 장면은 최근 화제작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과 겹쳐진다. 새 생명을 품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던 애순 역시,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아이를 허망하게 떠나보낸다. 그녀가 마주한 상실과 혼란, 그리고 하늘을 향해 원망조차 하지 못한 채 껴안은 무력감은, 소설 속 일구 부부가 감내하는 슬픔과 동일한 무게로 다가온다.
드라마에서도, 소설에서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은 그 어떤 언어로도 설명될 수 없다. 그 슬픔은 위로나 논리로는 닿지 않는 심연이며, 감당할 수 없는 부재를 가슴에 묻는 ‘침묵의 언어’로만 전해진다. ≪목심≫에서 아내는 울고 또 울며 자신을 탓하고, 일구는 그런 아내를 “당신 때문이 아니야”라며 다독인다. 그의 말은 부부가 함께 짊어져야 할 상실의 무게를 나누려는 절절한 언어다. 이 사랑과 슬픔의 언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짙은 울림으로 이어지며, 자식을 잃은 부모가 평생 껴안고 살아가는 원형적 슬픔을 소리 없는 눈물과 함께 빚어낸다.
2. 제주어문학을 통해 불러낸 제주인의 삶과 공동체
① 공동체의 의례와 풍습
작품 속 언어는 의사소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제주의 삶과 의례, 그리고 그 안에서 발화되는 말들이 ‘공동체적 말맛’으로 살아나며, 한 시대의 정서와 풍속을 품고 있다. 문장은 과거의 시간을 부르고, 말은 그 안에서 공동체의 기억을 움직인다.
제주의 심방굿은 가족이나 마을의 안녕을 비는 의례로, 어머니 세대가 슬픔과 기원을 감내하며 믿음을 지켜낸 삶의 방식이었다. 굿은 신과 인간을 잇는 수행의 장이었고, 병든 동생을 위해 일구 어머니가 심방굿을 부르던 장면은 비극과 치유가 교차하는 절절한 순간으로 그려진다. “쑤어나라!”라는 심방의 주문과 어머니가 절하며 비는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터지는 간절한 말의 몸짓이다.
(생략)
상량식은 집의 완성을 축원하는 의례로, 닭의 피를 상모루에 바르고 지붕 위에 올려 ‘살아 있는 심장’을 집에 봉헌하는 상징적 장면이 펼쳐진다.
상량식이 끝난 마당에선 술과 음식이 오가고, 금이 간 시멘트 울타리와 함께 피어난 국화꽃은 이 집이 뿜어낼 정서적 온기를 예감케 한다. 꽃은 스스로 고운 줄 모르고 그저 향기와 웃음을 퍼뜨리듯, 일구도 새집을 짓는 기쁨 안에서 자기 마음을 내보인다. 이 장면은 삶의 의례와 노동, 공동체와 감정이 한데 어우러진 제주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이 외에도 결혼식, 장례 의례, 음력 유월 스무날 ‘닭 잡아먹는 날’ 풍습 등, 다양한 통과의례와 삶의 장면들이 공동체의 정을 나누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② 주변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제주공동체의 삶
(생략)
고등학교에 진학한 일구는 성격과 생김새가 비슷한 찬용이를 만나 가까워진다. 말수는 적지만 야무진 찬용 덕에 일구는 자주 어영마을 찬용이네에 들른다. 상군 해녀 어머니와 선장 아버지, 하군 해녀 누이가 있는 찬용이네는 해산물과 어업 도구로 가득한 집이다. 중산간 출신인 일구는 그 따뜻한 분위기에 끌려 가끔 하룻밤을 묵기도 한다.
이 장면은 일구가 어촌 공동체의 삶을 경험하며 내면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출한 산간 생활을 해온 일구에게 찬용이네의 해산물 풍경과 넉넉한 인심은 공동체의 온기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경험이 된다.
위 대목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일구, 찬용, 용성 세 친구가 오랜만에 재회해 당구를 치고 무근성의 고망술집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나누며 옛날처럼 웃고 떠드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분위기는, 그곳에 있던 여인을 둘러싼 한 남자의 난입으로 갑자기 깨지고, 술상은 엎어지며 아수라장이 된다. 여인의 남편인 주팔이 친구들까지 불러 난동을 부리자 일구와 찬용, 용성은 함께 맞서 싸우고 결국 경찰서까지 가게 된다. 상황은 의외로 정리되지만, 이 사건은 친구들이 어릴 적처럼 삶이 거칠게 몰아쳐도, 여전히 등을 맞대고 버틸 수 있다는 믿음. 끈끈한 동료애와 공동체적 연대의 일면을 보여준다.
오라동은 양전형 작가의 자전적 배경지로, 설 명절 즈음에는 경노잔치, 봄에는 방선문 참꽃축제 등 계절마다 공동체의 정을 나누는 행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마을이다. 장구 소리와 민요, 어르신의 덕담과 마을 사람들의 춤사위가 어우러진 잔치는 세대 간 정서를 잇는 문화적 연대의 장이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도 갈등은 생긴다. 술에 취한 청년 필추와 어르신 간 말다툼은 긴장을 불러오지만, 일구가 개입해 사태를 수습한다. 오라동 공동체는 이처럼 갈등 속에서도 중재와 화해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며 삶을 함께 이어간다.
만구는 자신이 ‘십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딸 미라의 성년의 날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고자 한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늘 밝은 딸을 위해 금목걸이를 선물하고 싶어진 만구는, 묘지를 만들던 얼마전 인부 시절을 기억해낸다. 위 장면은 제주시 황가의 묘를 파헤쳐 시신의 목에서 금목걸이를 훔치는 대목이다. 그는 죄책감과 후유증 속에서도 목걸이를 새것처럼 바꾸고 딸에게 선물하며 큰 기쁨을 느끼지만, 결국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자수한다. 만구는 죄값을 치르고자 한 선택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도덕적 고뇌, 그리고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작가는 공동체가 함께 겪은 기억과 개인의 서사를 통해 제주어를 몸에 지니고 살아온 삶의 정서를 거시적으로 그려낸다. 이처럼 기억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상실의 자리를 따뜻하게 보듬는 과정이기도 하다.
변학수의 저서 ≪문학적 기억의 탄생≫에서 “문학적 기억은 저장된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감을 채우기 위한 의미의 생성 행위”라고 말한다. 이처럼 문학은 부재의 자리를 상상으로 새로운 층위를 창조해낸다. ≪목심≫은 바로 그 기억의 생성과 재구성의 서사다. 제주인들이 살아온 지난한 삶의 풍경을 제주어로 생생히 되살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롯된 상실과 정념의 흔적들을 복원해낸다. 특히, 작가가 살아온 오라동의 정서와 공간이 제주 공동체의 문화와 함께 살아 숨 쉬며, 잊혀져가던 일상과 감정을 오늘의 이야기로 따뜻하게 되살린다.
3. 후반부 서사 구조-기술문명 시대의 윤리적 경계와 존재의 회귀
기술문명이 삶의 조건을 재편하고 있는 지금, 문학은 어떻게 인간의 존재를 되묻고 있을까. ≪목심≫의 후반부 서사는 이 물음에 정면으로 응답한다. 시스템의 균열 속에 드러난 문명의 위기 → 생존을 위한 몸의 본능적 저항 → 관계를 매개로 이어지는 감정의 기억과 상실 속에서도 되살아나는 온기의 감각에서, 끝내 도달하는 존재의 회귀와 윤리를 성찰한다.
① 문명의 위기
기후 이상, 팬데믹, 인공지능의 확산은 인간의 삶을 급격하게 흔들고 있다. ≪목심≫은 이 시대적 불안을 배경으로 생명과 기술 사이의 긴장 지점을 응시한다.
하루는 겨울옷을 입어야 했고, 바로 다음 날은 여름옷을 꺼내야 했다. 계절의 리듬은 뒤섞였고, 봄은 마치 어디론가 사라진 듯하다. 사월의 어느 날, 한라산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은 이 변화가 단지 기후의 문제가 아님을 일깨운다. 우리는 지금, 예측 불가능한 기후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기후만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접촉은 끊기고, 불신과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침투 앞에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사회 시스템의 허점을 동시에 목격했다.
그 여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지우며, 알고리즘이 삶을 재구성하는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일자리 재편에 대한 불안과 함께 문화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며 정보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득지유실(得之有失), 얻는 것이 곧 잃는 것이 되는 시대. 고대의 사유는 오늘에 더 절실히 와닿는다.
며칠 전, 국내 최대 통신사에서 발생한 해킹 사태는 그 절정을 보여주었다. 핸드폰 사용자 절반에 달하는 사람들의 정보가 유출되고, 그들은 불안에 떨며 유심칩을 바꾸기 위해 긴 줄에 섰다. 필자 또한 그 ‘보이지 않는 줄’의 끝에 서 있었다. 기술의 진보는 더 이상 편리함이 아니라 불안 위에 놓인 일상이 되었고, 디지털 문명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의 얼굴로 다가오고 있다.
② 몸의 본능적 저항
십년벵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물들은 자신에게 남은 생을 숫자로 세며 절망하지만, 일구는 끝까지 살아 있으려는 몸의 본능을 드러낸다.
≪목심≫ 후반부에 등장하는 ‘십년벵’ 서사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위에서 설정한다. 생명의 리듬을 조작하려는 인간의 시도와 그것이 초래하는 파국적 결과를 형상화한 이 서사는, 기술문명과 생명윤리 사이의 경계 위에서 던지는 강력한 경고이자,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 문학적 성찰로 읽힌다. 기술문명이 우리를 낯선 세계로 밀어넣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점점 더 ‘뜨거운 심장이 있는 삶’으로 회귀하고 싶은 본능적 갈망에 휩싸이고 있다.
소설 속 ‘십년벵’이 번지게 된 마을은, 경노잔치의 평화로 시작되지만 곧 장례의 혼란으로 급전하며 생명의 순환이 무너진 공동체의 불안을 그려낸다. 십년벵은 인간의 심장을 인공적으로 대체해 생명을 10년 연장하려는 연구 중, 소왕벌을 매개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며 발생한 치명적 감염병이다. 벌에 쏘이면 정확히 10년 뒤 심장이 멎고, 치료약도 없어 사람들은 ‘십 년짜리 목숨’이라는 절망에 빠진다. 이는 생명의 리듬을 조작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낳은 윤리적 붕괴이자, 기술문명이 인간의 한계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 바이러스는 감옥까지 침투하며, 인간이 어디에서도 절대적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존재론적 위기를 암시한다. “게민, 이제 똑기 칠년 남은 거 아니라?”는 대사는 감염된 재소자들이 남은 생을 숫자로 환산하는 불안의 언어다. “아~ 안뒈여수다예. 십년벵바이러스가 들어앚아신게마씀…”이라는 체념은, 인간 삶이 기술의 통제 아래 놓였다는 불가역적 현실을 받아들이는 목소리다.
③ 존재의 회귀와 윤리적 성찰
죽음을 앞둔 일구는 어머니와 준기 삼촌, 사랑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정서적 중심을 다시 찾아간다. 감염 이후에도 관계의 기억은 삶을 이어가는 힘이 된다.
십년벵의 유효기간이 끝나갈 무렵, 일구는 기력이 빠져나감을 느끼고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다. 팽나무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어머니와 준기 삼촌을 떠올리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119에 실려가 인공심장 수술을 받고 살아난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기쁘지 않다. 심장은 뛰지만 마음은 얼어붙었고, 따뜻한 감정도 사라졌다. 살아남았지만 무기력과 허무 속에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생명은 연장되었으나 ‘심장의 온기’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따뜻했던 인간이 냉혈 인간으로 변이된 것이다.
봄이 왔다는 외부의 소식과 달리, 일구의 내면은 여전히 얼어 있다. 이는 ‘심장은 뛰지만 마음은 멈춘’ 인간 내면의 공허를 상징한다.
한편 사회는 십년벵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희망을 전하며 바깥은 봄빛으로 가득하지만, 일구의 내면은 여전히 차갑고 고립되어 있다. 생존은 가능했지만, 그 삶은 더 이상 '살아 있음'이 아니다.
작품의 마지막, 두모악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제주어 뉴스는 삶의 끝자락에 선 한 존재의 마지막 걸음을 암시할 뿐이다. 구조대는 밤새 수색을 벌였지만, “아무런 흔적이 나타나질 않는다”고 전할 뿐이며, 이후의 서술은 없다.
이 결말은 생사의 판단을 유보한 채, 독자 스스로 그 남자의 행방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것이 죽음이었는가, 혹은 또 다른 삶을 향한 출발이었는가. 중요한 것은 그가 왜 떠났는지, 그리고 그 걸음이 어디를 향했는지다. 따뜻했던 심장의 리듬이 멈추고, 생명을 이어주던 인공심장이 차가운 공허로 다가왔을 때, 그는 조용히 여행을 떠났다. 이는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여정이자, 회귀를 향한 실천으로 읽힌다.
작가는 결말을 강요하지 않는다. 전지적 시점으로 서사를 이끌던 작가의 시선은 이 지점에서 한걸음 물러서고, 해석의 몫은 독자에게 넘겨진다. 열린 결말 속에서 스스로 해석하게 된다. 이는 일구가 감당해온 정서적 고통과 윤리적 결단, 삶의 희비극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왔는지 성찰하게 만든다. 어떤 이는 이 장면을 죽음의 슬픔으로, 또 어떤 이는 새로운 시작의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처럼 결말은 여백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여백은 삶과 죽음, 기억과 심장, 기술문명과 인간성 사이를 건너온 독자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게 한다.
4. 제주어 소설 속에서 피어나는 지역문학
소설은 시간의 예술이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지나간 것들에 다시 목소리를 부여하기도 하며 다가올 미래를 미리 상상하기도 한다. 한스 메이어호프는 ≪문학과 시간의 만남≫에서 “소설은 시간과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지각과 기억의 저장소일 뿐 아니라, 그것을 능동적으로 조직해 내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는 소설이 기억의 질서를 재편하고, 현재와 미래의 삶을 언어로 구성해 내는 시간의 예술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어 소설은 한 지역이 축적해 온 시간의 결을 고유한 언어로 되살리고 조직해내는 문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말은 곧 삶의 총체다. 제주어로 직조된 서사는 시간의 흔적을 불러내고, 그 언어의 리듬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현한다. 더 나아가 지역 언어가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상상력을 발현해내야 한다는 것, 이는 이 시대의 작가들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문학적 책무이기도 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전지전능한 작가의 개입과 통찰이 요구되는 고전적 서사 장치이다. ≪목심≫은 바로 이 시점을 바탕으로, 양전형 작가의 자전적 기억과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탄생한 제주어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시간성과 장소성, 존재론이 교차하는 다층적 서사 구조 속에서, 수많은 에피소드의 이야기틀을 ‘제주어’라는 언어로 정밀하게 직조해냈다는 점에서, 지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성취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십년벵’이라는 미래적 설정은, 기술문명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윤리적 우화로 기능한다. 동시에 이 설정은 토착적 공간으로서의 제주를 매개 삼아 인간의 보편적 조건과 생명윤리의 근원을 다시 성찰하게 한다. 이처럼 양전형 작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며, 시간 너머의 기억과 공동체의 언어를 잇는 제주어 문학의 깊은 사후성(事後性, Nachträglichkeit)을 제시한다. 이는 단절된 시간의 층위를 언어로 연결하고, 기억의 상처를 현재의 감각 속에서 다시 의미화함으로써, 지역문학이 지닐 수 있는 서사적 깊이와 언어적 울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다음 평론은 “3편 제주어로 빚은 양전형 작가의 시학 『허천바레당 푸더진다』외 제주어 시집편”입니다.
※‘아래아’는 인터넷 표기가 되지 않은 게 많으므로, 작품집 표기와는 달리 작품평에서는 편의상 ‘ㅗ’로 표기했습니다.
양전형 작가
* 1953년 제주시 오라동 출생
* 시집 ≪나는 둘이다≫로 제5회 제주문학상 수상
* 제주어 시집 ≪허천바레당 푸더진다≫로 ‘2015 제주시 one city one book작가’ 선정
* 최초의 제주어 장편소설 ≪목심≫ 발표 및 표준어판 출간
* 제주어 용례사전 전집 <Ⅰ·Ⅱ·Ⅲ·Ⅳ> 저술
* (사)제주어보전회 이사장 역임
* 제27대 제주도문인협회 회장 역임
* 시집 ≪사랑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아 사랑밭 가자≫, ≪하늘레기≫, ≪길에 사는 민들레≫, ≪나는 둘이다≫, ≪도두봉 달꽃≫, ≪동사형 그리움≫, ≪꽃도 웁니다≫
* 제주어 시집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게무로사 못살리카≫, ≪굴메≫
* 가곡, 동요, 대중가요 등 30여곡 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