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아의 독서칼럼 <24>    

1장 창발적 언어 미학_입말과 문학의 접점  제주어 용례사전
      1. 삶과 말을 잇는 언어 지도의 창발적 미학
      2. 살아있는 언어문화를 꿈꾸다
      3. 제주 정체성과 문화의 정수, 지역문학의 호재(好材)

2장 지역문학의 회복 가능성 양전형의 제주어 장편소설 ≪목심≫ 
3장 제주어로 빚은 양전형 작가의 시학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외 

봄의 행간에서 말을 곱씹는 일은 다소 딱딱한 사유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봄의 감각, 그 설렘과 떨림, 피어나는 마음의 결을 표현할 길조차 잃게 된다. 말은 통상적으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세계를 인식하고 감각을 조직하는 방식까지 포괄한다.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동전의 양면'에 비유한 바 있다. 이는 언어가 생각을 표현하는 외피인 동시에 사고 그 자체를 형성하는 틀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말이 없으면 우리는 생각할 수 없고, 생각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라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언어와 생각은 서로의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우리는 그 언어로 울고, 사랑하고, 일하고, 기도하며 세상을 살아낸다.

제주어는 그러한 언어의 한 결을 품고 있는 말이다. 섬의 바람과 흙, 사람의 손과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든 말은 제주의 자연과 노동, 정서와 공동체의 기억이 겹겹이 녹아 있는 존재의 언어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결결이 배어 있고 말하는 이의 온기와 땅의 숨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언어는 점차 입 안에서, 일상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사라져가는 언어의 결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절실해진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제주어를 되살리고자 한 염원이 응축되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제주어 용례사전≫이다. 양전형 작가는 문학작품을 넘나들며 제주어의 감각과 정서를 온몸으로 받아 적었고, 그 말들을 ≪제주어 용례사전≫ 안에 살아 있는 용례로 새겨넣었다. 이 사전은 창작과 기록이 서로를 북돋우는 순환 구조를 보여주는 언어 생태계이자, 삶의 결이 녹아 있는 문학의 아카이브(archive)다. 양전형 작가는 이렇듯 언어와 삶을 아우르는 통섭적 시도를 통해 제주어를 다시 살아 숨 쉬게 한다.

기록과 문학의 산실인 ≪제주어 용례사전≫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그 울림은 제주 문학의 미래를 엿보게 하는 동시에, 언어적 갱신에 온 힘을 바쳐온 한 작가의 창발적 역량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이 글은 세 차례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첫 번째 편에서는 ‘창발적 언어 미학, 입말과 문학의 접점’이라는 주제로 ≪제주어 용례사전≫을 다루며, 두 번째 편에서는 지역문학의 회복 가능성을 중심으로 양전형의 제주어 장편소설 ≪목심≫을 살펴본다. 마지막 편에서는 제주어로 빚어진 시학의 세계를 조명하며, ≪허천바레당 푸더진다≫를 비롯한 제주어 시집들을 통해 양전형 작가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본다.

1장. 창발적 언어 미학_입말과 문학의 접점 제주어 용례사전

문학인 양전형에게 제주어는 단지 말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깊은 질문을 담은 언어였다. 삼십여 년 넘는 창작의 시간 동안 그는 시를 쓰고, 소설을 짓고, 수필과 콩트를 남기며 제주어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양전형 작가의 오랜 창작 여정을 하나로 꿰는 중심은 무엇일까. 그의 제주어 철학과 문학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그 답은 아마도 ≪제주어 용례사전≫을 펴내며 그가 남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제주어가 사라진다 해도 이 말들은 도서관 구석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며 누군가의 입을 기다릴 것.”

이 말처럼 그의 기록은 제주어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묻는 언어적 응답이며, 동시에 그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따뜻한 출발점이 된다.

이 글은 ≪제주어 용례사전≫의 문학적 성좌(星座)를 따라 읽어보는 시도이다. 각각의 단어가 품은 삶의 온기, 문장 사이에 스며든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사라져가는 언어를 되살리려는 작가의 윤리적 감각을 비추어 보며 ‘제주어’의 존재를 다시금 성찰하고자 한다.

1. 삶과 말을 잇는 언어 지도의 창발적 미학

모든 창조가 새롭진 않다. 세상을 흔드는 것은 울림을 남기는 창조다. 그러나 창조가 단지 개인의 만족에 그친다면 그것은 제한된 울림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반면 누군가의 삶에 의미를 더하고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창조는 한 차원 더 깊은 실천이다. 개인, 사회, 국가를 넘어 전 지구적 생태계에까지 파장을 미치는 창조적 실천은 바로 ‘창발성(創發性, emergence)’의 영역에 속한다.

창발성은 각각의 독립된 요소들이 단순히 결합하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와 성질이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언어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원리로 다루어지며, 특히 언어의 진화나 문학적 창작처럼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체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울러 개별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망을 형성할 때 비로소 발생하며 그 결과는 단순한 합을 넘어서는 풍부함과 예기치 못한 구조로 확대시켜나간다.

 ≪제주어 용례사전≫은 이러한 창발성의 원리가 구현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기존 사전 편찬 방식처럼 개별 어휘를 수집하거나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다양한 문학 창작물을 통해 제주어의 감각과 정서를 오롯이 문장 속에 녹여낸다. 그렇게 구축된 문학적 용례들은 각각의 어휘들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살아 있는 도식적 언어 지도(language map)를 펼치고 있다.

그의 이러한 편찬 방식은 삶과 말을 잇는 언어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사전에 담긴 개별 용례들은 작가의 체험과 문학적 상상력이 스민 언어의 표본들이다. 이들이 서로를 비추고 조응하며 제주어라는 지역어의 생명력과 공동체적 정체성을 한층 또렷하게 드러낸다. 이로써 ≪제주어 용례사전≫은 사전과 문학, 기록과 창조, 개별성과 총체성이 어우러지는 접점을 이루며 창발적 미학의 한 양상을 빚어낸다.

오랜 창작의 길에서 쏟는 양전형 작가의 제주어에 대한 헌신은 제주어보전회 창립 리더로서의 활동과 맞물려 더욱 깊어졌다. 그는 문학 창작의 열정을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의 미래를 일구는 실천적 행위로 확장시켰다. ≪제주어 용례사전≫에 담긴 방대한 용례들은 이러한 언어적 삶의 증거이며 제주어를 연구하거나 제주어로 문학을 구현하려는 이들에게 소중한 배움과 영감을 제공하는 든든한 자산이 된다. 

아래 분석표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 나름의 ≪제주어 용례사전≫ 네 권의 구성 체계를 분석하여 제시한다.

네 권으로 구성된 ≪제주어 용례사전≫은 각 권마다 입말, 문학, 삶, 지역을 잇는 다양한 제주어 지형도를 펼쳐 보인다. 1권은 일반 예문과 퀴즈 예문 등 실용 구어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권은 소설 ≪목심≫을 통해 문학적 제주어의 면모를 보여준다. 3권은 시와 콩트를 통해 입말의 운율과 시적 표현을 부각시키고, 4권은 콩트와 제주의 오름을 중심으로 오름 지명과 지역어의 문화적 맥락을 담아낸다. 이처럼 기능 어휘, 서사 어휘, 시적 어휘, 지명 어휘가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제주어 용례사전≫은 제주어의 존재론적 가능성과 문학적 감각을 함께 드러낸다.

양전형 작가는 이러한 용례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송상조의 ≪제주말 큰사전≫, 고재환의 ≪제주어 개론≫과 ≪제주어 나들이≫, 현평효·강영봉의 ≪표준어로 찾아보는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발행의 ≪제주어사전≫과 ≪제주도 속담사전≫, 진성기의 ≪제주도 민담≫, 송상조의 ≪제주말에서 때가림소 ㅇ, -ㄴ과 씨끝들의 호응≫, 김학준의 ≪실용제줏말작은사전≫, 제주학연구센터의 ≪맛좋은 제주어≫, 그리고 ≪제주의 오름≫ 등 다양한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어 용례사전≫은 이들 기존 사전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 일반 사전들이 주로 가나다 배열에 따라 어휘를 일률적으로 정리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양전형 작가는 총 7,600여 개의 제주어 용례와 각 권마다 약 만여 개의 색인 어휘를 제시하여 독자 중심의 탐색과 활용이 가능하도록 구성하였다. 특히 대부분의 예문은 그가 직접 창작한 문학 작품의 문장을 활용하여 제주어의 정서와 문학적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또한 그는 오라동이라는 지역적 기반 위에 자신의 삶과 언어를 포갬으로써 오라 지역 특유의 말결이 일부 묻어나지만, 동시에 제주 전역의 언어적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였다. 양전형 작가는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로 “웬만한 제주어는 모두 담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제주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2. 제주어 복원을 위한 살아있는 언어문화를 꿈꾸다

언어는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불려야 비로소 살아 있다. 언어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쓰이고 반복되며 되살아나야 한다. 특히 지역어는 전달 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공동체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내는 문화적 유산이다. 살아 있는 언어문화를 유지하고 복원하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하나를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되살려내는 문학적 실천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은 지역 문학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다각적인 관심 속에서 비로소 깊이 있게 확장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제주어 용례사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사전은 제주어보전회 활동가들의 기본서로 활용되며, 제주도민뿐 아니라 타지에서 온 이들까지 제주어 학습의 주요 참고자료로 삼고 있다. 또한 필자처럼 지역문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시, 시조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에서 창작의 어휘적 영감과 정서적 토대를 제공하는 귀중한 문학적 자원으로 기능한다.

 제시된 예문처럼 ≪제주어 용례사전≫은 일반적인 어휘사전이나 문학 해설서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이 사전은 제주어 복원을 위한 문학적·언어적 시도의 집약체이며 단어가 사용된 실제 문맥 속에서 제주어의 정서를 체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양전형 작가의 창발적 기여가 분명히 드러난다.

≪제주어 용례사전≫ 1권부터 4권까지의 구성은 예시된 형식을 따르고 있다. 독자가 단어를 단편적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의미망을 자연스럽게 확장해나가도록 돕는 구조다. 아울러 각 권에는 색인 목록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독자가 필요한 어휘를 가나다순으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편의성 또한 고려하고 있다.

『제주어 용례사전』2권 소설의 용례(왼쪽)와 『제주어 용례사전』3권 콩트의 용례.
『제주어 용례사전≫ 2권 소설의 용례(왼쪽)와 『제주어 용례사전≫ 3권 콩트의 용례.

한편, ≪제주어 용례사전≫과 가장 유사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는 텍스트는 강영봉·김동윤·김순자가 2010년에 펴낸 ≪문학 속의 제주 방언≫이다. 이 책은 문학과 언어의 접점에서 제주어를 탐구한 대표적인 작업으로, 제주인의 삶과 정서를 복원하려는 의지에서 ≪제주어 용례사전≫과 일정한 접점을 이룬다. ≪문학 속의 제주 방언≫은 현기영, 오성찬, 한기팔, 현길언 등 제주 출신 작가들의 기존 문학작품에서 발췌한 문장을 바탕으로 방언 용례를 정리하였다. 이 두 사전은 제주어의 실질적 활용 양상을 문학 속에서 포착하려 했다는 점, 즉 언어와 문학의 교차 지점을 탐색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제주어 용례사전≫은 구성 방식과 지향점에서 분명히 다른 궤도를 보여준다. ≪문학 속의 제주 방언≫이 기존 문학작품에서 제주어가 삽입된 문장을 발췌해 정리한 수집형 사전이라면, ≪제주어 용례사전≫은 저자 자신의 창작 문학을 전면적으로 원천 자료로 삼았다. 문학이 언어 생성의 장이자 사전 구성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적 중심축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 사전은 독자적인 성격을 지닌다. 다시 말해, 양전형 작가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문학 텍스트는 제주어의 용례를 살아 있는 언어로 구현하는 창발적 토대가 된다.

예문 처리 방식에서도 두 사전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문학 속의 제주 방언≫은 대체로 문장 속에서 제주어 단어 하나를 추출해 품사, 의미, 사용 지역, 어원 등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개별 어휘의 의미를 확인하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전체 문맥 속에 스며든 제주어의 정서, 운율, 말맛을 심층적으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제주어 용례사전≫은 하나의 용례 문장을 제주어 원문 그대로 제시한 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 ①해당 문장 속 핵심어를 진하게 표시하고, 품사와 뜻풀이를 병기하여 독자의 주의를 유도한다. ②예문 박스를 활용해 문장의 흐름과 제주어 특유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어지는 ③해설에서는 박스 안의 전체 문장에 포함된 어휘들을 빠짐없이 설명하고 동일어의 다양한 표현까지 가능한 한 포괄적으로 수록한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가 단어 하나의 고정된 정의에 머무르지 않고 문맥 안에서 제주어의 감각과 삶의 결을 입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이끈다. (제시된 용례사전 캡처 자료 참고)

요컨대, ≪제주어 용례사전≫은 제주어 수집이나 문장 인용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창작 문학 전체를 언어 복원의 원천으로 삼아 문맥 속에서 제주어의 생명력과 정서,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을 동시에 되살려내는 고유한 언어적 실천을 펼쳐낸다.

미하일 바흐친은 ≪말의 미학≫(김희숙·박종소 옮김, 도서출판 길, 2006)에서 언어를 고정된 체계로 보지 않고 타자성과 응답성을 품은 다성적 발화로 이해했다. 모든 말은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타자의 말과 끊임없이 교차하며 의미를 생성하고 발화자는 언제나 타인의 응답을 예감하며 언어를 구성한다. 이처럼 언어의 본질을 다성성과 대화성으로 본 바흐친의 통찰은 ≪목심≫ 외 문학작품들을 활용한 ≪제주어 용례사전≫에서도 깊게 반영된다.

 ≪목심≫은 단일한 서술이 아니라 어머니의 말, 삼촌들의 말, 친구들의 말이 저마다의 리듬과 정서를 품고 교차하는 다성적 서사를 펼쳐낸다. 특히 죽은 삼촌에게 술을 따르고, 어머니의 죽음을 앞에 두고 속으로 말을 건네는 장면들은 바흐친이 말한 ‘응답적 언어’의 감각을 구현한다. ≪제주어 용례사전≫은 이러한 문장들을 용례로 삼아 타자와의 대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어로 복원하고 있다.

 결국, 제주어를 과거의 유물로 박제하는 대신 다성적 생명력을 품은 현재의 언어로 되살리는 문학적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제주어는 이 작업 안에서 여전히 타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며 현존하는 존재로 흐르고 있다.

이 사전은 소설 용례 외에도 제주어의 시적 감각과 삶의 결을 오롯이 담아낸 독특한 언어적 지형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주어 시어와 사전 항목이 상호 반영되며 시적 언어 감각이 사전 정의 속에 스며든 지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미하일 바흐친이 말한 ‘이중언어성’ 이론, 즉 언어가 기호 체계에 머무르지 않고 타자의 목소리와 긴장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성질과도 맞닿는다. 또한 꽁트(수필) 예문을 통해 드러나는 입말의 리듬과 유머, 지역 정서는 문학적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을 통해 삶과 웃음을 품은 언어로 다시 태어나며 일상의 말들이 어떻게 공동체의 궤적을 형성해왔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아울러 문학작품 외에도 일반예문, 오름 지명, 의례, 동식물의 명칭 등 제주 문화를 폭넓게 아우르며 언어생태적 문서로서의 기능을 한층 강화한다. 
 

3. 제주 정체성과 문화의 정수, 지역문학의 호재(好材)

제주를 말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그 ‘말의 소리’를 떠올린다. 그만큼 제주어는 지역 정체성과 문화의 정수(精髓)를 상징하는 언어다. 특히 제주어는 청각적 이미지와 운동감 있는 표현이 풍부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고 입말 속에서 삶의 온기가 되살아난다. “와랑와랑”, “과랑과랑” 같은 말들, 행동이나 성질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수많은 의성·의태어 속에는 제주의 자연과 일상이 오롯이 스며 있다. 말맛의 정수는 바로 그 생동하는 입말에 있다.

또한 제주어에는 조상들의 삶의 방식과 지혜가 녹아든 은유적 표현들이 많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비유하고 돌려 말하는 방식 속에는 섬사람 특유의 여운이 배어 있으며, 그 말맛 또한 하나의 정서적 풍경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제주어 특유의 첨사 사용도 언어의 깊이를 더한다. 첨사는 문장을 마무리하는 종결어미에 덧붙여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좁혀주는 말이다. 비록 문법상 독립된 품사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마씸’, ‘양’, ‘게’, ‘원’ 등의 첨사는 제주어만의 운율과 강조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경우에 따라 이중, 삼중으로 첨사를 겹붙이며 감정과 의도를 격조 있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언어적 감각은 제주어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관계를 짓고 감정을 다지는 공감의 언어임을 보여준다.

양전형 작가는 이러한 말맛과 삶맛이 깃든 제주어를 창작의 언어로 받아들였고, 삶의 결을 따라 말을 수집하고 사유하며 기록해냈다. ≪제주어 용례사전≫은 그가 체득한 말의 감각, 문장의 호흡, 사람들의 말씨를 집약한 결정체다. 하여, 이 사전은 지역문학이 언어를 복원하고 확장하는 창발적 통로이자 지역어의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보인 ‘호재(好材)’라 할 수 있다.

삶의 장면을 꿰는 문장, 정서를 품은 입말, 첨사로 살아나는 강조의 리듬 등등 이 모두가 문학이라는 그릇 안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다. 시와 소설, 콩트와 수필의 경계를 넘나들며 제주어를 유기적으로 구성한 이 작업은 언어가 박제된 유물로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말로 다시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제주어 용례사전≫ 속에 사용된 문학적 원천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양전형 작가가 용례로 삼은 문학작품들은 그의 창작 열정과 지속적인 문학적 탐색이 어떻게 결실을 맺었는지를 보여주는 생동하는 증거들이다. 특히 제주어로 집필된 장편소설 ≪목심≫과 ≪허천바레당 푸더진다≫를 포함한 세 권의 제주어 시집은 ≪제주어 용례사전≫이라는 창발적 실천을 가능케 한 토양이자 그 심장부를 이루는 핵심 자원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목심≫과 제주어 시편들을 중심으로 문학 세계의 언어적·정서적 깊이를 살펴보고, 그가 어떻게 제주어를 생의 울림과 문학적 기록으로 융합해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양전형 작가

* 1953년 제주시 오라동 출생
* 시집 ≪나는 둘이다≫로 제5회 제주문학상 수상 
* 제주어 시집 ≪허천바레당 푸더진다≫로 ‘2015 제주시 one city one book작가’ 선정 
* 최초의 제주어 장편소설 ≪목심≫ 발표 및 표준어판 출간 
* 제주어 용례사전 전집<Ⅰ·Ⅱ·Ⅲ·Ⅳ> 저술
* (사)제주어보전회 이사장 역임
* 제27대 제주도문인협회 회장 역임
* 시집 ≪사랑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아 사랑밭 가자≫, ≪하늘레기≫,    ≪길에 사는 민들레≫, ≪나는 둘이다≫, ≪도두봉 달꽃≫,  ≪동사형 그리움≫,   ≪꽃도 웁니다≫ 
* 제주어 시집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게무로사 못살리카≫, ≪굴메≫
* 가곡, 동요, 대중가요 등 30여곡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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