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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할 명분 달라고 요청하니, 판결문만 썼다?
처벌할 명분 달라고 요청하니, 판결문만 썼다?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8.09.23 16: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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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제주도-감사위의 '중징계' 처분명분의 설득력

제주특별자치도 감사위원회가 23일 민주공무원노조 제주지역본부 임원진에 대한 공무원 품위 유지 및 정치적 활동 참여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홍모 본부장과 변모 사무처장, 그리고 문모 제주시지부장 등 3명에 대해서는 파면이나 해임, 정직에 해당하는 '중징계', 김모 직전 본부장에 대해서는 '경징계' 처분을 내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징계처분 요구에 따라 제주특별자치도는 조만간 인사위원회를 열어 중징계와 경징계의 구체적 처분유형을 결정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번 민주공무원노조 임원진에 대한 이러한 징계방침은 감사를 의뢰한 제주도당국, 그리고 감사를 벌인 감사위의 조사결과, 모두 그 타당성에 강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듯하다. 도정 주요현안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공무원노조에 대한 '보복성' 혹은 '복수의 칼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제주도당국이 이번 사안에 대한 감사의뢰 성격이 결코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겠다.

감사위의 중징계 처분 요구 또한 그렇다. 제주도당국의 일벌백계 '총공격' 명령에, 감사위가 그대로 받들어 '포탄'을 발사한 격이다. 오죽했으면 김태환 도정에 대한 '충성'의 발로, 혹은 '꼭두각시' 역할을 자임했다는 오해를 살까.

이번 민주공무원노조에 대한 제주도당국의 강경대응과, 감사위의 중징계 처분요구는 조사의뢰에서부터 감사결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사실 억지 성격이 짙다. 이 억지성은 들이대는 '잣대'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데 따른 것이다.

▲7월18일 '경고성 공문'과 8월1일 '조사의뢰', 그 사이 무슨 일 있었나

이 사안을 처음부터 정리해보면, 제주도당국이 민주공무원노조에 대한 감사위 조사의뢰는 영리법인 병원 도입문제로 한참 시끄럽던 지난 7월 이미 예견됐다.

7월18일, 제주특별자치도는 민주공무원노조에 '합법적 노조 활동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발송하고,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요청하며, 앞으로 공무원노조법 등 관련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부득이 엄중 조치할 수밖에 없음을 알린다"고 통보했다.

제주자치도가 공무원노조법 이탈사례로 본 것은 △비상시국선언 참가 △제주특별자치도 3단계 제도개선 전면 재검토 요구 △제주시장 전국공모 문제 제기 등 3가지다.

이 때만 하더라도 경고성 공문의 핵심은 이미 지난 사안에 대해 문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공무원노조법 등 관련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부득이 엄중 조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혔었다.

즉, 그동안 행해진 비상시국선언 참가, 3단계제도개선 재검토 요구, 제주시장 전국공모 문제제기 등은 합법적 노조활동의 범주를 이탈한 것에 대해서는 묵과할 수 있으나, 더 이상 그러면 문책하겠다는 경고메시지인 것이다.

▲영리병원 여론조사 '참패' 후, 곧바로 실행된 '사정의 바람'

그 경고성 공문을 보낸지 며칠 없어 영리법인병원 도민여론조사에서 제주도당국은 기대했던 것에 훨씬 못미치는 '반대여론' 우세라는 결과에 직면했다. 대대적 여론몰이를 하고도, 자존심에 일격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8월1일 제주도당국은 민주공무원노조 임원진에 대한 감사위원회 조사의뢰를 전격 발표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하지말라'며 너그러운 경고를 했던 제주도당국이 마음을 돌려먹은 것이다. 경고성 공문을 보낸 7월18일부터 31일 사이 민주공무원노조측의 추가적인 '미운 행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봐주려 했던 사안을 빌미삼았다.

공무원노동조합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등 정상적인 노조 활동 범위를 벗어나 시국선언의 참여, 도정시책에 대한 일방적 반대 등의 위법적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적 특수성과 직무상 의무의 한계를 벗어나, 시국선언에 참가하거나 도정 전반에 대해 무분별한 성명을 남발해 행정의 신뢰와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곁들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제주도당국의 감사위 조사의뢰 이유는 타당성이 없다. 7월18일 경고성 공문이 진실이었다면, 그 이후 구체적 사례가 나타났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봐주되 더 이상은 봐주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봐줄 수가 없었다는 '일구이언'이 행해진 것이다.

영리병원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충격,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화풀이'로 보복성 칼날을 들고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감사위 조사결과 내용 '억지성'은 없나

두번째, 감사의뢰를 받고 조사를 벌인 감사위원회 역시, 조사결과 내용은 한마디로 '억지성'이 강하다.

공무원에게 있어 '중징계'라고 하면 파면이나 해임, 정직처분을 받을 수 있는 최상의 형벌이다. 그런 형벌을 내리도록 요구하면서 그 이유는 도정의 당초 감사의뢰 방침의 내용과 똑같은 '앵무새' 판결문을 써 내렸다.

감사위는 '지방공무원법' 제48조에서 "모든 공무원은 법규를 준수하며 성실히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는 "공무원은 노동조합의 활동을 함에 있어서 다른 법령이 규정하는 공무원의 의무에 반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번 징계처분 요구는 이러한 법률적 내용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 공무원노동조합법 제8조는 공무원노동조합에 관한 사항 또는 조합원의 보수.복지 그 밖의 근무조건에 관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지지만, 정책결정에 관한 사항, 임용권 행사 등 근무조건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항은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을 법률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지방공무원법 제48조 성실의 의무, 제49조 복종의 의무, 제50조 직장이탈금지, 제55조 품위유지의 의무, 제58조 집단행위의 금지, 그리고 공무원노동조합법 제3조 노동조합의 활동의 보장 및 한계, 지방공무원 복무조례 제5조 근무기강 확립에 위반된 것으로써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감사위는 그러면서 앞으로 모든 공무원들은 법령이 규정한 범위 내에서 행동하여야 하며, 위법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직기강 확립차원에서 엄정한 조치를 함으로써 법과 원칙의 질서를 확립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측면에서 의아스러움을 표한다. 그 하나는 감사위가 제시한 법률적 근거가 과연 적용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평성', 즉 '원칙과 기준'을 제대로 세운 상황에서 이러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나 하는 의문이다.

▲감사위에 대한 의구심1> 처분이유 과연 타당한가

먼저 법률적 근거의 타당함에 있어, 감사위가 제시한 법률적용 조항은 작위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현행 공무원노동법상 정책결정에 관한 사항, 임용권 행사 등 근무조건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항은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위측의 해석내용이지만, 민주공무원노조 제주본부의 경우 이를 교섭대상으로 삼으려 했다기 보다는 정책결정과 임용권 행사에 대해 '자유스런 입장'을 개진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감사위의 법률적 적용해석은 무리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파업 등 쟁의에 돌입할 수 있는 법적근거는 없다고 치더라도, 어떤 의사를 밝히고 집회를 갖는 등의 자유는 헌법의 기본권에서 보장하고 있다. 공무원이 시국선언에 참여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어떤 법률에 근거한 것인가. 감사위의 이번 유권해석은 '기본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법을 초월한 '자의적 해석'에 몰입하는 절차적 정당성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지역현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기본권에 준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감사위의 처분요구는 다분히 김태환 도정에 대한 '충성'의 발로라는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사위에 대한 의구심 2> 누구는 처벌대상이고, 누구는 면죄부 대상인가

두번째는 형평성의 문제다. 원칙과 기준이 바로 선 상황에서는 이번 감사위와 같은 대의적 원칙 속에 상벌을 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동안 감사위의 일련의 사정흐름을 봤을 때, 대의적 원칙은 커녕, '고무줄 잣대'를 들이밀며 억지를 부리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잘못한 부분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감사를 의뢰한 제주도당국은 '도정시책에 대해 일방적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라고 그 이유를 들고 있는데, 민주공무원노조의 성명이 '일방적 반대'인지, 노조의 의사표현의 한 범주에 해당하는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분별했는지 의심스럽다.

'성명'을 갖고 잣대를 들이댄다면, 지난 5월 정부의 공무원 감축방침에 이어 제주자치도가 그 시행계획을 발표할 때, 제주도청 공무원노조는 민주공무원노조 이상의 강경입장을 성명으로 발표한 바 있다. 제주도청공무원노조 역시 제주도정을 '정부의 하수인 노릇만 한다'며 강력히 규탄한 바 있는데, 유독 민주공무원노조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다분히 또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감사위에 대한 의구심 3> 명백한 유죄판결, 사법기관 연루 공무원은 왜 처분 안하나

형평성의 문제와 관련해, 한가지 덧붙인다면, 지금까지 특정사건으로 사법기관에 연루됐던 공무원이 많았다. 그 중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은 공무원도 있었고, 계류 중인 공무원도 많다.

그들에게는 지금까지 어떤 인사조치도 없었다. 구체적으로 사건명은 거명하지 않겠지만, 벌금형을 받은 사람도 있었고,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절차적 문제로 인해 유죄를 가까스로 면한 공무원도 있다.

또 올해들어서는 '관급공사 비리'에 연루돼 공무원의 청렴성과 도덕성에 먹칠을 한 공무원들도 많다. 이들은 지난 하반기 정기인사에서도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사법기관에 연루됐던 이들 공무원에 대해, 감사위가 진정 용기있게 조사를 해본 적이 있는가. 진정 감사위가 독립된 감사기관으로서 그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다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무원 연루사건에 대한 철저한 감사부터 진행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겉으로 드러난 처분대상은 그대로 놔두면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상자에 대해서는 신속한 감사를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태 아닌가.

도민사회에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먹칠한 '나쁜Χ'은 그대로 놔두면서, 제주발전을 위해 현안에 대해 충심어린 목소리를 내는 공무원들은 가차없이 형벌을 가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도당국-감사위, 납득할 만한 처분이유 밝혀야

어쨌든 이제 감사위의 처분요구에 따라 마지막 '처분'은 제주도당국의 몫으로 돌아갔다. 물론 요식적인 '인사위원회' 절차가 남아있다고는 하나, 이미 작정하고 시작한 일임을 잘 알기에 그 결과 역시 '어둡다'는 것은 뻔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러나 처분을 내릴 때 내리더라도, 제주도당국과 감사위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왜 그런 감사의뢰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사람은 감사대상이고, 어떤 이는 왜 감사대상이 아니었는지. '사고치는 Χ보다, 잔소리하는 Χ가 더 싫었다'는게 아니라면, 사건연루자는 왜 '면죄부'를 받아야 하고, 비판적 목소리를 가진 공무원은 왜 처분을 받아야 하는지,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특히 전국 지자체에서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제주특별자치도 감사위원회는 사정의 칼날을 들이댐에 있어 진정 사심없이 공정함을 보였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윤철수 대표기자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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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08-09-23 17:52:19
간만해 시원한 글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