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00:55 (일)
"이 보다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이 있나요?"
"이 보다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이 있나요?"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9.01.22 13:5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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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 <3>환경미화원 배광자씨의 새벽 거리청소

"남편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1983년 어느 날, 배광자(57. 여. 제주시)씨는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만이 가득 묻어났다.

남편은 눈을 감은 채 영영 깨어나지 않았다. 웃음이 그칠 날 없이 행복했던 한 가정은 그날 이후로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새야만 했다. 그의 나이 30살, 결혼한 지 3년 째 되던 해였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동시에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아직 3살밖에 안된 첫째 딸과 40일도 안된 갓난아이를 혼자 어떻게 키워야 할 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밤 두 아이를 품에 껴안은 채 이불 속에서 하염없이 울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래도 두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식당 일까지 나가보려했지만, 어린아이들을 마땅히 맡길 데도 없는 형편이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일을 나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정말 세상이 무서웠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환경미화원직을 소개받았고, 그 순간 이 일이 아니면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일단 일이 힘들다는 환경미화원 일에 뛰어들었다.

"식당 일을 해도 3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나마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 대학 보냈어요. 환경미화원 일은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제겐 희망이었죠."

20일 오전 4시, 제주시 이도1동 주민센터 앞.

환경미화원 배광자 씨는 파란 쓰레기 봉투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담은 채, 나무빗자루와 쓰레받이를 집어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의 청소구간은 이도1동 주민센터에서 출발해 제주칼호텔 사거리, 광양로터리 사거리, 옛 신성여고 정류장까지다. 그는 이 구간을 하루에 3번, 오전 4시부터 오후 2시까지 걸어 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다.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와 캔, 과자봉지, 길모퉁이에 박힌 쓰레기까지도...

그는 빗자루로 쓸어 담거나, 하나하나 손으로 주워가며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16년째 환경미화원을 하고 있지만, 길거리 청소를 시작한 건 불과 1년 전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청소차 뒤에 올라타 다니며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을 했었다. 15년 동안 그 일을 하다가, 갑자기 무릎이 안 좋아져 체력적으로 덜 힘든 길거리 청소를 시작하게 됐다.

“예전에 청소차 일을 할 때, 언제인가,  손이 너무 시려워 냉장고를 받다가 미끌어져 발이 부러진 적이 있어요. 그만큼 청소차 일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에요. 길거리 청소는 그 보다는 위험이 덜하지만 자꾸 하다보면 어깨가 자꾸 결려요. 어느 일 하나 편한게 있나요. 길거리 청소가 청소차에 비해서 조금 수월하지만,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에요.”

그는 새벽시간대에 도로변 가로수 주변을 청소하다 보면, 빨리 달려오는 차에 치일까봐 불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일의 성격상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형광색 옷을 입고 조심스럽게 일을 하는 등 최대한 안전에 스스로 노력을 하자고 그는 다짐한다.

환경미화원 일을 하면서 두 아이를 바라볼 때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소풍 날에도, 여느 집 엄마처럼 따뜻한 김밥 하나 제대로 싸주지 못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던 일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불평불만 하나 없이 잘 자라나준 아이들에게 그는 항상 고마운 마음 뿐이다.

"직업상 새벽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소풍날 초저녁에 김밥을 싸놓기도 했어요. 하지만, 초저녁에 싸놓은 김밥은 물러져서 아이들은 먹지도 못했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따뜻한 밥 한그릇 챙겨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려요."

그렇지만, 환경미화원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3년동안 아프지 않고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깨끗해진 자신의 청소구역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 보람과 뿌듯함은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하는 그 만의  행복이다.

"항상 노래하면서 일을 해요.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단 한번도 부끄럽거나, 기분이 나빴던 적은 없었어요. 건강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희망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 보람스럽고 마음도 뿌듯해지는 환경미화원을 저는 앞으로도 즐겁게 해볼 생각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하지만 그는 하루하루를 다른 색깔의 희망을 쓸어 담는다. 오늘도 힘차게 또 다른 노래를 부르며 발걸음을 옮긴다. 청소를 하며 흥얼거리는 그의 노랫가락은 '희망의 노래'라고 한다면, 그가 쓸어담는 것은 혹 우리가 무심코 버린 '양심'은 아닐까.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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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2009-07-06 16:38:35
마음이 훈훈해지네요. 그래도 세상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배광자씨의 삶이 담긴 기사를 읽으면서 제 인생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감동적이네요. 앞으로도 이런 가슴따뜻한...좋은 기사 많이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희망이다 2009-01-22 15:34:27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런분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새벽녘에 취재하느라 고생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