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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 사람이 '사는 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 사람이 '사는 법'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9.02.26 08: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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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7>자원봉사 외길 양성진씨의 '행복한 나눔'

1955년 어느 날, 다섯살박이 어린 아들은 아버지를 먼저 하늘로 보내야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그 어른들 속에서 어머니도 함께 슬픔을 흐느끼고 있었다.

그 이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물동이를 등에 지고 물을 기르러 다녀야만했다. 혹시 어머니가 물을 길어오다 넘어질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그는 어머니의 두손을 놓지 않았다. 겨울에는 길이 미끄러워, 물을 기르러 갈수도 없고 땔감용 나뭇가지를 주우러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차가운 맨바닥에 이불 하나에 의지한 채 어머니와 끌어안고 겨울을 지내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그의 어려운 형편을 아는 동네사람들은 그에게 땔감도 가져다주고 음식도 나눠주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5살 난 어린아이였지만, 그 아이의 눈에는 그 모습이 왠지 따뜻해보였다.

그리고 그 다섯살박이 아이는 이제 60살 난 어른이 돼 있었다. 그리고 3명의 자식을 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됐다.

20일 오전 10시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한 단독주택.

"시각장애인인 어머니와 어린아이가 물동이를 지고 물을 기르러 다니니깐, 동네사람들이 안타까웠나봐요. 힘들었던 어린시절, 동네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제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오늘도 양성진(60)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노인들에게 목욕을 시켜주며 그들의 말벗이 돼주었다. 매번 노인들에게 말벗이 되어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는 노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앞에 있는 이들이 내 부모라고 생각하고 더욱 정성스럽게 목욕을 시킨다.

머리도 감기고 몸도 씻겨주고 드라이기로 머리도 말려주고...목욕이 다 끝나면, 항상 노인들은 "개운하다",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그 모습에 그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노인이 "앞으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그 노인의 말에 그의 마음 또한 숙연해졌다.

그렇게 그가 노인을 대상으로 목욕봉사를 한지도 6년이 지났다. 지난 2004년,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장이었던 그는 제주시 서부보건소로부터 몸이 불편한 노인의 집을 직접 방문해 목욕을 시키는 '이동목욕서비스'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권유에 두말 없이 바로 승낙했다.

처음에는 3명으로 시작한 '이동목욕서비스'는 이젠 1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한달에 두번 밖에 봉사활동을 못하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는 목욕봉사활동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이 많다고 했다. 그 기억들 중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노인들의 빈자리'라고 했다. 몇년동안 목욕을 시켜주던 노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슬퍼진다고 했다.

"몇 년동안 이 두 손으로 목욕을 시켜주던 노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슬퍼져요. 목욕을 시키면서 나눴던 노인들의 목소리, 표정 등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그는 노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듯,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목욕봉사 외에도 그가 하는 일은 많다. 1998년부터 제주시 소재 한 요양원에 포도, 감귤, 양배추 등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고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요양원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힘들었던 그의 어린시절에 그를 도와줬던 한 동네사람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가깝게 지낸 동네 할머니가 냉방에서 덜덜 떨며 움추려 있는 모습을 본 그는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 이후, 그는 할머니를 보러 요양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 곳에서 다른 노인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봉사를 하게됐다.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데리고 갈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예전에 차를 타고 중산간도로로 가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옷을 얇게 입고 도로 한가운데에 기어다니고 있는 거예요. 혼자 살고 있던 할머니였는데, 그 모습을 보니깐 가만히 놔둘수가 없었어요. 할머니를 보러 매일 요양원에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 곳으로 가게 되더라구요."

그는 요양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집으로 데려다달라는 노인들이 많았다고 했다. 두손을 꼭 붙들고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노인들을 뿌리칠 수 없어, 실제로 노인의 집에 함께 찾아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노인들이 말하는 주소로 찾아가면 노인들을 반기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가족들이 이미 떠나 빈 집인 곳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현재 애월읍장애인지원협의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추운 겨울 따뜻하게 보낼수 있도록 보일러기름을 전달하는 등 장애인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봉사활동을 통해 행복을 찾았다고 했다.

"속이 답답하고 삶이 어려울 때 봉사활동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흐뭇해지면서 갑자기 즐거워져요. 저는 그들을 통해 행복을 얻었는데, 그들에게 무언가 줘야하지 않을까요 ? 저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봉사활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봉사활동을 하면 자기자신을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 정말 누구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될거에요."

인터뷰 내내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수줍어 했던 양성진씨.

60년내내 꽁꽁 묶어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행복이 허탈해지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오늘도 소소한 일상에서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떠나는 그의 발걸음은 즐겁기만 하다.<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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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2009-02-27 11:56:26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며. 우리 지역의 소중한 분이십니다.
봉사는 예술입니다. 혼신을 열정과 사명감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양성진선생님같은 분이 자랑스럽습니다.

2009-02-27 07:44:10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이렇게 소금과도 같은 분들이 계시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늘 행복하시길.
*박소님 기자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