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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처지, 없는 사람이 잘 알아요"
"없는 사람 처지, 없는 사람이 잘 알아요"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9.02.05 14:48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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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5> '중섭식당' 이태중씨의 '따뜻한 나눔'

지난 1일 오후 2시. 이태중(57)씨는 허둥지둥하며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했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그는 "누룽지를 만들어줘야 하는데..."라며 같은 말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매일 찾아오던 단골손님인 친구가 나타나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오지 않자, 그는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했다. 혹시, 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쓰러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표정이 어두웠다.

"오늘 왜 안 왔어? 갑자기 안 오니깐 걱정됐잖아. 몸이 안 좋은거야?...아, 갑자기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간다고? 그래, 몸 조심히 잘 다녀와. 몸 잘 챙기구."

친구와 연락이 되자, 그제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돈도 잘 못버는 형편인 그가 매일 식당에 찾아와 아침이나 점심을 먹고 가는 아픈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친구가 좋아하는 '누룽지'를 만들어주는 일 밖에 없었다. 그렇게 친구에게 누룽지를 만들어준 지도 3년이 흘렀다.

서귀포시 서귀동 이중섭거리에서 '중섭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태중씨. 그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요리사이다.  그는 10년째 이곳에서 돼지새끼회, 순대국밥, 고기국수 등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그런 그가 주목을 받는 것은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요즘 경제가 어려워 장사하기 힘들텐데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인심을 쓴다는 것. 처음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10년째 선행을 이으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을텐데.

지난 10년간 그는 식당에 찾아오는 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에게는 밥값을 받지 않았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절대 인색해 하는 법이 없다. 이것이 그가 운영하는 '중섭식당'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후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 도착한 그는 한 식당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17살 때,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돈을 벌기 위해서 부산으로 갔어요. 부산에 가니깐 막막하더라구요. 일단 먹고 자는 게 가장 큰 문제였죠. 이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그 당시에는 식당이었어요. 어떤 한 아주머니를 통해 부산의 한 식당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 식당에서 요리사가 하는 일을 요리사의 등뒤에서 눈으로 지켜보면서 요리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또 다른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그는 무려 50여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외로움 때문일까. 그는 글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어릴적 주위로부터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받았다는 그는 50여곳의 직장을 다니면서 느꼈던 감정을 매일 밤 노트에 쓰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너같은 아들은 없을거야'라고 많이 말했어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차마 집에 혼자 놔둘 수가 없었죠. 계절도 잊은 채 어머니를 업고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했어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1998년, 이중섭거리에서 식당을 시작할 당시에는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말주변이 좋았기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몰렸다. 당시에는 수입도 짤짤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뇌경변 증세를 앓으면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런 어머니를 집에 혼자 놔둘 수가 없어, 그는 매일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어머니를 업고 이중섭거리의 높은 언덕을 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결국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중섭 아저씨'처럼 마음 좋은 아저씨는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잘해준 것도 없는데, 저런 말을 들으면 괜히 쑥스러워져요."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그를 '중섭아저씨'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그를 '중섭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는 듯하다. 단지 이중섭 거리 내에 식당이 있고, 나이가 아저씨뻘이어서 편하게 부르다 보니, 일순간에 '중섭아저씨'라는 호칭까지 생겼다.

이 일대에서 그는 마음 좋은 아저씨로 통한다. 동네주민,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 장애인, 이중섭 거리의 언덕을 오르는 할머니들까지...

그는 이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더라도 식당 앞을 지나가며 문을 활짝연 뒤, 손짓을 하며 따뜻한 커피를 한잔을 건네준다. 식당에 오는 손님에게는 시킨 음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따로 만들어놓은 밑반찬 또는 몸에 좋은 음식 등을 하나둘씩 꺼내놓는다.

밥을 다 먹고 돈이 없다는 손님에게도 문전박대는 커녕, 오히려 따뜻한 밥 한그릇을 더주곤 한다. 그리고 과일 등 선물이 들어오면 이중섭 거리 일대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등 이 일대에서 그의 씀씀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지난 2001년에는 매년마다 사단법인 새생활국민운동본부에 꼬박 성금을 보내 그 공로가 인정돼 새생활국민운동본부로 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0년동안 식당에 찾아오는 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에게 밥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그는 "뭘 그런 걸 갖고.."라며 손을 젓으며 마냥 수줍어했다.

사람들에게 베풀다 보니, 그는 돈을 잘 벌수가 없는 상황이다. 10년째 이중섭거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집값을 내는 것에도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음식 하나 팔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베풀면, 기분도 좋고 마음도 편안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없는 사람들 처지는 어려운 사람만이 알아요...그래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대로 바라만 볼수 없어요. 이렇게 베풀다 보면, 가끔은 사람들이 자꾸 얻어먹어서 고맙다며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고 와요. 자그마한 것이지만 고맙다고 무언가를 내게 주면, 괜히 마음이 뭉클해져요. 경제적으로는 힘들어도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게 행복 아닐까요?"

조그맣고 다소 허름한 이 식당은 그에게, 그들에게도 특별한 공간이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소외를 당하지 않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없는 사람들 처지는 어려운 사람만이 안다는 그의 말은 왠지모를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미디어제주>

<박소정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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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2009-11-19 17:13:12
이런 삭막한 세상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게 정말 희망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하네요.
좋은 기사 감사드려요^^

중섭아저씨 2009-07-15 18:43:35
이번에 아저씨 집에서 순대국밥 먹었는데.^^
이런사연이 있는 곳인지 처음 알았네요.
글 읽다가 눈물 날뻔 했어요.
중섭아저씨 정말 대단하네요.
박 기자님. 앞으로도 이런 기사 많이 써주세요.^^

뿌리깊은나무 2009-02-08 10:28:25
이 시대를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이태중님이 대단하시군요. 늘 이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꾸며나가시는 박소정기자님 화이팅.

김승호 2009-02-08 10:24:00
이 시대에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단한 분이시로군요. 늘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삶을 취재해주시는 박소정기자 화이팅

섹쉬 비키니 딜러 2009-02-07 13: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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