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7:02 (일)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어도, 포기할 순 없어요"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어도, 포기할 순 없어요"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9.01.28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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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 <4> 119구조대 장희철씨의 '숨가쁜 하루'

"화재출동! 화재출동! 제주시 노형동 00아파트! 화재출동!"

지난 22일 오후 6시 35분 제주소방서 119구조센터. 천장 높이 걸린 스피커에서 다급한 음성의 신고내용이 흘러나온다. 이어 화재출동 벨소리가 울리자, 장희철(42) 부대장과 구조대원 4명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119구조대원들이 하나둘 씩 차량에 탑승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0초, 출동 벨소리가 울린 후, 20초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 아니, 이들에겐 20초도 길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119구조대원들이 모두 차량에 탑승하면, 바로 현장으로 출동이다.

"삐익~삐익~" 대형 119구조대차 한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도로를 질주한다. 1분 1초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중앙선 침범과 같은 위험한 질주도 불사한다. 방화복과 공기 호흡기 같은 장비들은 모두 달리는 차 안에서 착용한다.

무전기에서는 계속 화재현장의 상황과 위치를 알려주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장비를 모두 착용한 구조대원들은 화재현장에 빨리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순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무전기에서는 상황메시지에 대한 변경내용이 흘러나온다.

"다른 화재진압대가 출동해 확인한 바 오인신고로 확인 됨. 상황 종료..."

급하게 가던 소방차도 속도를 줄여 다시 평상시로 돌아간다. 구조대원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착용했던 장비를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천만다행이지만, 긴박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대원들의 마음 한켠에서는 '오인신고'에 대한 허탈감이 밀려온다.

"큰 사고가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이게 119구조대원들의 평소 일상생활이에요. 사이렌 소리에 대한 긴장감,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죠."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3팀 부대장 장희철 씨는 출동을 마치고 소방서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보였다.

그는 13년 동안 구조대 일을 하면서 단 한번도 사이렌 소리에 대한 긴장을 놓아본 적이 없다. 오늘은 또 어떤 위험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출동 벨소리가 들리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로 바로 소방차에 타야된다. 이러면서 겪는 구조대원들의 고충도 가지각색이다.

"출동 벨소리가 울리면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도 중간에 끊고(?) 바로 차량에 올라타야 해요. 그래서 소방대원들은 일을 보기 전에 먼저 휴지부터 잡고 일을 보기도 하죠...(웃음) 또, 샤워를 하다가도 벨소리가 울리면 거품만 닦고 출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이렌 소리에 대한 긴장은 저 뿐만 아니라 모든 구조대원들이 겪고 있는 것이죠"

그는 119구조대를 다양한 기능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맥가이버' 칼에 비유했다. 그는 "구조대는 못하는 게 없어요"라는 짧은 말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119구조대는 화재가 발생했을 시, 현장에서 불을 끄고 사람을 구조하는 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19구조대는 이 일말고도 다양한 시민들의 생활민원을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 예로는 뱀. 고양이. 개. 말벌. 도마뱀 등 동물 및 곤충 퇴치작업, 도로 맨홀 뚜껑 덮기, 잠긴 집 문 열어주기, 자동차 배터리 충전해주기 등이다. 그는 이런 부분에 대해 시민들이 119에 전화를 해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에, 신고를 받으면 무조건 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신고가 많아짐에 따라, 119구조대 차에도 이와 관련 장비들이 많이 배치돼 있다.

"예전에 집에 뱀이 나타났다고 해 한 가정집에 출동한 적이 있었어요. 가서 잡아보니깐 도마뱀이었죠. 그 때는 조금 당혹스러웠죠...(웃음) 이런 일들이 많아요. 시민들이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119에 신고를 하죠. 실제로 이 같은 주민들의 생활민원을 지난해 482건을 처리했어요. 혹시나, 이 기사가 나가고 생활민원이 점점 많아지는 건 아닌지...(웃음)"

소방 일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건강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화재 현장에 출동했을 때, 화재로 인해 나오는 연기를 소방대원들이 많이 흡입하게 되면서, 건강이 나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소방대원들은 6개월에 한번 씩 청력, 시력, 폐 기능 등에 대해 정밀검진을 한다.

"소방 일을 하면서 건강이 나빠져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이 많아요. 생각만 해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이 일을 포기할 수 없어요. 아무리 위험에 노출된 일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출동했던 모든 사고현장이 기억난다는 그는 미약한 힘이지만, 앞으로도 구조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탈출 못하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미약한 힘이지만, 생명을 위협받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그들의 생명의 길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이 일을 해 나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는 장희철 씨. 지령스피커에서는 또다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구조대원들은 또 다른 사람의 생명의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또다시 대형 소방차에 올라타 그 현장으로 달려갔다.

설 연휴기간 모두들 들떠 있을 즈음에도, 그에게는 '비상대기'라는 긴장감만 있을 뿐이었다. 이것을 그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운명.

쉴새 없이 반복되는 '지령'과 '출동' 속에, 그에게 지난 설 연휴는 '평온한 휴식'이란 애시당초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 설 연휴 큰 사건사고없이 상황을 마무리할 때 이르러서야, 그는 비로소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감에서 모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미디어제주>

<박소정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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