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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통지서'를 받은 순간, 부들부들 떨렸어요"
"'해고 통지서'를 받은 순간, 부들부들 떨렸어요"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9.02.20 08: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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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6> 여미지식물원 해고노동자 양명옥씨의 '고독한 투쟁'

2008년 1월 어느 날, 양명옥(37.여)씨는 자신의 집 우편함에 꽂힌 한 편지를 집어들고는 읽기 시작했다.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가가 갑자기 파르르 떨렸다. 편지를 꼭 쥐어든 그의 두 손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편지의 내용에 그는 그만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 편지에는 충격적인 단어만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해고통지서'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그 충격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너무도 컸다.

다음날 그는 여느 출근 때와 다름없이 일곱시쯤 대문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한 그는 또 다른 사실에 큰 충격에 휩싸였다. 회사동료 15명도 회사로부터 해고통지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그렇게 여미지 식물원 노동자 15명이 해고된 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해고통지서 받았을 때요? 정말이지 받아들일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어요. 실감도 나지 않았고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어요."

지난 17일 오후 2시 서귀포시 여미지 식물원 주차장에서 열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그 사람이 희망입니다-여미지 식물원 정리해고 투쟁 1주년 노동자 희망대회'에서 만난 양명옥씨는 1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은 그때의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그의 가슴을 토닥거렸다.

여미지 식물원 사태는 지난 2005년 서울시시설관리공단에서 위탁관리해 온 '여미지 식물원'을 주식회사 부국개발에 인수되면서 시작됐다. 인수 당시 전 직원의 고용승계를 약속했던 회사는 지난 2007년 9월부터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퇴직을 요구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월 7일, 회사는 판매.관리직 노동자 15명에게 2월 18일자로 정리해고하겠다고 개별통보했다. 결국 2월 18일, 15명의 노동자는 더 이상 회사에 나갈수 없게 됐다. 지난 1994년에 입사한 양명옥씨도 14년동안 다녔던 정든회사를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떠나야만 했다.

부국개발이 여미지 식물원을 인수한 이후 2년 반 동안 그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홀가분한 마음 반, 억울한 마음 반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경제적으로 힘들다보니 그런 감정에 매달릴 겨를도 없이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7살, 4살된 어린 딸들을 보고 있자니 그의 마음은 더욱 먹먹해져만 갔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 있고 대부분 없는 형편인지라 맞벌이를 해야만 했던 사람들이었어요.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고 그렇게 아무 일도 안하고 집에 있으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장 많이 든 생각이 뭐냐구요? 바로 처음부터 회사는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 안했다는 것, 이 부분이요"

그렇게 해고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그는 해고 후 제주특별자치도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뒤, 그 결과를 기다린 3개월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이 기간 동안 거의 매일이다시피 여미지 식물원과 제주도청 등에서 해고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정리해고한 회사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과가 나온 지난해 5월 19일, 해고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휴대 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들리자,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미지식물원을 상대로 낸 첫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지노위는 부당해고를 인정한다...'

이같은 지노위의 결과에 해고노동자는 서로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지노위로부터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는데, 서로 너무 긴장해서 처음엔 몇분동안은 아무도 그 문자내용을 보지 못했어요. 몇초사이 천당과 지옥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았어요. 지노위가 부당해고를 인정했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서로 얼싸안고 엄청 많이 울었어요.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그러나, 회사는 '부당해고를 인정한다'는 지노위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같은해 8월 25일 중노위 또한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해고노동자 10명을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결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고노동자 10명에 대한 원직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회사는 해고노동자 12명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양명옥씨는 중노위가 원직복직 결정을 내려도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싸움이 1년동안 계속 진행된 만큼 많이 힘겹지만, 이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1년동안 해보니깐, 장난이 아니에요. 복직했으면 좋겠어요. 일을 하지 않으면서 그 전에는 못느꼈던 부분을 많이 느껴져요. 자의적으로 일을 그만두는 것과 고의적으로 그만두게 하는 것은 천지차이에요. 인간적인 기본권리 조차도 베풀지 않는 이 회사를 꼭 이겨 거짓을 세상에 알릴 거에요. 우리는 꼭 이길겁니다."

여미지 식물원 노동자 15명이 해고된 지 1년이 지났다. 지노위와 중노위로부터 부당해고라는 것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직을 시키지 않는 등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해고를 당한 뒤, 얼마되지 않아 여미지 식물원에는 수억원을 투자해 분수대 하나가 생겼다고 한다. 그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바라보며, 혹 '해고자의 눈물'은 아닌지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부당해고라는 판정과 함께 원직복직 결정을 받고, 여전히 회사에 돌아가지 못하고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양명옥씨와 나머지 해고노동자들. 이들은 이 기나긴 투쟁에서 반드시 이겨 회사로 돌아가 일하겠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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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 2009-09-23 11:42:11
기사보고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그냥 뭉클뭉클거리네요. 박기자님. 여미지식물원 사태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앞으로도 이같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 많이 다뤄주세요. 좋은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