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00:55 (일)
야채판매 아줌마의 '새벽을 여는 희망'
야채판매 아줌마의 '새벽을 여는 희망'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9.01.13 04:52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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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이야기] <1>제주시 동문재래시장 야채장사 김춘화씨

"보통 아침 6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지만 이마저도 정해진 건 아니에요. 주문이 많이 들어오면 밤 12시까지는 기본이죠...이렇게 생활한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네요..."

지난 11일 아침 6시, 제주시 동문재래시장 야채판매 코너. 야채장사를 하는 김춘화(59.여) 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오늘도 새벽 대문을 나서 자신의 일터인 제주시 동문재래시장으로 향했다.

'끼이익'. 굳게 닫혀있던 가게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들어올려지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는 배추, 무, 시금치, 호박, 당근, 쪽파, 미나리 등 각종 싱싱한 야채들이 진열돼 있다. 한쪽 구석에는 주문받은 절인 김장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아침 일찍 골라온 싱싱한 야채를 좌판에 배열하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하루가 시작됐다.

어쩌면 25년 동안 매일 매일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지만, 그는 행복했다. 왜냐하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을 한다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남편 사업이 실패하면서 생긴 빚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들었죠...방세도 못내 쫓겨날 상황이었으니... 밥은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야채장사를 시작했어요..."

34살. 그는 처음 야채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란 콘테이너 박스 3개를 길거리에 놓고 야채 노점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밭떼기 농사도 같이 번갈아가면서 했다. 아침에는 야채장사를 하고 밤에는 밭일을 했다.

야채장사의 길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당시 주변상인들이 장사를 안하던 사람이 와서 장사를 한다고 뭐라고 해 남모를 고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상인들에게 열심히 장사하는 모습을 보이니, 나중엔 주변상인들이 인정해줬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보낼 돈이 없어 어린 아들 2명을 데리고 나와 길거리에서 장사를 해야만 했던 것이 그의 아픈 기억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착해 떼를 쓰지 않아 장사를 무난히 할 수 있었다. 좌판장사 이외에 배달까지 했을 때에는 어린아들이 시장 바닥의 좌판을 지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했어요. 남들 다 가는 어린이집, 유치원도 보내주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그렇게 하도록 했으니...너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나요."

그는 야채 노점을 시작한지 13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그리고 노점을 철거하고 제주시 동문재래시장 내에 건물을 얻어 지금까지 야채장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을 무렵, 그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5년 전부터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려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는 지난해 7월 무릎, 팔, 다리에 심한 통증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통원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같은해 9월에 퇴원한 후, 약 2개월 동안 혼자 집에만 있다보니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우울증은 날이갈수록 심각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다시 일터로 발걸음을 향했다.

"집에만 있으니깐 우울증도 걸리고 통증이 더 심한 것 같아요. 다시 일터로 나와 일을 하니깐, 통증이 없어진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야채장사를 하고 싶다는 그는 "일하는 것이 참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치아를 드러내 '씨익' 웃었다.

"하루에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지만, 요즘 일하는 것이 참 행복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싫지만, 아침에 일어나 일을 나갈수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인 것 같아요. 아파보니까 진짜 건강만 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이어 '힘들다'고 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한마디 했다.

"나도 하루에 500~1000원짜리 야채 팔면서 벌이를 하는데, 젊은이들이 벌써부터 그런 소리하면 쓰나. 무엇이든지 열심히 일하면 밥은 먹고 살아요.젊고 건강한데 뭔들 못하겠어요? 아직 덜 힘들어서 저런 말 하는거에요. 부지런히 열심히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거에요."

"올해 희망사항이 뭐냐고요?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죠"라고 말을 남긴 채 그는 고단한 시름을 잊기 위해 손님으로부터 주문받은 5000원짜리 무를 썰며 밤 10시가 되어서 또 다시 신나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2009년 매일아침 새벽을 여는 야채장사의 시작은 '일하는 기쁨'으로 가득하다. <미디어제주>

기분좋은 일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연초에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많은 계획들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희망'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는 듯 합니다. 새벽을 열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은 큰 혜택을 바라지 않습니다. 요행수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희망'이 그들에게 유일한 기쁨입니다. '일하는 기쁨'에서 그들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2009년 새해를 맞아 미디어제주 신년기획으로 '희망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 거리를 청소하는 분들, 폐지를 줍는 분들 등등 우리 사회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소재로 한 '희망 이야기'가 따뜻한 이웃의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첫 연재를 시작하며, 박소정 기자>

<박소정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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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2009-02-08 10:52:28
이은 즐기며 해야 한답니다.
맞습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은 그 분야에서 성공한다고 합니다.희망을 가지고 오늘은 살아가는 아름분 들이 계시기에 삶은 가치가 있고 행복 한것입니다.열정가지고 발로뛰는 박소정기자의 "희망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뿌리깊은 나무 2009-02-08 10:50:33
맞습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은 그 분야에서 성공한다고 합니다.희망을 가지고 오늘은 살아가는 아름분 들이 계시기에 삶은 가치가 있고 행복 한것입니다.열정가지고 발로뛰는 박소정기자의 "희망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알동네 2009-01-15 14:27:09
제 자신 혹은 주변 이웃과 관계된, 구체적인 삶의 스토리가 묻어나는 기록들은 언제나 멸시됐지요. 이번 연재는 어떤 것을 기억하고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깃든 듯 싶습니다. 보다 자극적인 정보에 이끌리는 인터넷신문 속에 보다 담백하면서 진솔한 내용 담아주길 기대합니다.

유태복 2009-01-14 17:24:47
세상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줘서 넘 좋아요.
세상 삶이 다 이렇게 진솔하게 살아 가는 것인데.
좀 춥고, 덥고, 힘든 일을 안 하려는데 문제는 생기는 것이지요.

사람이 희망이다 2009-01-14 13:15:02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뭔지. 기자님의 말씀대로 희망이 아닐런지. 지금 우리가 방황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희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런지.
희망을 주는 이웃의 이야기 많이 보도해주세요. 박기자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