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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결혼식해서 뭐 하냐고요?"
"늘그막에 결혼식해서 뭐 하냐고요?"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9.03.27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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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11>65세 동갑내기 부부 늦깎이 '웨딩마치'

1965년, 김삼일(65)씨가 19살 되던 해였다. 부모를 일찍 여읜 그는 어릴적부터 남의 밭일을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도, 친적도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에게는 가난과 침묵, 그리고 외로움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밭일을 하러 온 한 소녀가 자꾸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긴 생머리에 귀여운 미소가 매력적인 소녀였다. 더욱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홀로 힘겹게 살아온 모습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문득, 그는 서로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면서 함께 살아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 연애 끝에 그의 아내 조숙자(65)씨와 평생을 약속했다.

이들 부부는 형편이 어려워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것에 대해 아내는 괜찮다고 했지만, 김씨는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 주지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는 반드시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주겠다고 마음속으로는 수백번 다짐은 했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그 다짐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 드디어 함께 살아온지 44년 만에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 주게 됐다.

"감회가 새로워요. 면사포를 씌워 주지못해 늘 맘에 걸렸는데, 이제야 아내를 편하게 볼수있을 것 같아요."

27일 오전 11시 제주시 퍼시픽호텔에서 뒤늦은 결혼식을 올린 65세 동갑내기 부부 김삼일.조숙자씨. 단정한 양복 차림을 한 새신랑 김씨는 기쁨의 한숨을 쉬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던 그는 젊었을 적 아내의 모습이 생각이 나는지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하얀드레스를 입은 새신부는 자신의 모습이 마냥 쑥스러운 듯 미소만 짓는다. 하지만, 뒤늦게 올린 결혼식이 싫지만은 않은 듯 하다. 서로 쑥스러워 대놓고 얼굴을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힐끔힐끔 서로 바라본 뒤, 고개를 숙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감정은 나이가 들어서도 똑같은 듯 하다.

이들은 이날 제주시의 '2009 동거부부 합동결혼식'을 올린 제주지역 동거부부 11쌍 중 가장 고령자 부부이다. 그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조금만 더 젊었을 때 면사포를 씌워줬더라면 좋았을 텐데...늘그막에 결혼식을 올려서 뭐하냐고 하겠지만, 40여년 동안의 가슴 속에 맺힌 한이 풀어지는 듯 해요."

가슴 속의 한을 풀었다는 기쁨과 동시에 가난으로 인한 힘겨웠던 40여년 동안의 삶이 머리속을 스쳐지나 가는 듯, 조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남의 밭일 등을 하며 빠듯빠듯 열심히 살아왔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40여년 동안 집 하나 없이 월세방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생활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생활이 어렵다 보니, 아이들에게 교육도 충분히 시켜주지 못했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을 볼때마다 미안한 맘이 들 뿐이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심하게 다쳐 일을 하지 못하는 조씨와 일을 구하고 싶어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일을 구할수 조차 없는 김씨는 앞으로 밀린 월세값과 생활비를 어떻게 벌어야 할지 고민스럽다.

그래도, 이들은 처음 함께 살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틋함 하나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의 소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들 부부는 "앞으로 소원요? 늘그막에 무슨 소원이 있겠어요. 그냥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소원이죠"라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손을 꼭 잡고 놓치 않은 이들 부부의 모습에서 무언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토록 바래왔던 '귀한' 결혼식을 올린 늙은 신혼부부. 결혼식을 올렸다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이들 부부도 행복할 따름이다.<미디어제주>

<박소정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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