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리' 때 20명 구조한 살신성인 주인공 고석순씨
"전생에 인연이 있었겠지요. 열심히 사시고 훌륭한 나라에 큰 재산이 되시길 기원합니다."제11호 태풍 '나리'가 제주 곳곳을 휩쓸고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난 30일 고석순씨를 만났다. 고씨는 지난 제11호 태풍 '나리'때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 그렇게 얘기했다.
고석순씨(45.제주시 조천읍 와흘리)는 지난 9월 16일 태풍 '나리'가 집중호우를 뿌리고 거친 바람을 몰아치며 위력을 과시하던 그 때 제주시 봉개동에서 트럭에 몸을 묶어 갑자기 불어난 물에 고립된 승합차 안 8명의 여학생을 구조해 낸 주인공이다.
# 트럭에 몸 묶고 여학생 구조한 '고마운 사람', 조천읍 와흘리 고석순씨
살신성인 정신으로 8명의 여학생의 소중한 생명을 구조한 고씨의 잔잔한 감동이야기는(미디어제주 9월 21일자) 당시 제주사회에 훈훈한 감동으로 전해졌었다.
그때 고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고 그저 '고마운 사람'이었다.

"크게 알리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모두 내 딸 같고 그래서 그런건데... 내 딸이 그런 위급한 상황이었으면 다른 어떤 사람도 저처럼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저에 대한 얘기가 보도된 것도 어제 봉개동사무소 직원을 통해서 알게됐어요. 한 번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저에 대한 기사를 스크립해뒀다가 보여주시더라고요."
쑥쓰러운듯 웃으며 말하는 그는 "봉개동사무소에서는 어떻게 저를 찾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때 얘기를 해 줄 수 있느냐는 말에 그는 "참담했죠" 간략하게 답했다.
# 자동차가 '둥~ 둥~' 아찔한 상황 속 무려 20여명 구조
고씨는 "사실 그날 저도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며 "둘째 딸이 한라대학에서 컴퓨터 시험을 보는 날이어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왔다가 다시 시험이 끝나서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었는데 회천동 커브길 내천에 물이 넘쳐서 자동차 한 대는 급류에 떠내려 갈 상황이고 차 옆에는 여자 두 명이 겁에 질려 서있었다"고 말했다.

아찔한 상황이어서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는 그는 차근차근 그 때의 정황을 설명했다.
그는 "렌터가 한 대가 급류에 떠내려 가다가 제 차 적제함 쪽에 걸렸는데 노부부가 타고 있었다"며 "밧줄 하나를 생명줄 삼아 몸에 묶고 그분들을 직접 업어서 구출을 했었다"고 말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또 있으니까 사람들이 가득 탄 승합차가 떠내려 오더라고요. 물길은 거세지, 어르신까지 업어서 구조한터라 무릎관절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얼른 식당 간판 지지대와 승합차를 연결해서 여학생들을 식당으로 데려왔습니다. 다 구조하고 보니까 얼추 20여명은 되더라고요."
"지금은 웃지만 진짜 그땐 정말 죽는 줄만 알았어요"라고 말하던 그는 "그때 그 식당 사장님 내외분이 그 여러사람들을 위해서 추위 녹이라고 커피도 주시고 난로로 피워주셔서 모두 무사히 대피했다가 물이 빠지니까 다들 돌아왔다"고 말했다.
# 소중한 목숨 살린 위대한 '부정(父情)의 힘'
5남매의 아버지, 90대 노부부의 아들로 대가족을 돌보는 가장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그는 "그 때의 일을여기 저기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치는 않지만 그래도 어디가서 우리 딸들에게 나쁜 영향은 주지 않겠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하다"고 한다.
제 몸 돌보기도 힘든 그 때 무려 20여명을 구출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딸을 둔 아버지로서의 위대한 '부정(父情)의 힘'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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