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00:55 (일)
"무명천 할머니를 기억하며"
"무명천 할머니를 기억하며"
  • 강태유 기자
  • 승인 2008.03.25 18: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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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진아영 할머니 삶터 개소식 열려

25일 그 고통의 삶으로 인해 4․3의 상징이 된 진아영 할머니. 이름보다는 '무명천 할머니'로 더 많이 사람들 가슴에 새겨진 진 할머니의 삶터를 만나러 가는 길. 하늘은 무겁고 두터웠다.

60여년을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온 몸에 지닌 채 통한의 삶을 살다간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를 찾아 가는 길이라 그랬을까. 하늘이 온통 잿빛이다.

하지만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진아영 할머니와 할머니의 고통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삶터가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전에 진아영 할머니가 살던 삶터가 도민들의 노력으로 새단장을 마치고 25일 문을 열었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공동대표 정민구, 박용수)는 이날 낮 12시 제주시 한경면 월령리에서 진아영 할머니 삶터 개소식을 열었다.

흐린 날씨 속에서 진행된 이날 삶터 개소식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양승문 의원과 김순효 의원, 강영호 한림읍장, 김명호 한림이장단협의회장, 허영선 제주민예총 지회장, 고대언 민주노총제주본부장, 채칠성 전교조제주지부장,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김효선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 이경선 제주여민회 대표, 김남훈 제주통일청년회 회장, 김효철 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 관장 등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150여명이 참석해 무명천 할머니 삶터 개소를 축하했다.

이날 행사는 평화의 꽃을 심으며 마무리 됐는데 참석자들은 십시일반으로 꽃을 심으며 삶터를 꾸미기도 했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삶터)는 생전에 할머니의 삶을 짓누르던 고통을 상징하듯 무겁고 두터운 하늘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삶터를 가리고 있던 하얀 천이 사람들에 의해 벗겨지자 무명천 할머니의 본명이 박힌 문패를 달고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사람들한테 드러냈다. 문패에 크게 쓰인 ‘진아영’이라고 할머니의 이름이 선명했다.

모습을 드러낸 삶터 내부의 한켠에는 생전에 할머니가 쓰시던 이불들이며 가구들이 차곡차곡 정돈돼 있다. 한쪽 벽에는 고인을  '무명천 할머니'로 부르게 했던 '무명천'을 바느질로 한땀한땀 수놓은 작품이 설치돼 있다. 또 할머니가 신던 신발이며 각종 가재도구들이 원래 있던 그대로다.

훼손 위험이 있는 것들만 유리로 만든 전시관에 들어있을 뿐 나머지 유품들은 할머니의 숨결이 베인 그대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삶터 전시기획 담당을 맡은 양미경씨는 "삶터는 기억의 공간, 제의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공간은 단지 휘둘러보는 것으로 끝나는 박물관이 아니다"며 "유품들을 직접 만져도 보면서 할머니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를 통해 진아영 할머니와 4.3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진아영 할머니의 조카인 진순여씨(72.제주시 삼도2동)는 단아하게 단장된 할머니의 삶터 보며 "좋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감격을 이기지 못해 울먹였다.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는 진씨는 "감사하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는데 어려운 일을 해준 분들한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진순여 할머니는 현재 할머니의 제사를 맡아서 하고 있다. 해마다 음력 7월 진아영 할머니 제삿날이면 정성스레 음식을 마련, 할머니의 산소를 찾아 젯밥을 올리고 있다. 진 할머니는 "앞으로 삶터에서 제사를 모시고 싶다"며 작은 바람을 내비쳤다. 진 할머니는 삶터 부엌에 간단하게 마련된 제상에서 할머니에게 술을 올리면서도 가슴 아픈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월령리 마을이장이자 유족인 박용수씨는 "마을에서 관리를 맡아 언제라도 사람들이 삶터를 볼 수 있도록 개방할 계획"이라며 "집앞과 일주도로변에 진아영 할머니에 대한 설명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해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날 삶터 개소를 지켜본 마을주민 송민순씨(82.한경면 월령리)는 "살아계실 때도 너무 불쌍했고 또 불쌍하게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팠는데 (여러사람의 도움으로) 이렇게 새단장을 마쳐서 너무 감사하고 좋다"며 "언제까지라도 삶터를 잘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는 삶터를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안내계획도 잡고 있다. 안내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월령리사무소(796-2589)나 박용수씨(010-9840-8868)로 하면 진아영 할머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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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2008-03-25 23:44:49
4.3을 잘 모른다면 무명천 할머니의 삶터를 둘러보고 그 분의 아픈 세월을 가슴으로 조금이나마 느낀다면 4.3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알 수 있을 겁니다.

돌멩이 2008-03-25 23:41:53
아직도 제주 4.3을 좌파 어쩌고 저쩌고 하면 폄하하는 자들이 있지만 오늘만큼은 진아영할머니의 생전의 삶을 다시한번 되새겨 봤으면 합니다. 4.3 후유장애인으로 살았던 한 많은 그분의 삶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