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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죽고 싶은 고통 아십니까?"
"할머니의 죽고 싶은 고통 아십니까?"
  • 양호근 기자
  • 승인 2008.02.15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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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아영할머니 삶터보존위 박용수 월령리장

15일 오전 11시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위치한 故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 앞에서 고사가 진행됐다.

이로써 진아영할머니삶터보존위원회는 본격적으로 진아영 할머니 생가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데 착수했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박용수 월령리장은 감회가 남다르다. 제주4.3의 여파로 그동안 질곡의 역사로만 남겨뒀던 무명천 할머니의 이야기를 후대에 영원히 알리고 기록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세상에 제주4.3을 말하지도, 말할 수도 없었던 한 맺힌 삶을 살다 돌아가신 고 진아영 할머니는 향년 90세가 되던 해인 2004년 9월 8일 세상을 떠나면서 '제주4.3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부각되고, 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진 할머니는 1948년 4.3사건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35살의 나이에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아랫턱을 완전히 잃어, 죽기보다 힘든 삶을 살았다.

박용수 이장에게 진아영 할머니는 이모할머니다. 박용수 이장의 외할머니의 형제가 바로 진 할머니인 것이다. 진 할머니는 언니가 두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이곳 월령기 생가에 살았었고, 할머니는 총에 맞아 턱을 잃은 후 2003년까지 이곳에서 20여년 생활했다.

그 후 몸이 악화돼 이시돌 요양원에서 생활하다 세상을 떠났다.

박 이장은 그 때를 회상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 이장은 "진아영 할머니는 30대 젊은 나이에 총에 맞아 턱을 잃으신 후 결혼도 못해, 자식 없이 외로이 지내다 세상을 떠나신 것"이라며 "비가 오면 턱이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이셨다"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박 이장은 "같이 식사를 한 적에는 아랫 턱이 없으셨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셨다"며 "항상 몸을 뒤로 돌아서 식사를 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고 진아영 할머니는 4.3의 역사에 무고한 희생양이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 때. 할머니는 죽기보다 힘든 삶을 그렇게 견뎌 온 것이다.

진 할머니는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는 살 수 있을 지 몰랐다고 한다. 박 이장은 "예전이 얘기를 들었는 데 처음에 진아영 할머니가 턱에 총을 맞았을 때 아랫턱이 간신히 달려 있고 피가 엄청나게 나 죽을 줄 알았다고 했다"며 "왜냐하면 당시 병원도 없고 쓸만한 약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이장은 "그래서 턱에 총을 맞은 사고 직후 친척들도 할머니가 조용히 죽을 수 있도록 내버려 뒀는데 아랫턱이 떨어져 나가고 상처가 아물면서 살아났다"며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게 힘겹게 생을 계속 이어왔다"고 진 할머니의 기구한 삶에 대해 얘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박 이장은 제주4.3에 의해 고통받고 상처받은 할머니의 아픔을 통해 후대가 반성하고 교훈으로 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박 이장은 말한다. "할머니가 정말 아픔 속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다음 세대들에게는 이런 일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진아영할머니삶터 보존을 통해 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그런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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