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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 할머니, 이제 뵈러 갑니다"
"무명천 할머니, 이제 뵈러 갑니다"
  • 양호근 기자
  • 승인 2008.02.15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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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진아영 할머니 삶터, 박물관 문연다
삶터보존위원회 첫 삽, 사업설명회 개최

간만에 돌담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내리 쬐 8평 남짓 작은 집 앞의 텃밭을 비췄다.

텃밭 한 켠에서는 고사가 진행 중이다. 작은 상 위에 돼지 머리가 놓여 있고, 각종 과일과 떡들이 정성스레 진열돼 있는 가운데 제문이 읊어 진다.

유세차
무자년 정월 아흐레 날
저희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에서는 60년 전 무자년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4.3영령들과 한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다 가신 진아영 할머니께 고합니다.
60년 세월은 한 갑이요 두 세대의 흐름이라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의미할 돌아온 무자년에 우리는 한림읍 월령리 진아영 할머니 생가에서 할머니의 넋을 위로하고 옷깃을 여미며 무자년 처절했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일과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너무 쉽게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려 하기에 우리는 할머니의 생가를 보존하려 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최소의 가치가 소중함을 우리는 무자년의 잔혹한 역사에서 배웠습니다.
무자년의 지독한 배고픔과 수많은 죽음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무자년의 제주민의 꿋꿋한 삶의 정신속에서 제주민의 자긍심을 배웠습니다.

짧게 정적이 흐른다. 모인 사람들이 상에 절을 올리고 제문은 불에 태워져 재가 돼 사라졌다.

고(故) 진아영 할머니.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져 있는 이 할머니는 제주4.3의 광풍으로 후유 장애의 삶을 살다 돌아가셨다. 15일 진아영할머니삶터보존위원회는 그런 할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생가를 박물관로 만들기 위해 이날 고사를 지내고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갔다.

진아영 할머니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터. 세상에 제주4.3을 말하지도, 말할 수도 없었던 한 맺힌 삶을 살다 돌아가신 진 할머니는 향년 90세가 되던 해인 2004년 9월 8일 세상을 떠나면서 '제주4.3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부각되고, 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진 할머니는 1948년 4.3사건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35살의 나이에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아랫턱을 완전히 잃어, 죽기보다 힘든 삶을 살았다.
 

진 할머니는 총을 맞고 아랫턱을 잃을 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는 것도 어려워 50여년 평생 죽만 입안으로 그대로 넘겨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무명천으로 턱을 감싸고 평생을 살아 와 사람들에게는 '무명천 할머니'로 더 알려졌다. 식사를 할 때에도 뒤돌아 아무에게도 턱을 보이려 하지 않았던 진 할머니. 할머니는 그렇게 세상과 등지고 살아왔다.

제주시 한림읍 판포리에 집이 있었지만 사고 후 언니의 집이던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위치한 8평 남짓한 집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아랫턱을 잃어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갖지 못한 진 할머니는 55년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오다 건강이 악화돼 2003년에 월령리 집을 나와, 제주시 이시돌 요양원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2004년, 90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시대의 희생자 진 할머니는 그 사건으로 인생이 완전이 파괴돼 버렸다. 결혼 생활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사라져, 모든 삶 자체가 제주4.3의 역풍에 짓밟혀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진 할머니는 4.3후유장애인으로서 상징적 삶을 보여준다. 여성이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의 삶을 살았던 진 할머니. 할머니의 삶은 후유장애인들의 삶의 전형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진 할머니가 살던 8평 남짓한 집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이런 진 할머니의 생애를 영원히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공동대표 정민구, 박용수)'를 꾸리고 추진위원을 모집하는 등 모금운동을 시작한 결과 15일 고사를 지내고, 본격적으로 무명천 할머니의 생가를 박물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됐다.

# "생가 살리고, 월령리사무소에 전시관 만든다"

복격적으로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사업에 착수한 보존위원회는 내일(16일)부터 집수리에 들어간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보존운동은 후유장애의 보편적 삶과 그 가운데 무명천 할머니 개인의 삶을 교차 조명해 개인을 통한 후유장애의 문제, 전체를 통한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함이다.

또 현대사 속에서 발생된 사건, 여성이라는 조건을 충분히 수용해 4.3의 과정에서 여성의 수난을 중심주제로 설정해 역사를 조망한다.

이 위원회는 "제주도민들의 힘으로 만드는 사업의 전형을 세워보겠다는 목표로 제주도에서 하지 않는 사업을 찾아 소박하게라도 진정한 4.3의 정신을 담겠다"고 말했다.

현재 진 할머니 생가는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삶터를 박물관화 하면 박물관 운영권은 마을에 줘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형태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 위원회는 이번 박물관의 경우 '개인 중심으로 추진위원회 구성', '성금 모금으로 사업자금 마련', '소박하고 작은 박물관 지향'을 주 골자로 하는 소박한 박물관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진 할머니의 삶터를 고스란히 보존하느냐 과감하게 바꿔서 전시공간으로 하느냐를 가장 고민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현재 진아영 할머니 생가 안에 영상.사진 자료실을 만들지 아니면 생가는 그대로 보존하고, 할머니 집 바로 앞에 위치한 월령리사무소 2층에 영상실을 만들어서 운영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우선 생가는 보존하고, 리사무소는 전시실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故 진아영 할머니 생가의 크기는 26.4평방미터, 텃밭까지 하면 부지는 99평방미터다.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 안에 모든 전시시설을 갖추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와 관련해 의견이 상충하고 있어서 우선적으로 집을 수리하면서 더 고민하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우선적으로 집이 방수도 안 되고, 습기가 많이 차서 내.외부 수리를 해야 한다"며 15일 오후 고사를 마치자마자 본격적으로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월령리사무소에 위치한 창고로 옮겼다.

또 진 할머니 생가로 들어가는 입구 부분의 조경을 위해서 돌담을 정비하고, 솟대도 세울 예정이다.

현재 확보된 예산은 5만원씩 200명이 모금한 1000만원, 아직도 계속 모금을 계속하고 있다. 진아영할머니삶터보존위원회 추진위원은 30명으로 구성돼, 월령리 청년회 및 월령리와 연계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

오는 3월 25일 '진아영할머니삶터' 박물관의 개관식을 진행할 예정이며, 차후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작은 문화행사도 개최할 계획이다.

# "진아영 할머니 아픔 이제 조금 알겠어요"

진아영할머니삶터보존위원회는 15일 고사를 지낸 가운데, 오는 3월 25일 진아영할머니삶터 박물관이 개관된다.

이 보존위원회는 故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를 보존하면서, 할머니 집 앞에 위치한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사무소 2층에 영상과 사진을 전시하는 전시실을 만들 예정이다.

보존위원회는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진아영 할머니의 삶으로 제주4.3의 후유장애와 여성에 대해 조명할 것"이라며 "제주4.3을 교육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이날 오전 11시 진 할머니 집 앞에서 고사를 지낼 때 이를 유심히 지켜보는 어린 아이가 눈에 띄었다.

이제 갓 중학교에 들어간다는 강하린군(14)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왔지만 사뭇 진지하게 고사를 지켜봤다.

이 자리에서 강군은 "여기 온 이유를 모르겠어요. 엄마가 끌고 왔어요"라고 말했지만, 이런 기회로 진아영 할머니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누구나 처음에는 무관심으로 시작하지만 조금씩 알고, 배워가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 법. 따라서 진아영할머니삶터 박물관이 개관되면 부모님들이 손으로 아이들을 끌고 와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주사의 가장 무겁고, 비극적인 역사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역사가 제주4.3이기 때문이다. 제주4.3을 조금이나마 알게되는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제주4.3의 질곡의 역사를 이해하고 제주 사회에서 4.3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이 자리에는 서울에 온 손님도 있었다. 서울의 진보영상을 제작하는 '청춘영상창작단'에서 제주4.3을 조명하기 위해 참석한 것이다.

카메라 촬영을 하고 있던 청춘영상창작단 전승호씨는 "제주4.3을 기획하기 위해 유적지를 다녔는데 우연히 진아영할머니삶터보존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며 "제주4.3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올해 60주년을 맞는 제주4.3은 이제 기억을 간직한 사람보다 기록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에 제주도민이라 할지라도 제주4.3에 무관심하거나 알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월령리 박용수 이장도 "월령리에 진아영할머니삶터 박물관이 생기지만 마을 사람들은 별로 반응이 없다"며 "월령리에서는 제주4.3으로 인한 피해자도 없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일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번 박물관을 계기로 조금이라도 더 제주4.3에 관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박 이장은 "진아영 할머니가 정말 아픔 속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다음 세대들에게는 이런 일어 없어야 한다"며 "이번 진아영할머니 삶터 보존을 통해 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그런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아영할머니삶터 박물관이 개관되면 이제 제주4.3을 할머니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된다. 우리가 꼭 알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역사,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그런 역사인 만큼 직접 박물관을 찾아 제주의 역사를 아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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