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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등져 말 못한 질곡의 삶
"할머니 이제 속 시원히 말하세요"
세상에 등져 말 못한 질곡의 삶
"할머니 이제 속 시원히 말하세요"
  • 양호근 기자
  • 승인 2008.01.18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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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눈] 무명천 할머니 삶터 '박물관'으로 만든다

제주4.3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명천할머니'를 단번에 기억할 것이다.

세상에 제주4.3을 말하지도, 말할 수도 없었던 한 맺힌 삶을 살다 돌아가신 고(故) 진아영 할머니(1914~2004년).

고(故) 진아영 할머니는 향년 90세가 되던 해인 2004년 9월 8일 세상을 떠나면서 '제주4.3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부각되고, 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진 할머니는 1948년 4.3사건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35살의 나이에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진 할머니는 아랫턱을 잃어 말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50여년 평생 죽만 입안으로 그대로 넘겨 먹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과 등지고 살아 온 진 할머니. 그렇게 진 할머니는 단 한번도 밥을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인 적이 없다.

진 할머니는 아랫턱이 없는 얼굴을 보일 수 없어 그 일 이후부터 턱과 얼굴을 무명천으로 감싸서 한 평생 살게 됐으며, 무명천은 진 할머니의 삶을 대변해 주면서, 4.3후유장애인의 상징물이 됐다.

그렇게 55년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오다 건강이 악화돼 제주시 이시돌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90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시대의 희생자 진 할머니는 그 사건으로 인생이 완전이 파괴돼 버렸다. 결혼 생활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사라져, 모든 삶 자체가 4.3의 역풍에 짓밟혀 버렸다. 진 할머니는 형제들이 돈 모아서 사준 8평 짜리 집에서 혼자 그렇게 하루 하루 외롭게 살아왔다.

때문에 진 할머니는 4.3후유장애인으로서 상징적 삶을 보여준다. 여성이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의 삶을 살았던 진 할머니. 할머니의 삶은 후유장애인들의 삶의 전형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진 할머니가 살던 8평 남짓한 집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이런 진 할머니의 생애를 영원히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꾸리고 추진위원을 모집하는 등 모금운동을 시작한다.

보존위원회는 현재 뜻있는 분들을 위원 참여를 모집하고 있는데, 정민구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와 진 할머니의 삶터가 있는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박용수 이장이 공동대표를 맡아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들은 아직 공식적인 모금운동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는 21일 위원회 회의를 열고,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예정이다.

이 보존위원회는 제주도당국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운영한다는 기본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위원회는 진아영 할머니 생활환경 보존운동을 자발적인 시민운동으로 이끌어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공동행동 방식으로 협의, 조정된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따라서 행정지원 예산 배제의 원칙으로 순수 시민운동 방식으로 추진되며, 지역주민 이익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 진아영 할머니 삶터, 주민의 손으로 지킨다

고(故)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보존운동은 후유장애의 보편적 삶과 그 가운데 무명천 할머니 개인의 삶을 교차 조명해 개인을 통한 후유장애의 문제, 전체를 통한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함이다.

또 현대사 속에서 발생된 사건, 여성이라는 조건을 충분히 수용해 4.3의 과정에서 여성의 수난을 중심주제로 설정해 역사를 조망한다.

이 위원회는 "제주도민들의 힘으로 만드는 사업의 전형을 세워보겠다는 목표로 제주도에서 하지 않는 사업을 찾아 소박하게라도 진정한 4.3의 정신을 담겠다"고 말했다. 그 후 4.3유적지에 대한 묘역화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번에 진 할머니의 삶터를 박물관화 하면 박물관 운영권은 마을에 줘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형태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들은 이번 보존운동이 다른 형태의 시민사업 형태로 진행되는 것으로서 돈을 모아서 사업을 하는 데 마을에 소유권을 줘서 추진할 것이다.

특히 이 위원회는 진 할머니의 삶터를 고스란히 보존하느냐 과감하게 바꿔서 전시공간으로 하느냐는 것을 중점적으로 논의 해 절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전시전문가가 현장 파악을 끝낸 상태다.

위원회 측은 화려한 설치보다는 전형적인 제주 해안마을의 풍광과 조화를 이루고 그 자체가 하나의 마을 박물관이 되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고정된 이미지를 건물과 주변시설에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이 박물관에는 후유장애 관련 영상, 시, 소설, 역사적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제반 사료, 개인의 소장품, 기타 4.3여성사 속에서 물품들을 전시한다.

제주의 피바람 부는 광풍의 역사, 제주4.3이 이번을 계기로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국가적으로 반성하고 기릴 수 있는 역사로 탈바꿈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은 온 도민의 바람이다.

아직도 4.3을 말하지 못하는 수 많은 제주도민들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제주4.3 환갑(60주년)을 맞는 올해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미디어제주>

 

"요즘 제주4.3을 아무런 중간단계 없이 갑자기 화해와 상생으로 넘어간 것 같은데 4.3을 일으킨 사람도 밝혀지지 않고 대통령이 사과해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제주주민자치연대 참여연구자치소 고성환 위원장은 제주4.3이 주체도 없이 화해와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간 것을 꼬집었다.

고성환 위원장은 "누가 몇명을 죽였고,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기본적으로 밝혀지지 않고서 해원이 되고 화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며 "주체가 없는 화해와 상생으로 어물쩡 넘기지 말고 4.3에 있어서 기본적 정신이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것이 진정한 진상규명"이라고 주장했다.

"왜 목숨을 걸면서 문제를 제기했고, 현대적 문제가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진상규명 문제만 해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해야 하는데 가해자에 대해서는 슬쩍 덮어 버리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 하는데 아직도 이렇다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는 아직도 제주4.3의 문제가 진행형이고 풀어 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고 소리 높혔다.

그는 "이 사업은 쪼개서 들어가서 거시적이 아닌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진 할머니와 같은 삶들을 하나 하나 찾아서 구구절절하게 산 사람이든간에 누구든 간에 개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양한 삶을 다양한 형태로 접근하는 것이 4.3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실제 4.3연구단체에서는 4.3희생자가 3만이라고 한 것으로 봐서 아직도 피해신고 안 한 사람이 꽤 있다"며 "신고를 안 하는 것은 앞으로 올 불이익 때문"이라고 아직도 말하지 못하는 4.3역사의 현실을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제주도당국에 도움을 받지 않고 주민들이 직접 추진해, 진실을 은폐하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그는 "우리가 관에 도움을 받게 되면 4.3항쟁이란 용어를 못쓰고 4.3정신에 대한 구체적인 것들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요즘 4.3사업하는 것 보면 4.3사건이라고 하거나 뒤에 아무것도 못 붙여서 그냥 제주4.3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저희 같은 경우에는 4.3의 후예로서 긍지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하나를 하더라도 소박하게 뜻 맞는 사람끼리 하자는 것이고 월령리에서 관의 도움을 받지 안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기본 정신에 대해서는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같은 제주4.3의 피해자이지만 위패를 같은 곳에 모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백조일손지묘에 가면 열받는다"며 "왜 태극기를 다른 데 달아도 되는데 비석 위에다가 태극기를 세워놓느냐. 국가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인데 국가 유공자도 아니고... 그러면 광주민주항쟁처럼 국가 유공자 대우를 해 주든지... 그래서 속상한 것"이라며 답답함을 털어 놓았다.

"관에서 하는 사업 형태가 그런 것이니까... 관 관리를 받게 되면 자유로운 창조활동을 못 해요."

<미디어제주>

 

*고(故)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 추진위원을 모집 및 후원을 받습니다.

위원모집: 제주주민자치연대(064-722-2701.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804-3)
후원계좌: 제주은행 57-02-013236(예금주 변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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