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00:55 (일)
창의적 인재 키우겠다더니...
영어 못하는 선생은 뒤로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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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하는 선생은 뒤로가라?
  • 양호근 기자
  • 승인 2008.03.25 07:5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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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영어공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③창의성 교육 '후진', 영어공교육 '급발진'

# "영어 못하는 교사는 저쪽 뒤로..."

"지금까지 영어로 수업을 한 번도 안해 본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국어나 수학과목에 대한 노하우가 대단한데 영어가 뒤처진다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교육청이 영어공교육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다음달부터 당장 초등학교 1, 2학년에 영어수업을 시작하지만 교사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그동안 초등학교 저학년을 맡아 왔던 고령의 교사들은 단 한번도 영어수업을 해보지 않은 교사도 있기 때문에 영어공교육의 급한 추진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제주도교육청에서는 담임교사가 직접 영어수업을 영어로 하라고 지시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전담 교사나 교환 교사 등의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영어수업을 잘 못하는 교사들의 소외감은 인터뷰에서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을 맡고 있는 나이가 많은 교사들의 경우,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인성교육 부분 등에서 장점이 많지만 영어구사 능력을 우선시하는 최근의 교육정책은 이런 장점을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교육학 지식이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왠지 자신이 뒤처지는 것 같고... 모두 다 잘할 수는 없지않습니까? 아홉 과목이나 되는데."

제주시 삼양초등학교 김명훈 교사는 "제주도교육청에서는 영어수업을 전담교사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들이 직접 하라고 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그럴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지만 시간도 주지 않으면서 짧은 시간에 준비하기는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제주도교육청은 '영어놀이체험학습' 정도라고 달래고(?) 있지만, 어느정도의 전문성이 갖춰지지 않은 체 영어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교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선 학교의 교사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재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주도교육청에서 워낙 강경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논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여기고 있지만 지나치게 급하게 추진하는 영어공교육이 과연 좋은 결과를 낳을지 의심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1, 2학년부터 영어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교사는 "1, 2학년 같은 경우에는 모국어도 습득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란이 있을 것"이라며 "1, 2학년 때 습득하면 발달단계가 빠른 아이들은 잘 흡수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혼돈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런 영어공교육은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처음 영어수업을 도입했을 때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한 이유도 그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 교사는 "이 부분은 제주도에서 시행하느냐 차원이 아니라 전국 차원에서 해야하고, 무턱대고 시행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 1% 창의적 인재 양성 '뒷전'... 오로지 '영어'

이처럼 제주도교육청이 영어공교육에 온 힘을 쏟는 반면, '창의적 인재 육성'이라는 구호는 무색할 정도로 추진이 안 되고 있다.

양성언 교육감은 제주도교육청교육감 선거 재선에 성공하면서 "1%의 작은섬 제주가 아니라 1%의 창의적인 고급두뇌 양성소 제주가 되어야 한다"며 "땅의 크기에서 밀리면 머리의 크기로 맞서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제주는 인적자원 양성이 바로 경쟁력이며 최우선 과제라 할 것"이라고 창의적 인재육성을 소리 높힌 바 있다.

그러나 창의적 인재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교육청이 영어공교육에 모든 정책역량을 투자하면서 창의성 개발과 특별활동을 하라고 각 학교에 주어진 재량시간까지도 쪼개고 쪼개서 영어수업시간으로 활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때문에 각 학교에서는 전혀 그런 논의도 없이 정책을 시행해 당황하고 있다. 특히 각 학년 교육과정을 짜는 데 있어서 재량시간을 활용해서 성교육이나 독서교육 등을 집어 넣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어져서 영어공교육 강화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다.

아울러 창의적 교육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영어교육 중심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학교의 예를 통해 현실을 들여다 보자. 창의력 인재 양성에 발벗고 뛰고 있는 애월초등학교의 경우 제주도교육청의 관심 밖이다. 제주시 애월초등학교(교장 김영규) 학생들은 세계 어린이들의 창의력을 겨루는 '세계청소년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대표로 참가한다. 제주도에서는 유일하지만 제주도교육청은 약간의 지원금만 지급해 줄 뿐 이에 따른 인센티브는 전혀 제공해 주지 않고 있다.

이번 세계대회는 학생들이 새로운 문제에 대해 확산적 사고력, 참신한 창의력 및 통찰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해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를 선도할 창의성, 도전성, 협동성, 도덕성, 자신감이 있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제즈도교육청이 연초 내세운 목표와 딱 들어 맞는다. 하지만 외면하고 있다.

특히 애월교는 지난 2006년 8월에 열린 전국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해 지난해 8월에 개최된 세계청소년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한 바 있어 제주에서도 창의력 부분에 노력을 기울이는 학교로 정평이 나 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제주도교육청 차원의 지원은 거의 없이, 학교 교사들의 자발적인 봉사와 학부모와 학생들의 열정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이 대회에 8명의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해의 경우 제주시교육청에서 500만원, 제주도교육청에서 10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1인당 187만5000원의 지원금이 돌아갔지만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값과 체류비를 합치면 400만원~450만원은 족히 들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비용 부담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의 한 학부모는 "한국대표로 뽑혀 세계대회에 참석하는 데 제주도에서는 항공료 정도의 지원만 될 뿐"이라며 "사전에 학교 선생님들과 이런 얘기는 다 됐지만, 애월이 농촌지역이기 때문에 우리 학부모들은 돈 때문에 아이를 세계대회에 못 보낼 것 같다는 걱정도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애월교 김영규 교장은 학교에서 예산이 많지 않아 학부모들에게 지원금을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김 교장은 "참가생이 6명인데 경비를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어서 학부모들이 감당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대회에 가면 보통 10일 체류하는데 400~450만원정도 든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애월교의 수상을 이끄는 데 공이 큰 김인자 교사의 안타까움은 더 하다. 경기도의 학교에서 발명교실을 운영했던 터라 그 노하우로 아이들을 세계대회로 이끌었지만 제주도교육청은 창의성 교육에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

김 교사는 "경기도, 경상도, 서울 등 타 지시도는 발명교육에 대한 관심도 많고, 영재교육 차원 자체가 여러가지 재능있는 아이를 뽑아서 키우는 것인데 제주도는 아직은 영재교육을 영어, 수학, 과학만 잘하는 아이를 뽑고 있다"며 "세계적으로라도 영재 육성을 다기능, 다방면을 육성하는데 제주도는 영재교육이라 이름 붙이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김인자 교사는 "제주도 아이들이 지도를 해보니 창의력 부분에 가능성이 많은데 아직 교육청 쪽에서 관심이 적어서 작년 세계대회가는 비용은 지원은 해줬지 턱없이 부족했다"며 "이런 사업을 학교에서 했을 때 학교 평가 차원에서 많이 했으면 좋겠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

# 영어 잘하는 아이가 '창의적 영재'?

반면 11개 팀이 선발된 경기도교육청은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DI) 한국대표선발대회에 선발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한편, 학교 측에는 우수한 평가를 줘 학교 평가에 반영을 하고 있다.

경상도교육청의 경우, 창의성 교육에 더욱 중점을 두면서 평가에 반영하고 있지만, 제주도교육청의 경우 아직도 창의성 교육은 먼나라 이야기다.

김인자 교사는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발명교육이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어서, 초등학교 때부터 창의적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 중학교에만 있고, 그것도 발명 영재로 뽑아야 하는 데 영어나 수학, 과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고 있어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창의적 영재를 뽑을 때 과목 공부는 못할지라도 창의성 부분 등 다양한 방면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 지구력과 도전정신을 중점적으로 가르치지만 제주의 경우 아직까지도 지식 위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김 교사는 "학부모들도 반응이 좋고,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지만, 제주도교육청의 창의력 교육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다.

오히려 제주도교육청은 창의성 개발과 특별활동 시간을 영어수업시간으로 활용하는 것과 관련해서,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수업은 '영어놀이체험학습'이기 때문에 창의적 활동와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 "영어 못하면 우리 아이 뒤처지는 데 어떡하나"

때문에 제주도의 경우 창의성 교육은 생각할 틈도 없이, 학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에 목맬 수밖에 없다.

제주도교육청이 영어공교육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 학부모들은 벌써부터 사교육비 부담을 걱정하고 있다. 애초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영어공교육이 추진됐지만 오히려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회화 학원이 반색하면서 일어나, 회화 학원은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들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를 영어회화 학원에 보낸 한 학부모는 "아이 선생님이 집에서 아이에게 영어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며 "아이의 발음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침으로써 아이의 영어 발음을 원이민과 비슷하게 하고, 영어를 모국어만큼이나 익숙하게 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은 전문가들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권오량 교수는 "학부모 중에서 내 자식이 학급에서 다른 아이보다 떨어지지 말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한 학부모 입장에서는 공교육 말고 사교육을 하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사교육과 공교육을 흑백논리로 볼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사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거기에 맞춰서 변신해야 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영어공교육을 강화해도 사교육이 크게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병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시 초등서부지회장은 "교육의 결과를 목적에 따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영어중심으로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학교 교육을 궁지로 몰아가고, 결국 사교육 형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진 지회장은 "영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해야 한다는 것은 잘 못 됐다"며 "기업체에서 영어를 잘하면 뽑아가고, 영어 못하면 제외시키는 방향 자체가 이미 잘못됐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 제주 영어공교육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이번 영어공교육 취재를 하면서 한 교수가 "우리나라의 영어교육형태는 마치 영어 사대주의에 빠진 것 같다"고 지적했던 말이 생각난다.

언어라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갑작스런 변화가 있을 때는 그 사회의 문화 자체가 혼돈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멀게는 중화주의와 가깝게는 일제강점기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대입이 아닐 것이라고 본다.

영어, 물론 중요하다. 국제사회에 있어서 영어는 한 국가의 언어이기 보다 '세계어'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가 많으며, 영어를 쓴다 하더라도 그것이 꼭 '미국식', '영국식' 영어일 필요가 없다. 발음에 급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미국의 비지니스맨들이 왜 일본식 영어를 배우는 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오륀지'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이경숙 전 인수위원장을 떠올려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도 영어공교육 강화정책을 내세우면서 '몰입교육'을 제시한 바 있지만 여론의 반발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새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정부의 영어정책에 발맞춰 온 제주도교육청은 어떤가. 아직도 영어공교육 강화를 밀어붙이기며 감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1, 2학년 부터 영어를 교육시켜 영어에 친숙해지고 발음교정도 하자는 취지다.

'글로벌 인재양성'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웠지만 과연 영어만 잘한다고 '글로벌 인재'가 될까? 영어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아이의 능력을 잘 발굴해서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냐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교육청도 '창의적 인재'를 키우겠다고 소리 높혔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창의적 인재 양성은 뒷전이고, "우선 영어를 잘 하라"는 제주도교육청의 교육 지침은 교사들의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인지를 가릴 필요가 있다. 제주도교육청은 옳은 길이 있다면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모든 제주도민에게 설득할 만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를 해야 한다.

어떤 논의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술렁 지나간 것을 갖고, 논의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누구의 이해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좀더 차분하게 논의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사회가 되길 바란다. <끝>

*이것으로 제주도 영어공교육 강화정책에 대한 기획을 마칩니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디어제주>

<양호근 기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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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대회참가학생 2008-04-12 11:07:02
경기도교육청에서 지원을 해주기는ㅡㅡ...187만5000원만해도 얼마야...
말만풍성한 경기도교육청..정말 미국갈때는 187만5000원이라도, 항공료라도 주실껀가요^^?
우리팀은 400만원~450만원의 모.든.경.비.를.각.자.부.담.해.서 가는데ㅋ
그래도 제주도는 경기도보다 낫네요~

DI대회참가 2008-04-12 01:49:00
경기도교육청에서 지원을 해주기는ㅡㅡ...187만5000원만해도 얼마야...
말만풍성한 경기도교육청..정말 미국갈때는 187만5000원이라도 주실껀가요^^?
우리팀은 400만원~450만원의 모.든.경.비.를.각.자.부.담.해.서 가는데ㅋ
그래도 제주도는 경기도보다 낫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