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3-06-01 16:55 (목)
태영호 "제주4.3, 김일성의 만행" ... 다시 고개 든 4.3 흔들기
태영호 "제주4.3, 김일성의 만행" ... 다시 고개 든 4.3 흔들기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2.13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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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4.3평화공원 찾아 "김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도 "4.3 장본인은 김일성 정권"
극우단체와 같은 주장 ... 정부의 4.3정의와도 다른 시각 보여
'화해와 상생' 강조해온 제주도내 움직임과도 다른 모습
지난해 4월 2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희생자 가족을 찾은 유족들이 각명비 앞에 두고 간 국화꽃이 놓여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자료사진
지난해 4월 2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희생자 가족을 찾은 유족들이 각명비 앞에 두고 간 국화꽃이 놓여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자료사진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국민의힘에서 현재 “제주4.3이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극우 보수 단체에서 제기하는 주장이 국민의힘에서 언급된 것이다. 이 때문에 4.3을 이념적으로 바라보면서 4.3 흔들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태영호 의원(국민의힘, 서울 강남갑)은 13일 정당대회 첫 일정지인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4.3평화공원을 찾아 “4.3은 명백히 김씨 일가(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며 “김씨 정권에 몸담다 귀순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희생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이 자리에서 “다시금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됐다”며 “이 같은 비극이 없도록 자유 통일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몸숨을 걸겠다”고 덧붙였다.

태 의원은 이외에도 이날 합동연설회에서도 “제주4.3의 장본인은 김일성 정권”이라고 발언했다.

태 의원의 이와 같은 발언은 제주4.3특별법에 규정된 4.3에 대한 정의와 다른 시각이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는 제주4.3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서는 1947년 3월1일 기념행사 중 경찰 기마대에 의해 촉발된 소요사태 속에서 경찰의 발포에 의해 민간인이 숨지면서 4.3이 시작됐다는 시각을 담고 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 피해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4.3특별법 역시 국가 공권력의 책임을 인정, 최근에는 국가 보상까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태 의원은 4.3의 원인을 국가 공권력이 아닌 북한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제주도내 극우 단체의 시각과 일치한다. 실제로 제주도내 일부 보수단체는 제주4.3의 원인을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울러 현재의 4.3 정의에 대해 “공권력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저항으로 제주 역사를 왜곡시키는 것”이라는 비판도 해왔다.

이와 같은 보수단체에서는 제주4.3의 시작을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의 경찰지서 습격으로 잡고 있다. 이는 오래 묵은 ‘4.3 흔들기’이기도 하다.

태영호 의원(국민의힘, 서울 강남갑)이 13일 오후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유튜브 갈무리.
태영호 의원(국민의힘, 서울 강남갑)이 13일 오후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유튜브 갈무리.

그렇지만 제주도내에서는 4.3에 대해 이념을 초월한 화해와 상생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분위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제주4.3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에서는 사법부가 70여년 전 있었던 군법재판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2019년 1월 4.3생존수형인들에 대한 첫 재심 선고공판에서는 검사 측은 최종 의견 진술을 통해 “사료를 찾아가는 동안 전에 몰랐던 4.3의 역사적 의미와 도민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지금까지 알고 배웠던 것과는 또 다른 진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4.3과 관련해 여러 이념적 논란을 떠나, 예기치 않게 운명을 달리 한 수많은 제주도민들과 그들을 말없이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아온 가족들의 아픔이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버텨낸 모든 분들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기원한다”며 사실상 70여년 전 사법부의 잘못을 사과했다.

이보다 앞서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시각에 갇혀 있던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함께 ‘화해와 상생’을 외치기도 했다.

4.3을 두고 이념을 떠나 ‘화해와 상생’의 가치로 바라보는 시각은 애월읍 영모원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모원은 4.3희생자는 물론 당시 군·경 희생자를 한 곳에 모셔 위령제를 지내는 곳이다.

이 영모원의 비석에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운다”며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이제야 비로소 지극한 슬픔의 땅에 지극한 눈물로 지극한 화해의 말을 세긴다. 그러니 이 돌 앞에서는 더 이상 원도 한도 말하지 말자”고 적혀 있다. 4.3을 ‘화해와 상생’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대표적인 문구다.

제주도정 역시 4.3을 이념적 논쟁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상생’의 상징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다시 한 번 태 의원을 통해 이념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수 있는 소지가 있는 발언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이념 논쟁을 통한 4.3 흔들기 비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화해와 상생을 강조해온 4.3의 정신을 퇴색시킬 수도 있는 발언으로 비춰질 수도 있어 더욱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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