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힘든 생각 할 겨를도 없어요"
절망의 땅에서 일구는 '희망'
"힘든 생각 할 겨를도 없어요"
절망의 땅에서 일구는 '희망'
  • 한애리 기자
  • 승인 2007.09.19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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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제주시 용담동 한천교 수해복구 작업 '한창'
"힘드냐구요?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어요."
"흙 묻은 옷이야 빨아서도 깨끗해지지 않으면 집에서 잠옷으로 입죠 뭐, 그런데 삶의 터전을 잃은 이분들의 상처는 어떻게 지워요."

19일 오후 수해복구작업이 한창인 제주시 한천교 부근 일명 '도깨비 시장' 일대는 16일의 악몽을 그대로 상기시킨다.

어디서부터 쓸려왔는지 모를 진흙이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고 도깨비 시장에 차곡히 쌓여있던 농산물과 인근 마트와 슈퍼마켓에서 흘러나온 과자봉지와 부식들도 진흙에 뒤범벅된 상태로 수북히 쌓였다.

포클레인이 동원돼 진흙과 온갖 가재도구 등을 치워보지만 치우면 또 쌓이고 또 쌓이고 '빈 독에 물 붓기'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풍피해민들을 위해 지역주민들과 제주도내 대학생, 해병대가 하나로 뭉쳐 피해주민들의 재기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 해병대 장병, 대학생 100여명 한천교 일대 수해복구 지원

"힘 안듭니다. 괜찮습니다!"

얼굴은 진흙투성이가 되고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송 맺혀있는데도 불구하며 우렁차게 대답하는 해병대 장병들의 말 한마디에 피해민들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삽을 쥐어 든 해병대 장병들은 길가에 덮인 진흙을 퍼서 한 곳에 모으고, 들것에 진흙과 뒤범벅이 된 가재도구며 쓰레기를 퍼나르는 반복작업을 하면서도 표정만은 밝다.

해병대 관계자는 "많은 수해지역을 다녔지만 이렇게 심한 수해피해지역은 처음인 것 같다"면서 "농경지만 수해에 뒤집어지는 줄 알았지 이렇게 다리와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고 침수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사질 제주지역에는 해병대 선배들이 많기 때문에 제주는 우리 해병대 한 가족이라는 생각에서 전남지역도 있지만 제주에서 수해복구작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주시 용담2동 한천교 인근 수해복구작업 현장에는 공무원을 비롯해 해병대 장병 300여명, 제주대학교와 제주관광대학 학생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 "남의 일 아닌 우리 선배, 우리 이웃 일인걸요~"


학과 친구들 6명과 17일부터 3일째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는 이한솔씨(24.제주대 관광개발학과)는 "학과 선배 집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친구들과 도와주러 왔다"면서 "매스컴을 통해서 보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혀를 찼다.

이씨는 "그래도 저희들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며 "다른 학생들도 수해복구에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명표씨(27.제주대 관광개발학과)는 "재해라는 것이 나한테는 오지 않는 건 줄만 알았는데 막상 우리집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늘이 노랗고 멍하니 할 말이 없었다"며 "그래도 이렇게 후배들이 도와주고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며 연신 후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앉아서 지켜만 보기에는 너무 아파요"

삼삼오오 모여 음료수를 마시며 숨을 고르고 있던 학생들은 제주관광대학 학생들이었다.

"제주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랐구요. 막상 현장에 와보니까 장난이 아니에요. 피해민들이 너무 절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막상 현장을 보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김기환씨(23.제주관광대 메카트로닉스과)는 "혈기왕성한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 너스레를 떨며 "조금이나마 힘이 될까해서 학과 선후배 10명이 함께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일회용 우비를 입고 복구작업을 하는 김종미씨는 "고향은 마산인데 제주에서 대학을 다닌다"며 "이제 제주는 마산에 이어 제2의 고향인데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자원봉사를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관광대 윤준호씨(38)는 "어제(18일) 피해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그냥 앉아서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면서 "제주관광대와 제주관광대 총학생회 차원에서 지원을 좀 해야겠다 싶어서 오늘 학생 70~80명이 복구작업에 나섰다"고 소개했다.

윤씨는 "와서 보니까 진짜 말이 다 안나온다"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고 추석이 내일 모렌데 이분들 어떻게 추석을 나나 걱정이 먼저 된다"며 피해주민들을 걱정했다.

처참한 상황을 불러온 행정당국의 정책이나 기상청의 뒤늦은 예보에 원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 "막아놓은 숨통 트지 않으면 우리 아들, 딸세대 또 겪을 일"

지역주민이라는 고영건씨(50.제주시 용담1동)는 한천교 일대를 가르키며 "일명 여기가 '소내기동산'이었다"며 "한천을 매립시켜서 숨통을 막아놓았으니 이런 일이 안생기고 버티냐"며 원성의 목소리를 냈다.

고씨는 "요즘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다 뭐다 얘기하지만 이건 인재"라며 "제주도는 내륙인 육지부와는 달리 어디든 하천이 있고 바다가 있기 때문에 이런 물난리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노모한테도 물어봤지만 사하라 태풍 때도 이만큼은 아니었고 지금껏 이런 일이 없었다"며 "계속해서 하천의 숨통을 막아놓으면 우리 아들, 딸 세대에 또 이런 재해가 생긴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활동을 나온 용담1동 연합청년회 김성철씨(40)도 "태어나서 이런 재해는 처음 본다"며 "하늘의 뜻인지 모르지만 기상청의 일기예보에도 화가 난다"며 빗나간 기상청의 예보를 지적했다.

그는 "그나마 낮에 일이 터졌으니 망정이니 밤에 하천이 넘쳤다고 생각해보라"며 "자다가 대피하지 못한 지역주민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지 모른다"며 아찔한 상상에 대해 얘기했다.

많은 손길이 피해민들을 걱정해주고 염려하는 덕에 도깨비 시장 상인들과 한천교 부근 주민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재기를 다짐해 본다.

# "염려해주는 이웃들 때문이라도 힘내야죠"

정길순씨는 흙먼지 때문에 설상가상 눈병까지 났지만 도움의 손길에 다시 용기를 내 본다고 말했다.

"20년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한 숨만 쉴 뿐 의욕도 안생기지만 그래도 우리를 걱정해주는 이웃들과 자식같은 이 젊은이들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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