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신구간, 미신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신구간, 미신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 조승원 기자
  • 승인 2010.01.25 18: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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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간 연구자 윤용택 교수가 말하는 '신구간'

흔히들 '신구간 한파'라는 말을 쓴다.

신구간 첫 날인 오늘(25일), 역시나 날씨가 급변해 사람들의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했다.

대한(大寒) 후 5일부터 입춘(立春)전 3일까지, 양력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 8일간을 '신구간(新舊間)'이라고 부른다.

왜 신구간이라 부르는지, 왜 신구간만 되면 추워지는지. 제주의 것이지만 제주 사람들도 잘 모르는 신구간을 알아보기 위해 <제주도 신구간 풍속 연구>(2008)의 저자인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 신구간은 1만8000위 신들의 인사이동기간

윤용택 교수는 지금 신구간의 뿌리를 조선 후기 관청과 민관에서 널리 사용됐던 도참서인 <천기대요>와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서 찾고있다.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2일까지 구세관과 신세관이 교체된다.'

구세관과 신세관은 각각 옛 신과 새 신을 뜻한다.

제주는 옛부터 1만8000위의 신이 사는 신들의 고향이라 불렸다. 제주 사람들은 돌, 바다, 나무 하다못해 화장실과 부엌에도 신이 있다고 믿었다.

옛부터 제주는 가뭄이 자주 나는 한재, 태풍으로 인한 바람 피해인 풍재, 많은 비로 인한 수재 등 삼재에 시달렸다.

알 수 없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시련에 사람들은 의지할 절대자를 찾게 되고 1만8000위나 되는 신을 섬기게 된다.

구세관과 신세관이 교체된다는 말은 제주에 있는 1만8000위의 신이 하늘로 올라가 '임무교대'를 한다는 뜻으로 이 기간에는 제주에 신이 아무도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즉 이 기간동안의 제주 사람들은 신들의 구속없이, 신들 눈치보지 않고 그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들이 땅에 머무는 기간에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동티 난다'는 말을 쓰곤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액운이 붙는다' 정도로 볼 수 있는 이 말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동티가 나면 사람들이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결국에는 목숨마저 잃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이 이유를 신의 분노로 여겨 '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집안의 가구를 옮긴다든가 집을 새로 짓는다든가 하는 것들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의 땅에 신이 없는 신구간을 골라 이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 제주에는 겨울이 없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동티'의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고 주장하는 윤용택 교수는 우선 계절을 분류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일평균 기온이 5~20℃ 이면 봄.가을, 20℃ 이상이면 여름, 5℃ 미만이면 겨울이라는 것.

그는 이와 같은 계절 분류를 가지고 지난 1971년부터 2000년까지 신구간동안 우리나라의 위, 중간, 아래인 서울, 광주, 제주의 기온을 분석했다.

분석결과, 제주에는 일평균 기온 5℃ 이하인 날이 한 해 8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지금 우리가 부르는 신구간과 거의 일치하는 8일.

여기서 윤 교수는 "기온이 5도씨 밑으로 내려가면 세균들이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5도씨 이상이면 세균이 활개를 펴 사람들을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게 하고 결국에는 목숨까지 앗아가죠"라며 동티의 정체를 찾아냈다고 했다.

그는 제주 사람들이 <천기대요>나 <산림경제>를 읽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구간의 구체적인 날짜를 결정하는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옛 사람들이 겨울에 이사하면서 동티가 나지 않고 무사히 이사를 마쳤던 경험과 지혜가 후세에 전해지면서 신구간이 자리잡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옛 사람들에게 신구간은 '미신'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꽤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육지 사람들은 <천기대요>나 <산림경제>를 접하지 않았을까? 육지는 제주보다 위의 서책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좋았을텐데 왜 제주에만 신구간이 있을까?

그는 그 이유를 제주의 독특한 풍습과 환경적 영향에서 찾고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유난히 섬기는 신이 많고, 세균의 활동이 뜸한 5℃ 미만의 날씨가 드문 곳이 바로 제주라는 것이다.

# 신구간, 더이상 신들의 인사철 아닌 '대목'

"그럼 의학이 발달해 동티날 염려도 없고, 신을 섬기는 의식도 많이 줄어든 현대에도 왜 신구간이 남아있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신구간 특수'에서 찾고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신구간만 되면 각 대형마트는 물론 가구소매점 등은 손님 끌기에 혈안이 되곤 한다.

사람들이 이사하면서 새 것으로 새 집을 채우고 싶어하기 때문에 신구간 특수가 생겼다는 것.

그는 또 주택의 '임대차계약'을 이유로 제시했다. 보통 임대차계약을 하면 신구간부터 신구간까지를 계약기간으로 잡는다.

계약을 변경해 신구간이 아닌 다른 기간에 집을 빼도 되지만 그에 따르는 손해를 입기 싫어하는 경제적인 이유가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신구간이 아닌 다른 기간에 이사해서 혹시나 무슨 일이 나면 어쩌지?'하는 우려와 오래 전부터 내려온 미풍양속이라는 점도 오늘날 신구간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라고 했다.

#신구간, 이렇게 활용하자

"잊혀져가고 힘겹게 존재하고 있는 신구간이지만 아직 다방면에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 첫째로 '신구간 축제화'입니다."

신구간은 단순 이사철이 아닌 재충전과 새 봄 맞이 기간이라고 밝힌 그는 관광 비수기인 신구간을 축제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절기상 대한에서 입춘까지인 신구간은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기간입니다. 신에게서의 해방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스트레스 등 정신적,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기간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유일의 '신 해방기간'인 셈이죠."

두번째로 그는 신구간을 '재활용기간, 교환장터'로 삼자고 했다.

신구간에 많이 쏟아져 나오는 생활 쓰레기중 쓸 수 있는 것을 활용하는 기간으로 삼아 자원도 절약하고 환경도 보호하자는 방안이다.

제주의 것이지만 잊혀져가는 신구간. 이를 본 신들이 "이제는 인간들이 자기네 눈치도 안보고 사는구나"하며 동티를 내면 어쩌나. <미디어제주>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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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령은 사람이 아님 2010-01-26 10:15:41
한자로 정도령(正道靈)은 바른 길로 이끄는 영입니다.
정도령은 바를 정(正)자를 쓰고 있는데 정동영과 정주영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정(鄭)씨라서 정도령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수백명이상이 된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