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7:02 (일)
장례식장의 혐오시설 논란, 그리고 '행복추구권'
장례식장의 혐오시설 논란, 그리고 '행복추구권'
  • 윤철수 기자
  • 승인 2010.01.20 17: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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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법원의 '장례식장' 행정소송 판결에 즈음해

1.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사후명복을 기원하는 시설인 '장례식장'은 혐오시설일까, 아닐까.

장례식장을 통한 장사문화가 일반화된 요즘, 대뜸 '혐오시설'이라고 항변할 이는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시설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제주지법 행정부도 20일 이와 유사한 장례식장 시설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주식회사 G사가 제주시 연북로 옛 삼무 건물 자리에 장례식장을 짓겠다며 용도변경신고를 했는데, 제주시가 이를 불허하자 불허가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초 이 건물은 처음 농수산물직판장으로 사용받은 곳이다. 2007년 9월 사업허가를 받고 건물이 신축돼 문화행사와 식당, 농수산물직판장 등이 운영되다 1년후인 2008년 7월 운동시설(빙상장)과 농수산물직판장 등으로 용도변경된다. 그리고 지난해 8월 현 사업자가 장례식장으로 용도변경을 하겠다며 용도변경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건물이 처음 들어선 후 1년마다 용도변경이 이뤄지다 급기야 장례식장으로의 변경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사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용도변경신고를 불허가한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는 판결이다. 법원의 판결 요지는 크게 5가지로 요약된다.

그 중에서도 장례식장은 혐오시설이나 기피시설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점이 눈에 띈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사후명복을 기원하는 시설인 장례식장을 혐오시설이나 기피시설로 볼 수 없고, 오히려 선진 장례문화이 정착을 위하여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제주시가 불허처분의 이유로 들었던 연북로 일대가 인근 주민의 산책코스, 운동선수들의 전지훈련장으로 이용되고 있어 불특정 다수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이도2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와 750m 정도 떨어져 있고, 제주여고와 중앙여고, 한라도서관 등과도 1km 이상 떨어져 있어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번 용도변경 신청 대상 부지와 입지조건이 비슷한 곳에 이미 다른 장례식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판결은 한마디로 장례식장은 혐오시설이나 기피시설이 아니며, 용도변경을 하고자 하는 곳 주변에 인구밀집지역이나 학교, 도서관 등과 가깝지 않으므로 이를 불허할 이유가 없다는 판시다.

법리적으로만 보면, 또한 현재의 예정 입지와 주변환경만을 고려한다면 법원의 판결은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그러나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장례식장을 법리적으로 혐오시설이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서상으로는 혐오시설이 명백하다고 주장한다.  결코 달갑지 않은 시설이기에 학교주변이나 인구밀집지역과 떨어져 시설해야 한다는 규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론한다.

이들의 주장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 논란으로 이어진다.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고통이 없는 상태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권리라 할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용도변경신청까지 허가할 경우 연북로 지점에만 2개의 장례식장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 장례식장으로 인해 앞으로 주변 토지이용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질 수 밖에 없고,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시민권리가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 역시 일리는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그린벨트지역으로 묶여있다가 해제된 후 개설된 연북로는 아직까지 상업시설 등이 그다지 들어서지 않고 주변이 쾌적한 산림환경이 잘 조성돼 있어 사이클이나 경보 등 겨울철 전지훈련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 느닷없이 장례식장이 하나도 아니고 2개가 줄줄이 들어선다면, 해당 지점의 부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토지에까지 영향은 갈 수밖에 없다.

3.

장례식장이 있는데, 그 옆 토지에 엔터테인먼트 시설이나 결혼예식장을 시설한다는 것은 부조화 중의 부조화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이미 그런 사례가 있다. 결혼식장이 운영되는 건물의 가까운 곳에 장례식장이 허가나자, 결국 결혼식장 건물도 장례식장으로 용도 변경한 사례가 그것이다.

인근 토지주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이제 도시계획구역내 개발행위 제한이 한층 완화될 무렵에, 장례식장이 잇따라 2개나 생겼으니 말이다.

토지주가 아니더라도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쾌적한 산책로로 이용될 수 있는 곳에 장례식장이 들어서면 지역 이미지나 정서상 좋지 않은 영향을 우려한다.

법적 판단에 있어, 아무리 혐오시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서상은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문제의 부지 주변에 주택가나 또다른 시설 건축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토지이용을 하는 과정에서 건축물이 들어설 개연성은 매우 크다.

물론 역시 장례식장 그 자체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동동선에서 이격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는 시민들의 욕망은 지나친 것일까. 과연 헌법적 권리인 '행복추구권'은 어디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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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2 2010-01-25 23:19:43
대표기자님만이 쓸수있는기사.
잘읽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