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갈등조정협의회 설치의 공론화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비롯해 영리병원 문제 등 단 하루도 고요할 날이 없는 숨가쁜 논쟁의 전개. 제주사회는 논란과 갈등의 연속이다. 물론 제주사회에서만 유독 갈등의 형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정에서도 이러한 갈등양상은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법과 세종시문제 등등.
지역현안과 쟁점을 갖고 있는 지자체 어느 곳 할 것 없이 갈등은 당연한 사회현상으로 분출된다.
문제는 이 갈등을 어떻게 사회 역동성 측면에서 발전적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데 있다. 의도적으로 회피하려 하거나, 사회의 부정적 요소로만 바라봐서는 좋은 결실을 기대하기 어렵다.
갈등을 풀어나가는 속에서 '소통구조'는 더욱 확대되고, '정반합(正反合)'의 논쟁과 평가를 통해 보다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다음 고민은 그럼 누가 갈등을 풀어나가는 주체로 나서야 하는가로 봉착하게 된다.
갈등문제 해결을 주도할 주체의 문제는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논의를 진전시켜 보면 이 역시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민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잘 수렴하고 전체적인 논의의 중심에서 해법을 고민해야 할 중심적 기구를 떠올린다면 당연 도의회가 돼야 하겠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것과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에는 '제3의 기구'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전북의 '갈등조정협의회'는?
|
그러한 맥락에서 요즘 떠오르는 화두가 바로 '갈등조정협의회'다. 이미 전라북도가 지난 2007년 이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전북이 조례를 통해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한 것은 당시 지역현안에 대한 갈등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방폐장 문제를 비롯해 익산 KTX 정차역 선정, 혁신도시 갈등, 35사단 이전사업, 왕궁특수지역 이전사업, 국립대 통합문제 등으로 연일 시끌벅절했다.
지역 언론사 사장 모임이나 전북애향운동본부 등에서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했고, 급기야 전북지역 자치단체장들의 합의 하에 이 갈등조정협의회 구성을 합의한 것이다.
지역 이기주의 등 지역갈등의 폐단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다. 국책사업이나 지역사업 추진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치단체간, 주민간, 민관간 갈등이 발전적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지역발전과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2007년 제정해 공포된 '전라북도 갈등조정협의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살펴보면 크게 목적, 정의, 갈등예방 및 조정원칙, 적용대상, 기능, 구성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북지역내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예방과 평화적 해결로 사회통합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갈등조정협의회는 15명 이내로 구성하고, 위원 임기는 2년으로 하고 있다.
협의회의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의회에 상정된 의안을 검토하고 협의회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의 처리 등을 위해 협의회 위원 5명을 포함해 15명으로 별도의 전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또 사무처를 설치해 사무처장 1명과 약간의 직원의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협의회의 기능으로는 △전라북도에 영향을 미치는 국책사업 및 중앙정부 사업의 갈등영향분석에 관한 사항 △갈등 사항에 관한 조사.분석 등 정보제공에 관한 사항 △갈등의 예방과 조정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운영 및 홍보에 관한 사항 △토론 등 공론의 장 마련을 위한 사항 △그 밖에 갈등의 예방 및 조정에 관하여 협의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항 등을 명시하고 있다.
또 협의회가 나서야 할 갈등문제의 유형은 △자치단체간 갈등이 예견된 사항 또는 갈등사항 중 중대한 사항 △자치단체와 주민 또는 기타 기관.단체간 갈등이 예견된 사항이거나, 갈등이 발생해서 지역경제에 손실이 크거나 지역화합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사항으로 그 범주를 적시하고 있다.
'갈등예방 및 조정원칙' 규정도 두고 있는데, 갈등의 당사자는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자율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협의회는 이해관계인이나 도민, 전문가 등의 실질적 참여를 유도해 신뢰확보가 보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협의회가 의안상정을 통해 '조정합의문'을 채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정합의문의 의안상정은 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청으로 협의회 의장이 발의한 경우,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해당지역 시장.군수의 요청으로 도지사와 협의가 이뤄진 경우 등이다.
의결된 조정합의문은 이해당사자에게 이행을 권고할 수 있고, 조정권고를 수용한 자치단체에 대해 의장이 재정지원 등을 요청하면 도지사는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명시하고 있다.
다만, 조정합의문의 내용은 법령 등에 위배되거나 중대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함께 조례에서는 협의회와 전문위원회가 갈등사항 등의 조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해관계인을 출석케 해 의견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하는 청문 및 자료요구에 관한 사항도 담고 있다.
도지사에게 자료제공 등을 요청할 수 있고, 이 경우 도지사는 협조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는 규정도 포함돼 있다.
▲만약 제주 상황에서 검토한다면?
그런데, 이러한 전북의 갈등조정협의회의 운영내용을 제주에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전북 지역 조례의 경우 위원 위촉이나 각 조항에 있어 '도의회 역할'이 배제돼 있는 부분은 좀더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조정합의문 의안상정 규정에 있어서도 협의회 의장 뿐만 아니라 도지사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반면, 도의회는 이의 권한에서도 배제돼 있다.
이러한 규정에 대해 정확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경우 자칫 협의회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위협받을 소지가 크다.
채택된 조정합의문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구속력'에 관한 검토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민주당 제주도당 정책토론회에서 갈등문제와 관련해 주제발표를 했던 양길현 교수(제주대)도 이 갈등조정위원회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그러나 그 역시 '독립성' 확보를 최대 과제로 바라봤다.
지자체로부터 독립해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구성도 지자체와 도의회, 시민사회단체, 학계, 법조계, 언론계, 여성 등 다양한 부문에서 대표적으로 1인씩만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갈등조정안을 제시함에 있어서 폭넓은 의견청취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양 교수는 "제주도의회가 직접 갈등조정위원회에 예산을 배정하고 감시.감독하는 것과 별개로 사무직원의 경우는 대학과 계약을 맺어서 대학 직원이 파견돼 일하는 형태로 한다면, 그 만큼 사무직원의 중립성 및 공정성이 강화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물론 반드시 대학과 연계됐다고 해서 중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위원을 구성함에 있어 이해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 혹은 지역문제 해결에 적극적 의지를 갖고 있거나 전문성을 갖고 있는 인사를 위촉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지난해 구성된 사회협약위원회가 제대로운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질적인 활동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안된 것도 문제이지만, 위원들 중 일부가 제주도당국에서 '인맥'을 통해 인선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불신을 사고 있는 점도 있다.
제주도민화합추진위원회 역시 '관 주도'로 구성돼 운영됐기에 도민들에게 큰 신뢰감을 받지 못했던 전례가 있다. 명망가 중심의 모임 성격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사들이 고루 인선돼야 협의회 운영은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갈등조정협의회 구성문제를 공론화한다면 위원 구성의 원칙과 기준을 어떻게 마련하는냐 하는 문제는 가장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북지역의 갈등조정협의회 사례를 살펴보면서 간과된 부분이 있다면, 갈등조정협의회가 운영된지 2년이 지나고 있는데, 전북지역 주민들로부터 이 갈등조정협의회가 과연 호응을 받고 있고, 또 갈등문제 해결에 가시적 성과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방폐장 부지가 경주로 결정됐지만, 전북지역에서는 여전히 이의 후유증으로 많은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35사단 이전문제 역시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점에서 성과가 있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한 의원은 만약 이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한다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서둘러 구성해 '덕'을 보려 한다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갈등조정협의회로 하여금 당장 코앞에 닥친 '해군기지 3대의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지속적인 관점에서 사안을 다루고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구 하나 만들었다고 해서, 갈등문제가 속시원히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것도 어쩌면 우둔함일런지 모르지만,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민사회 전체적인 총의와 '중지'를 모아내는 중심적 역할을 할 주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절박한 현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갈등조정협의회 구성문제는 다각도로 검토해볼 만한 사안이다. <미디어제주>
[창간 5주년 특집 - 제주의 오늘 ; '소통', 그리고 '통합'] 연재순서 <1> 갈등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 |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