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이 놈의 하르방, 그냥 있어만 달라고 했는데..."
"이 놈의 하르방, 그냥 있어만 달라고 했는데..."
  • 좌보람 기자
  • 승인 2009.07.17 08:41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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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82세 변복선 할머니의 '하르방 사랑'

"하르방, 똥오줌 못 가려도 좋으난, 내가 다 할테니까 내 옆이서 말벗만이라도 해줘. 응?"

7년전 병원 중환자실. 53년을 함께한 남편의 손을 잡고 한 할머니가 애타게 말한다. "여든까지만, 살아줘. 아니 1년만이라도..." 하지만, 그 간절했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시 한경면에 홀로 사는 82세의 변복선 할머니. 그는 그렇게  당시 77세였던 남편을 떠나 보냈다. 그 후로 7년이 지난 지금. 할머니는 먼저 보낸 할아버지 생각에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단 하루도.

변 할머니의 '각별한 하르방 사랑'은 남편을 떠나보낸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마을 내에서는 이미 알만큼 알려진 이야기다.

"누워자도 이놈의 하르방, 일을 해도 이놈의 하르방 생각에 내가 눈물이 매일 나지."

"10년도 더 살 하르방. 곱디 고운 우리 하르방. 밖에 나가서 다른 하르방들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것만 봐도 마음이 찢어져."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전부였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 한글은 물론 한문까지 다 배운 할아버지는 뭐든지 다 알고, 다 고치는 해결사나 다름 없었다. 

"우리 하르방은 못 고치는 게 없었어. 수도가 고장나도 텔레비전이 고장나도. 웃으겟 소리도 잘하고 똑똑한 우리 하르방. 아무도 몰라, 자식들도 손주들도 몰라. 하르방이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

"나 눈이 어둡다고 손톱 발톱도 다 깍아주고, 그런 남편이 어딨겠어."

50년을, 어려운 시절 같이 겪으면서 울때도 웃을때도 함께 했던 두 사람. 분명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미울 때도 있었다. 원망하기도 하고.

특히 젊은 시절에는 불 같은 성격의 할아버지 때문에 할머니는 맘 고생도 많이 했다. 할머니는 "욕도 많이 했지, 좀 더 세월이 지나서는 싸우기도 많이 했고, 그런 것들이야 다 순간 화나서 그랬으니까. 이젠 생각도 안나"라고 말한다.

그렇게 30년, 40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고, 여유가 생기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망, 우리할망이 해 준 밥이 최고지."

한 평생 함께 농사일을 했지만,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할아버지는 건강이 안 좋아져 농사일에서 손을 뗐다.

밭에서 일을 하고 온 할머니에게 너무나 미안해, "할망 욕봤어 욕봤어(수고했어), 내가 설거지랑 청소도 다 해 놨어"라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웃으며 반겼다.

가끔은 설거지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뒤에서 앉으면서 "우리할망, 사랑해"라고 하기도...

그리고는 세상을 떠나는 날. 할아버지는 "할망, 이제까지 못해줬던 거 다 미안하고 평생 맛있는 밥 해줘서 고마워"라며,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혼자 남겨진 할망 걱정에 자식들에게 꼭 잘 돌봐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할머니. "그날 같이 죽을까도 생각했어. 지금도 마음이 가장 아픈것은, 이렇게 여유가 생겨 맛있는 것들도 다 먹을 수 있는데. 우리하르방은 이 좋은 세상에, 그 맛난 것들도 다 못 먹고 갔어. 불쌍한 우리하르방." 이것이 할머니가 7년이 지난 지금도 할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이유다.

23.24살의 젊은 남녀가 한 평생을 약속하고, 자식 여섯을 낳고 살다보니 어느덧 자식들이 시집.장가갈 나이가 됐다. 이제 손주들까지 보고, 할머니.할아버지는 둘이 의지하며 한 평생 살아온 얘기하면서 그렇게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작은 소망도 맘처럼 쉽지는 않은가 보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미우나 고우나 함께 한 사람, 할머니는 그 사람이 너무너무 보고싶어 오늘도 눈물이 난다.

"난 못잊어 우리 하르방. 죽어도 못 잊어..."

2년전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연재만화가 모든 독자들의 눈물과 콧물을 쏙 빼놓았던 적이 있다. 그 만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슴 아프지만 따뜻한 사랑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이다. 특별하지도, 멋있지도 않은 사랑이야기였지만, 결코 작지 않은.

그러한 사랑이야기는 늘상 만화속, 드라마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사연이다. 한 평생을 지지고 볶고 살고 있는 부부들에게는 더구나 그렇다. 이번에 소개한 변복선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의 할머니의 이야기인 것 처럼.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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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2009-07-21 23:28:51
아내에게 미안하네요

도민 2009-07-19 23:18:41
이렇게 더운 날씨, 잠 안오는데 너무 좋다.....완죤히...

한림바보 2009-07-18 08:53:13
할머니 힘내세요~
할머니 처럼 이렇게 기억해주고 가슴아파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깐
할아버지 참 행복한 분이네요~

좌보람 기자님 정말 멋지십니다.
그냥 막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같고 그러네요
완젼 화이팅입니다ㅎㅎㅎㅎㅎ

한림바보 2009-07-17 20:03:29
할머니 힘내세요~
할머니 처럼 이렇게 기억해주고 가슴아파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깐
할아버지 참 행복한 분이네요~

좌댕 졸라 멋진게ㅋㅋㅋㅋㅋ
이런데 막 이름쓰면 욕들꺼 같은데 대훈오빠보고 용기얻언~ㅋㅋ
역시 너네 패밀리는 짱이다 ㅋㅋㅋ

그냥 막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같고 그러타~
완젼 화이팅이다ㅎㅎㅎㅎㅎ

김수정 2009-07-17 20:01:20
눈물날꺼 같다...^ㅡ^
할머니 힘내세요~
할머니 처럼 이렇게 기억해주고 가슴아파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깐
할아버지 참 행복한 분이네요~

좌댕 졸라 멋진게ㅋㅋㅋㅋㅋ
이런데 막 이름쓰면 욕들꺼 같은데 대훈오빠보고 용기얻언~ㅋㅋ
역시 너네 패밀리는 짱이다 ㅋㅋㅋ
그냥 막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같고 그러네~~
화이팅하자~~~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