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7:02 (일)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죠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죠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8.04.21 08:1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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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특집]<2>장한장애인대상 임숙자씨

그는 태어날 때부터 농아인 아버지의 유전적인 요소를 받아 장애를 갖게 됐다.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차별을 받았고, 가까운 가족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유년시절을 지나왔다.

"높은 곳에서 놀다가 떨어져서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 그때 장애를 갖게 된 것 같고 아버지의 유전적 요소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가족이라도 나를 좀 더 감싸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어린시절 집안이 가난해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집안문제로 인해 교육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녀는 집안일을 도우며 잠깐 시간을 내서 사촌언니를 통해 문자를 습득하게 됐고, 아버지에게서 수화를 배우게 됐다.

또, 친구가 소개시켜준 수화와 문자를 배워주는 강의에 나가 4개월 동안 배운 게 교육의 전부이다. 그는 지금도 학교에 너무 다니고 싶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교육의 길을 잠깐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너무 다니고 싶어서 가족에게 떼를 써보았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한 탓에 교육은 포기해야만 했어요. 지금도 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그렇게 여유롭게 다닐 시간이 없네요..."


#아이 낳다가 죽을 고비도 넘겨...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게임만...

그는 현재 한 남편의 아내이자 1남 1녀를 둔 어머니이다. 결혼 전 그의 남편은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여수에 살던 그를 계속 쫓아다녀 결혼에 성공했다고 했다. 결혼 후 그는 남편의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 행복한 순간도 잠시, 그는 첫 번째 아이가 유산이 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그는 당시 상황이 생각이 나는 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어요. 너무 이쁜 우리 아기였는데..."

이후, 그는 둘째 아이를 갖게 됐고, 2시간 진통 끝에 딸을 낳았다. 그는 마주앉아있던 첫째 딸을 보며 씨익 웃으며 농담을 내 던졌다. "태어날 때도 몸무게가 많이 나올만큼 우량아(?)였는데, 그래서인지 여전히 우리아이의 등치가 큰 것 같아요."

그는 옆에 앉아있던 아들을 보며 당시 아들이 태어나기까지의 힘들었던 상황을 되새기며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수술을 권유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고 수혈을 6번이나 받는 투혼을 발휘해 어렵게 아이를 낳게 됐다. "우리 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유난히 입덧도 너무 심했고 죽을 것만 같았어요. 다행히 깨어나서 살아났고, 많은 분들이 옆에서 도와줘서 기적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옆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의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자 그는 불만과 장난이 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마음은 아는지,,, 우리아들은 공부는 안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어요."

 

#나를 살게하는 힘은 ‘우리아이들’

아들이 100일 되던 날,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게 됐다. 그는 남편이 일을 못하게 돼 생계를 이끌어가야만 했다. 당시 집 월세와 병원비와 양육비를 내지 못할 만큼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다. 결국 그는 눈물을 머금고 5살 딸과 3살 아들을 고아원으로 잠시 맡겨야만 했다. 

"고아원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마음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적어도 내 아이들을 굶어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니, 당시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보내야만했어요. 아이들은 살아야 되니깐..."

이후, 그는 식당일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주위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집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6년 지나서야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을 다시 데려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과 친해지려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또, 아이들이 사춘기이다 보니, 많이 예민하고 반항도 많이 해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수화통역사를 통해 아이들에게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고아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기도 하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라는 각서도 써봤는데 말을 너무 안 들어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대화를 갖게 되었구요. 그 이후에는 아이들이 이해를 했는지 말도 잘 듣고 속도 안 썩이고 아주 착하게 지금까지 잘 자라주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그는 매일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의 하루 일과에 대해 물어본다. 아이들이 '오늘은 뭘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일상적인 대화이지만 아이들과의 대화를 위해 시작했다. 아이들이 수화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기에 대화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리아이들'이라고 흐뭇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평생 쉬는 날 없이 바쁘게 지내온 것 같아요. 아마 우리 아이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수없었을 거예요. 단지 가난해서 그랬던 걸 우리아이들이 이해해줘서, 나를 따라주는 우리아이들이 자랑스럽고 항상 고마워요"

그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기자와 마무리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조금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비장애인들은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면서 자신들과 언어전달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장애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너를 보여주지 않을 때가 많아요. 이런 차별자체는 당연히 없어져야 하며, 이것만큼은 꼭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의 말을 듣고 문득 예전 텔레비전 광고 하나가 떠올랐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당시 굉장히 많은 생각을 갖게 해준 광고였다. 그에게 그들의 말하는 방법으로 간단한 인사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기자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급하게 인사를 배우고 그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정중히 그들의 언어로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왼손 등에다 오른손을 세워 두세 번 두드리며... '고맙습니다'라고...<미디어제주>

<박소정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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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단 2008-05-18 22:57:02
임숙자씨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ㅠ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 더욱 더 힘내세요!!

주냉이 2008-05-18 20:24:23
정말 대단하십니다.
임숙자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 자신이 참 부끄럽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jejuin 2008-04-23 19:57:03
우연히 텔레비젼을 보다가 장애인의 날 기념식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기자의 멘트가 참 그렇더군요. 장애인의 날을 함께 기쁘게... 뭐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런 의미의 멘트가 나왔습니다. 순간, 장애인에게 장애인의 날이 과연 기쁜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서 쓴웃음만 쏟아지던 순간이였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왜? 무엇때문에? 누가? 어떤 의미를 두려고? 생겼을까?... 사뭇 궁금해지는 요즘이네요.

한마디 2008-04-21 22:08:31
모두들 4월 장애인의날 맞아 의례적으로 다루고 있는데반해 미됴제주의 기획은 돋보입니다.

고무족 2008-04-21 17:42:56
이분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어린시절 집안이 가난해 초등학교를 나오지 못하게 된 것, 남편의 사고로 살붙이를 고아원에 보내야만 했던 것 등을 살펴볼 때, 사회적 신분, 여성, 장애 등 여러가지 요소속에서 침해됐던 인간으로서의 권리 문제를 생각하게 되네요.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제주사회에서 이런 모순들이 늘 주위에 있음에도 제대로 비춰진 적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