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집은 새것으로 바꾼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야”
“집은 새것으로 바꾼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야”
  • 김형훈
  • 승인 2018.11.11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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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정 가실 가게마씨’ 5조, 신촌길 탐방
1920년대 모습 간직한 이기운씨 가옥
“옛 모습 간직한 채 대대로 물려주고파”

‘모다정 모실 가게마씨’ 5조, 신촌길 탐방

'모다정 마실 가게마씨' 프로그램 5팀 참가자들의 모습.

제주의 마을은 역사 그 자체다. 마을 곳곳마다 선조들의 흔적이 숨어있다. 개발되어 옛집이라곤 찾기 어려운 시내라도 돌담의 흔적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주의 과거를 알고, 오늘을 배우며, 내일을 지키기 위해 모인 이들이 있다.

바로 제주국제화센터와 제주마을미디어협동조합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모다정 마실 가게마씨’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다.

제주시의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5개 팀으로 나눠 진행된다. 팀마다 탐방할 마을을 달리하고, 마을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기존 행사들과 차별점을 가진다.

모처럼 제주 마을의 날 것 그대로를 느끼고, 배워볼 수 있는 시간. <미디어제주>에서는 11월 11일, 5팀의 ‘놀멍, 보멍, 들으멍 걷는 신촌길’ 탐방을 함께 나섰다.

5팀의 구성원은 시인, 싱어송라이터 신부, 가이드, 예맨인들 등 다양한 인원으로 꾸려졌다. 덕분에 탐방 장소를 지날 때마다 따라오는 시 낭송, 노래 등 뜻깊은 공연은 즐거운 선물이 됐다.

 

1920년대 모습 간직한 이기운씨 가옥
“옛 모습 간직한 채 대대로 물려주고파”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신촌리 마을은 제주시 동쪽을 넘는 첫 관문의 마을이다.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로 그 역사는 약 700년에서 1000년으로 추정된다.

이날은 신촌리 마을의 90년 역사를 함께한 이기운(73)씨 가옥을 방문했다. 집이 지어진 1920년대 후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오늘날 삶의 양식도 함께 담긴 역사의 장이다.

집 마당으로 들어서기 전, 입구를 지키는 것은 다소 허름한 나무 대문이다. 오래되어 희미해진 ‘개조심’ 글귀가 세월을 짐작케 한다.

“태어나서 외할아버지 댁에 살다가, 6살에 여기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대문 밖 글씨는 어릴 적 개를 키웠는데, 그때 쓴 글씨예요.”

이기운씨의 자택 입구, '개조김'이라는 오래된 문구가 눈에 띈다.

이씨가 오래된 나무 대문을 철문으로 바꾸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그의 답은 의외로 간결하다. “옛것이 마음에 들어서”란다. 새것으로 바꾼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거다.

“내 손자들까지는 기념으로 보여주려고 보존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왔다가 일부러 들러 구경하는 이들도 있어요.”

꽤나 자랑스럽게 자신의 낡은 대문을 소개하는 이씨다.

그의 집에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옛것’과 ‘오늘날의 것’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설명을 하는 이기운씨 뒤로 90년된 창호문이 보인다.

30년된 철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면 90년된 창호문과 마루바닥을 마주한다. 창호살에 바른 종이는 손자와 함께 1년마다 바꿔주며 관리하고 있다.

“철문 자리에는 원래 나무문과 유리 창문이 있었는데, 북풍이 세서 바람이 새어 들어와 신식으로 문을 바꿨어요.”

철문의 끝을 따라가면 옛 성에서나 볼 수 있는 벽돌식 공법을 만난다.

소위 ‘있는 집’에서만 가능했다는 벽돌식 공법은 한 석공이 하루에 3~4개의 돌밖에 올리지 못했을 정도로 고급 건축 양식이자, 정교한 작업이었다.

벽돌식 공법으로 지은 집의 벽 모습.

이씨의 집 지붕에도 옛 흔적과 오늘날의 삶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옛 기와는 그대로 남긴 채 우레탄을 씌운 모습이다.

이씨는 집의 기와를 옛것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지만, 바람이 불면 날아가고 비가 오면 물이 새 어쩔 수 없었단다.

“기와도 그대로 보존했는데요. 오늘날 기와는 기와끼리 맞물리는 면적이 깊어서 비가 새지 않지만, 옛 기와는 맞물리는 면적이 거의 없어 비 올 때 물이 새거든요. 매년 수리비가 만만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우레탄을 씌웠어요.”

옛 기와를 우레탄으로 단단히 고정한 모습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씨의 집 탐방을 마치자 한 참여자가 말한다.

“돈 어려워도 이 집 팔지 맙써~”

사라져가는 제주의 옛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소망이다. 그러자 이씨가 화답한다.

“자손 대대로 물려줄 거우다~”

90년된 대문을 지나 30년된 철문을 열면 90년된 창호문과 나무바닥이 특유의 고고함을 뿜어내고 있는 곳. 어제와 오늘이 살아 숨쉬는 이씨 가옥의 내일에도 늘 생동감이 가득하길 바라본다.

집 탐방에 참여한 성요한(50) 신부가 통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경청하는 참여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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