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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특별기도문]제주 땅의 평화를 위하여
[평화의 특별기도문]제주 땅의 평화를 위하여
  • 미디어제주
  • 승인 2007.05.22 2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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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땅의 평화를 위하여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저마다 더 많은 것,
더 많은 안전, 더 많은 소유, 더 많은 쾌락, 더 많은 안일을 위하여
경쟁하며· 근심하며·염려해 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헐레벌떡,
텅 비고 공허한 가슴들로 여기 이렇게 모였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이 땅의 모든 백성이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원할 뿐, 평화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참 평화이신 ‘주님-당신’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당신의 평화’를 알게 하옵소서.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당신의 속옷까지 제비뽑아 나누어 주셨던
그  십자가의 평화를 알게 하옵소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의 이 평화의 기도를 우리가 언제쯤 배울 수 있으오리이까?

얼마나 먼 길을 헤매야 소년들이 어른이 될 수 있습니까?
얼마나 먼 바다 건너야 갈매기는 쉴 수 있습니까?
얼마나 더 많은 무기와 죽음을 쌓아야, 우리는 당신의 평화를 깨달아 알 수 있으리이까?
얼마나 더 많은 탐욕과 쾌락에서 지쳐 허덕여야
우리는 당신의 평화를 갈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오, 친구여, 묻지를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

이제 우리, 당신께 간구합니다.
바람이신 성령이시여, 강물 같은 평화의 영이시여,
지극히 고요한 중심 -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지금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와 형제 피조물들을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생명의 영이여,
주 성령이시여,

우리에게 알게 하소서!  당신의 평화·그리스도의 평화·십자가의 평화를.
‘지킴’의 평화가 아니라 ‘나눔의 평화를
‘뺏고 빼앗는 평화’가 아닌 주고 또 주고 마침내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평화를.
그리하여,
우리의 육신은 빼앗을지언정 우리의 영혼은
털끝만치도 상할 수 없는 세상 권력들의 헛됨과,
저들의 외치는 평화의 거짓됨을 알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더 많은 무기, 더 든든한 군대, 더 많은 소유와 그것의 지킴이 아니라
우리에게 절박한 것은
더 많은 성령, 더 풍성한 자연, 더 고요한 저녁노을, 그리고 그 노을 속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연의 사람, 고요한 평화의 사람, 참 영성의 사람임을 알게 하소서.

강물을 팔아 생수를 사고, 하늘을 팔아 빌딩을 사고, 곡식과 들판을 팔아 비행장을 사고
펄떡이는 물고기와 대양을 헤엄치는 돌고래를 팔아 잠수함과 함정을 사려는 어리석음에서

돌아서게 하옵소서.


친구가 급하게 전화를 했습니다.
“형, 빨리 오소, 여기 서림 바당이야!  돌고래야 돌고래, 돌고래떼야!”

토요일, 설교준비에 바쁨도 뒤로하여 팽개치고,
당신의 노래로 춤추는 - 친구 돌고래 떼를 보려고,
과속도 마다않고 질주하며 서림바당으로 달려갔습니다.
수족관의 어항을 사고, 메뚜기의 곤충도감을 뒤적이는 아이에게,
저 드넓은 대양의 돌고래 떼를 보여주려 과속도 마다않고 달렸습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 ‘살아계신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고자 바다 끝, 검은 현무암을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저를 부르셨습니다.

손짓하는 오름에 이끌려 들판을 가로지르다가,
탐욕과 죄악에 감염된 ‘인간 군상의 얼굴’을 보고 소리치며...
달려가며· 아우성하는 한 무리의 노루 떼를 보았습니다.
‘나는 너희를 해할 뜻이 없다’고
아무리 읊조리며 떨리는 걸음을 옮겨도
‘나는 너희를 믿지 못한다’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꽥 꽥 멧돼지처럼 소리 지르며 들판을 가로지르는
한 무리의 노루가족을 보았습니다.

봉고차를 몰다  ‘날아가는 새’에 부딪치고,
한밤중 친구의 차를 몰다 노루를 부딪쳐 넘어지게 하였습니다.
물새가 날아갈 줄을 몰라 차를 멈추고 그 길을 기다리고
멀리서 저를 훔쳐보는 노루의 눈길에 이끌려
그와 눈길을 마주하였습니다.

황혼이 지는 저녁 무렵, 웃옷을 잃어버린 꼬마아이의 옷을 찾아주려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맑은 눈망울의 어린사슴을 보았습니다.
그가 세상모르는 ‘어린’사슴이었기 때문일까요?
그는 저를 쳐다보았고, 저도 그를 숨죽이고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 ‘그의 평화’를 지켜 주었습니다. 
그도 저를 두려워하지 않고 저의 눈동자를 ‘떼끄마니-’ 바라보았습니다.

주님, 저는 그날 그 저녁 숲가에서
당신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구름 한점 없이 맑아 마침내 하늘을 볼 것 이라던 그 청결한 마음 -
‘맑은 당신의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그 저녁 숲가에 서서,
저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화를 보았습니다.
도시에서는 꿈 꿀 수조차 없었던 평화
경쟁과 분주함에선 하마, 꿈도 꿀 수 없었던 평화,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그렇게도 바라던 평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평화,
드넓은 오름의 평화, 한없이 펼쳐진 하늘의 평화, 자연의 평화, 폭풍속의 평화
태풍과 바람 속에서도 숨죽여 당신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고요한 영혼의 정수리-
그 정점의 평화를 보았습니다.

주여!
우리 속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이 평화를 우리 속에 심어 주옵소서.

그날 언뜻 바라본 그 하늘의 평화를 - 저희의 영혼과 심장 속에 새겨주옵소서.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평화를 묵상하는 / 이 사순의 계절에
우리로 하여금 만물의 신음하며 고대하는 - 피조물의 탄식소리를 듣게 하옵소서.

해양대군의 위용으로 바다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바다의 싸움꾼 장보고의 후예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 그 겸손과 온유로 마침내 하늘의 평화를 우리에게 열어 주신
≪그리스도의 평화· 당신의 제자직≫을 살게 하옵소서.

정조를 팔고/ 웃음을 팔고/ 자연의 평화를 팔아,
피 묻은 군인의 호주머니에서 떨어지는 ‘저 탐욕의 자본주의 문명의 쥐엄열매’를 탐하기보다
이제 겸손히 어머니의 창조의 품 - 자연의 가슴으로 돌아가
이 땅의 청지기로, 품꾼의 하나로 겸손히 살겠다는
뼈저린 깨우침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경제, 경제, 경제!
돈이 하나님이 되고, 돈이 평화가 되고, 돈이 종교가 되는 이 어처구니없는 우상의 땅에서
탈출하여,
오직 하늘의 평화와 자유로 - 광야 같은 이 땅에 자유한 나그네로 살다 가신
당신의 출애굽의 영성 , 광야의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비록 / 고난의 광야를 행진할지라도,
다시금 돌아가 자본주의의 우상
쾌락과 경쟁의 더 많은 애굽의 고깃가마를 탐하는
옛 시대의 ‘죽은 믿음’을 이 광야에 묻게 하옵소서.

하여, 이제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고 하는
《광야 나그네의 믿음 - 순례자의 그 온전한 영성》을.
 
하여, 새 하늘과 새 땅 - 당신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오직 당신의 음성에만 한 걸음씩 귀 기울여 나아가는
그 가슴 벅찬 하늘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의 좁은 문으로 걸어 들어가
마침내 무덤 없는 부활의 영광 속으로 날아오르신 주님- 당신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십자가의 평화》를 온 몸으로 춤추며 살다가,
《오직- 당신》그리스도의 영과 함께,
영원한 부활의 영광 속으로 날아오르게 하옵소서.

2007년 - 당신의 고난을 묵상하는 이 사순의 계절에,
4·3 원혼들의 땅 제주 한 귀퉁이에서
부끄러운 믿음의 자녀들이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아멘.-』

송영섭 목사(대정 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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