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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이 지나서야 관덕정 광장에서 불려진 6명 희생자들의 이름
70년이 지나서야 관덕정 광장에서 불려진 6명 희생자들의 이름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7.04.01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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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 해원상생굿 유족들 증언, 시 낭송에 이어 서천꽃밭 질치기까지
제주 4.3의 도화선이 된 3.1절 발포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관덕정 해원상생굿이 4월 1일 관덕정 광장에서 열렸다. ⓒ 미디어제주

 

제주 4.3의 도화선이 됐던 70년 전 3.1절 발포 사건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관덕정 해원 상생굿이 4월 1일 오전 10시부터 제주시 관덕정 앞에서 열렸다.

 

내년 4.3 70주년을 앞두고 해원 상생굿이 관덕정에서 열린 이유는 이 곳이 제주 4.3의 시작을 가슴에 기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1947년 3월 1일, 제주북초등학교를 중심으로 3만 인파가 모여 3.1 만세운동 기념대회를 하던 중 기마 경찰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사과를 요구하면서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6명이 숨지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4.3 해원 상생굿에 참석한 한 유족은 “그 때 사건이 잘 수습되고 희생자들에 대한 위로가 이뤄졌으면 4.3이라는 비극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면서 70년이 지나서야 당시 희생자들을 위무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해원 상생굿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제주큰굿보존회의 시왕맞이 초감제로 문을 연 이날 해원 상생굿은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가 마련한 점심 음복에 이어 당시 희생자들의 유족 증언 순서가 이어졌다.

 

제주4.3연구소가 백방으로 3.1절 발포 사건 희생자 유족들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이날 관덕정 무대에 선 오추자씨(80)는 당시 10살이었다.

 

“그날 관덕정에서 사람들이 죽는 사건이 나니까 제주시내에 비상이 걸렸어요. 아이들은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해서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죠. 아버지가 총에 맞은 것도 처음엔 몰랐는데 저녁에 아버지가 시신으로 돌아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복자로 태어난 남동생은 1년도 살지 못하고 죽었고, 어머니는 우울증 환자처럼 넋을 놓고 사셨어요. 하염 없이 바다만 바라보면서 멍하니 앉아 계셨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러는 사이에 다른 남동생이 또 죽어버렸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만에 남동생 둘이 모두 이유 없이 죽은 거죠”

 

3.1절 발포사건으로 70년 전 아버지가 숨진 오추자씨가 현장 증언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4.3연구소 조정희 연구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증언을 이어가던 오씨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4.3 관련 단체로부터 연락을 받아본 게 처음이에요. 저랑 언니는 제주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아버지는 4.3 희생자고 신고가 돼있는데 유족으로는 제 조카들만 올라가 있더군요. 그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저랑 언니가 같이 유족으로 결정되지 못한 것은 너무 안타까웠어요. 아버지 유족으로 언니와 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 연구원은 오씨의 증언에 설명을 덧붙이면서 “오늘 해원 상생굿에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와 계시다면 따님의 얘기를 듣고 원통한 마음을 풀 수 있으면 좋겠다. 가슴에 상처를 묻어두고 계신 분들을 위해 유족 신고를 상설화하고 해원 상생굿도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진 ‘시 보시’ 순서에서는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이 ‘한 늙은 어머니의 제문’ 시를 낭송, 상생굿에 참여한 이들을 모두 숙연케 했다.

 

시왕맞이 초감제로 해원상생굿의 문을 연 제주큰굿보존회의 서순실 심방은 희생자들을 위해 저승길을 닦아 영혼을 맞아들여 위무하고 저승길로 보내는 질치기와 서천꽃밭 질치기로 굿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3.1 발포 사건 당시 15세로 가장 어린 나이였던 허두용씨를 위해 낭송한 ‘한 늙은 어머니의 제문’ 시 전문.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이 ‘한 늙은 어머니의 제문’ 시를 낭송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한 늙은 어머니의 제문

 

1947년 3월 1일

붉은 꽃물 흩뿌려진 가마니떼기에 덮여온, 너는

흡사 하늘을 향해 말하는 듯 하였다

어찌된 일이냐

 

기억한다 그날 너의 언 아침을

발목 달랑 짧은 무명바지

팔랑이며 달려나가던,

아무렇지도 않게 차려준 보리밥 한 숟갈에

“곧 다녀오쿠다, 어머니”

바람처럼 굽은 올레 휘잉 멀어져가던 뒷모습을

기억한다 오라동 1030번지

 

그날 관덕정 마당은 사람들의 시작이었다지

마침내 피워내고 피워내리던

펄럭이던 깃발들의 시작이었다지

3월 꽃봄날의 시작이었다지

다르륵 다르륵 높은 망루의, 미친 기관발서 퍼붓기 전까지는

 

아들아, 어디 감시냐

열다섯, 너는 곳 빛나는 중학 뺏지 달 새쑥같던 아이,

누가 너를 결정한 것이냐 네 꿈을 파묻은 것이냐

 

기억한다 네 희디흰 뼈를 보았다

반백년 검은 숲에 홀로 누운 너를 일으키던 날

해안동 가족공동묘지로 이장하던 날

퀭 뚫인 탄흔의 자국을 보았다 차마 널 볼 수는 없었지만

눈물마저 녹슨 쇠가 박힌 에미,

가슴의 푸른 자국이 그제야 보였다

3.1 불상사라니! 숨은 묘비명을 갈아엎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너는

설웁도록 보얀 눈망울 단 달빛 아래서

흑백사진 한 장으로도 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네 이름 소리내지 못하였구나 아들아

중치막힌 세월아

 

네 스러진 그 자리,

그 옛날 식산은행 앞이거나 제주차부 골목길

허공의 까마귀도 목마르다 비명 삼킬 때, 퍽퍽

무너지며 함께 먼길 떠난 삼춘님들

소리내지 못했기에 기억될 리 없던 그 이름, 슬픈 이름들 계셨지

송덕윤 김태진 양무봉 오문수 박재옥

 

아들아, 두용아

그날의 시작은 오늘의 시작이었다

죽은 얼굴들 일으켜 세우는 오늘의 시작이었다

그날은 저절로 올라올 리 없는 포리롱한 봄날의 연두가,

분홍이 와상와상 눈을 뜨는 바로 오늘이 되었다

기댈 곳 없었던 우리가 스스로 일어나

우리를 결정하는 바로 오늘이 되었다

 

그러니 잘 가자, 아들아

이제사 먼데서 늙은 에미의 제문을 바친다

그러니 삼춘님들, 함께 받으십서

 

관덕정 해원상생굿에서 심방의 초감제 서사를 듣고 있던 한 여성이 슬픔에 북받쳐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 미디어제주
제주 4.3의 도화선이 된 3.1절 발포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관덕정 해원상생굿이 4월 1일 관덕정 광장에서 열렸다.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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