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窓] 김창열미술관 설계경기 전후 과정을 지켜보며
(가칭)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이하 김창열미술관) 설계경기 과정은 숱한 의혹만 뿌렸다. 설계경기는 으레 제주도청의 건축지적과가 맡지만 이번엔 유독 문화정책과에서 공고를 시작한 점이 그랬고, 심사위원 선정 과정도 투명하지 못했다.
더욱 가관인 건 심사가 끝나자 12개 업체에서 내놓은 응모작(건축 모형)을 죄다 폐기처분 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들을 해왔다. 지난 9월 설계경기 공고 이후 일련의 과정은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만 던지게 만든다.
지켜본 결과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갑의 횡포’라고 말이다. 아니, 그 말 외에는 어떤 표현이 어울릴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건축을 하는 이들은 다 안다. 행정은 무조건 갑이라는 사실을. 눈에 잘못 들었다가는 일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갑’은 ‘갑 중의 갑’으로 행세하고, 건축을 하는 이들은 ‘을 중의을’의 입장에 놓인다.
응모작이 모두 폐기처분 됐다는 사실에 건축인들은 분개를 하면서도 그걸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다. ‘을 중의 을’이어서.
응모작을 폐기처분(도청 관계자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며 ‘버려진 것’이라는 이상한 표현을 쓰고 있다)한 당사자인 도청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갑’과 ‘을’의 관계를 읽을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도청 관계자는 “양해를 구하겠다”고 했다. 양해를 구하겠다는 건 ‘죄송하다’는 립서비스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한마디만 하면 끝날 수 있다는 제주도의 의지로 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남의 작품을 함부로 폐기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제주도는 지난 9월 설계경기 공고 당시에도 심사가 끝난 뒤 작품을 돌려준다고 명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작품을 버린 뒤 제주도가 하는 일이라곤 ‘죄송하다’는 양해를 구하는 것뿐이다.
과연, 제주도엔 문화가 있는가 묻고 싶다. 남의 작품을 아무렇게나 폐기해도 그만인 그런 행정을 하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나. 전국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 그런 사례가 있었는지 정말 찾아보고 싶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앞서 얘기했듯이 ‘갑의 횡포’ 때문이다. 그건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으로, 건축가들은 모두 자기들 발아래 놓여 있다는 발상이다. 그들은 건축지적과에서 맡아야 할 것을 문화정책과에서 맡는 웃지 못할 일을 벌이면서도 한 치의 거리낌이 없다. 이해당사자는 심사위원이 될 수 없음에도 김창열 화백을 집어넣으려 했던 것도 ‘갑의 횡포’이다. ‘갑의 횡포’의 절정은 모든 응모작을 단 한 순간에 폐기처분한 시점이다. ‘횡포’를 뛰어넘은 ‘갑의 광기’를 보는 듯하다.
언제까지 ‘갑의 횡포’와 ‘갑의 광기’를 바라봐야 하는가. 말 한마디로 양해를 구한다고? 그런 가식은 필요하지 않다.
이번 기회에 ‘갑의 광기’와 ‘횡포’를 막는 장치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행정이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그러다가는 제주도에 제대로 남아 있을 문화는 없을 듯이 보인다.
이젠 제주 도내 건축인들도 달라져야 한다. ‘갑’에게 한마디도 못하다가는 영원히 ‘을’로 남는다. 아름다운 ‘을’이 되려면 ‘갑의 횡포’를 눈감아줘서는 안된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제주도의 건축문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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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만 보더라도 이번 설계경기가 얼마나 가볍고 무지함에서 시작 되었는지 도 행정은 보여주고 있다.
도는 이번사태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도에 대한 불신만 더 키울것이고
김창열미술관에 대한 가치를 더 떨어뜨릴 것이다. 이 점을 잘 생각하고 대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