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살 할머니가 밤새 보초를 서야 하는 사연, 들어주세요"
"80살 할머니가 밤새 보초를 서야 하는 사연, 들어주세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2.01.25 12: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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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는 이야기]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민의 사연1.

'보고 듣는 이야기' 기획기사는 <미디어제주>가 직접 만나 취재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만든 글입니다. 주민들의 솔직한 심경을 담기 위해 라디오 사연 형식으로 게재했으며, 기사 하단에는 주민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가 신청곡으로 첨부됩니다. 사연을 읽고, 주민의 심정에서 가사를 음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편집자주]

월정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분들. 사진 촬영 및 언론 노출 여부를 사전에 확인, 응해주신 분들만 사진에 담았다.
(왼쪽부터)고권호 월정리 운영위원, 송경매 부녀회장님, 정신길 해녀, 김영숙 해녀회장, 김창현 월정리장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서 나고 자란 주민입니다. 제주 동부하수처리장 인근 원주민이죠.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제주도가 추진 중인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을 반대합니다. 그러면서 최근 제주도청과 세계자연유산본부 앞에서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우리 주민들에게 가해진 인권 탄압, 무너진 월정리민들의 자존감 이야기를 많은 분께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 아닙니다. 그동안 하수처리장으로 인해 고통받은 주민들의 마음을 제주도가 무시한 채,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이 진행되면, 세계자연유산 훼손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이 당연한 문제를 왜 정부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제주도는, 제주도의회는 모를까요? 왜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월정리는 예부터 물질과 밭일로 먹고 살던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부하수처리장이 생기면서 물질도, 밭일도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우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다 오염 이야기부터 해보죠.

하수처리장이 생기며 월정리 앞바다에 똥물이 흐르고, 생태계가 파괴되었습니다. 그 많던 전복도 이제는 씨가 말랐고, 냄새가 나 못 살겠습니다. 냄새는 비 오는 날 더 심해집니다. 똥물이 더 많이 월류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월정리는 예부터 한적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자랑인 마을인데,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바다 오염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몰랐던, 우리 마을의 농사 이야기입니다.

세계자연유산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보전을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반 강제로 땅을 행정에 넘겨야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제주도가 '개발 붐'이 불기 전이라서, 우리는 땅의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마을 사람들이 빼앗기다시피 한 밭이 많습니다. 우리 마을이 세계자연유산 마을로 지정되면서, 월정리 밭의 3분의 1 가량은 다 넘어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어림잡아 6만평 이상이 될 겁니다. 그쪽이 다 옥토인데, 헐값에 우리는 밭을 빼앗겨버렸습니다.

빼앗긴 밭에는 경작 금지 표지판이 생겼습니다. 이곳에 농사를 지으면 벌금을 엄청나게 물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우리는 이해했습니다. 세계자연유산 마을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 하나로 밭을 빼앗겨도 괜찮다,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이라뇨? 자연보호를 이유로 농사도 못 짓게 하는 마을에 하수처리장을 만들고, 지금은 그 규모를 더 키우겠다는 제주도의 태도. 여러분은 납득이 가십니까? 이를 허가해 준 문화재청은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우리 월정리민들은 힘이 없습니다. 바다도 빼앗기고, 땅도 빼앗겼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제주도는 “다 적법한 절차 하에 진행된 사안”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나마 물질과 밭일로 먹고 살던 월정리민인데, 이제 생활이 너무 어렵습니다.

도민 여러분께서 우리의 사연을 알아주시고, 제주도정이 이런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80살 먹은 할머니가 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을 막겠다고, 시설 입구에서 밤을 새고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눈 판 사이에 공사를 진행해버릴까 두려워서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작년 11월부터 동부하수처리장 입구 앞에서 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제주도가 공사를 강행하지 못하도록 24시간 동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초를 선 지 이틀 째 되는 날, 제주도는 하수처리장 앞 가로등을 꺼버리더군요. 우리는 그렇게 어둠 속에서, 추위 속에서 보초를 섰습니다. 보초를 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7~80대 어르신 분들입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할까요? 제주도가 '공사 강행'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해 준다면 이 고생도 그만 할 수 있을 텐데... 제주도가 그렇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하수처리장 증설 사업을 강행하기 이전에 제주도는 세계자연유산 훼손 방지 및 보전계획을 제대로 밝혀야 합니다. 유네스코와의 협의도 진행해야 하겠고, 우리 마을 사람들과도 대화를 적극적으로 나눠야 합니다. 부탁합니다.

제주도는 우리가 막무가내로 행정의 정당한 공사 집행을 막고 있다 주장합니다. 일부 언론도 그런 식으로 보도합니다. 제주도와 우리 월정리민의 대결 구도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일개 리민인 우리가 제주도의 상대가 될 수 있습니까? 

제주도는 우리더러 왜 자기네 업무를 방해 하냐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방해받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지 여러분께서 판단해주시기를 바라며… 이 노래를 신청합니다. <모든 것을 하고 말았네 - 권나무>

모든 것을 하고 말았네 – 권나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만나 본 적 있나요? 심지어 그땐 내 마음이 사라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죠.
어린아이가 눈앞에 넘어져서 얼른 일으켜 준 적 있나요? 심지어 그땐 그 꼬마가 얼마나 아플까 맘도 들지 않았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만나 본 적 있나요? 심지어 그땐 내 표정이 사라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죠.
목마른 행인이 모자를 벗고 서서 물 한잔 내어 준 적 있나요? 심지어 그땐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맘도 들지 않았죠.
정말 아무 맘이 없는 상태엔 화도 나지 않았죠. 정말 아무 맘이 없는 상태엔 화도 나지 않았죠.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을 때 모든 것을 하고 말았죠.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을 때 모든 것을 하고 말았죠.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을 때 모든 것을 하고 말았죠.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을 때 난 모든 것을 하고 말았죠.

*사연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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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2022-01-25 22:37:27
월정리 주민들의 소식을 계속 전해주면 좋겠어요.

김승일 2022-01-28 17:55:41
김은애기자님, 세계적 희귀 용천동굴 보호구역내 하수처리장으로 인한 월정리의 아픔을 헤아려서 기사화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