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 4개 박물관 공동조사단의 광령천 계곡 탐사가 시작된지 벌써 4개월째다.
계곡은 이미 봄을 거쳐 여름의 초입에 들어섰다. 지난 6월 22일 탐사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계곡을 지나면서 이제는 거의 익숙해져버린 절벽을 기어오르다시피 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이날 탐사 구간은 천아오름 인근 수원지를 출발, 1100도로가 지나가는 어리목 입구의 한밝교에 도착하기까지 구간이었다.
# 절벽이 막아서도 거침없이 ‘네 발’로 기어오르는 조사단 일행
천아오름 수원지에 집결, 출발한지 30분도 안돼 계곡을 가로막고 선 절벽이 공동조사단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경사 각도가 60~70도는 족히 됨직한 아슬아슬한 절벽이다. 다행히 발을 딛기 좋은 정도여서 차례대로 ‘네 발’을 이용해 올라갈 수 있었다.
탐사가 시작되자마자 민속자연사박물관의 김완병 박사가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한다.
지나가면서 가까이에서 보니 새 소리를 녹음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새 소리와 확연히 구분되는 흰눈썹황금새였다.
어떻게 새 소리만 듣고 다 알 수 있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김완병 박사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분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 계곡 가장자리에서 수줍은 듯 꽃 피워낸 감자란
중간 휴식 장소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한라산연구소의 김대신 연구사가 조심스럽게 식물 촬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감자란이었다.
아주 조그마한 꽃이 활짝 핀 상태였다. 상사화처럼 잎이 다 지고 난 뒤에야 꽃이 피는 식물이다.
다시 발길을 재촉해 걷다 보니 이번에는 높이가 15m 가량 됨직한 나무가 뿌리까지 뽑힌 채 계곡 한쪽에 쓰러져 있다. 풍게나무였다.
계곡 주변으로는 곰취, 주목이 드물게 보이기 시작한다. 한라산 정상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제주도 특산식물 중 하나인 한라개승마도 눈에 띈다. 한라산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고산식물이다.
# ‘천국의 계단’을 만나다 … “정상 오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라는 뜻인가”
목적지까지 한 시간 가량 남은 지점이었을까. 계곡의 서쪽에 심상치 않은 작품이 조사단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잘 다듬어놓은 정원을 돌로 조각해놓은 듯한 모습이다. 장인 수준의 실력 있는 석공(石工)이라 해도 이처럼 정교하게 계단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라산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한라산 정상을 만나기 전에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는 뜻일까. 조사단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천국의 계단’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기이한 절경이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