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4대 문명이 모두 큰 강을 낀 곳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굳이 세계사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들에게도 상식이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통해 문명을 꽃피우게 되는데 ‘물’이 가장 큰 요소였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디어제주>는 제주의 하천이 제주인들의 삶에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제주의 하천에 투영된 제주인들의 발자국 찾기
고백하건대 <미디어제주>가 ‘제주의 하천 엿보기’ 기획을 시작하게 된 것은 올 3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제주도내 4개 박물관의 공동학술조사에 ‘참관인’ 격으로 본지 기자가 함께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번 공동학술조사는 국립제주대학교 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교육박물관 등 4개 박물관이 공동조사단을 꾸려 진행하고 있다.
곤충과 동․식물, 지형지질 등 자연사 분야와 유물․유적, 민속자료, 경제활동, 지명 등 인문사회 분야까지 전 분야를 다루는 것은 당연히 공동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몫이다.
다만 <미디어제주>는 장기간에 걸친 이번 조사에 ‘참관인’ 자격으로 함께 하면서 제주의 하천에 투영된 제주인의 삶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들 전문가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에서 만나게 될 자연환경과 제주의 인문환경의 조사 과정을 소개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 제주의 하천, 용천수와 마찬가지로 제주인의 삶을 품은 곳
화산섬인 제주도에 있는 오름의 수는 360여개나 된다. 그렇다면 하천은? 이 질문에 순식간에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제주의 자연환경에 상당한 수준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일단 제주의 하천은 모두 143곳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으며, 이 가운데 비교적 길이가 긴 지방2급 하천은 모두 60곳에 달한다.
그만큼 제주의 하천은 대부분 평상시에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乾川)이기 때문에 그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시 흐르는 수량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하천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 지역의 산지천과 광령천, 옹포천, 그리고 서귀포시에 있는 강정천과 효돈천(돈내코 계곡) 등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용천수가 솟아나는 해안을 따라 마을이 발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이들 하천의 하류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마을을 이뤄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광령천은 대부분 구간이 건천이지만, 물이 흐르는 구간이 비교적 길기 때문에 하류 지역에 우리 선조들이 삶의 터전을 일굴 수 있도록 한 중요한 요소가 됐다.
# 깎아지른 듯한 주상절리와 어우러진 진달래소의 웅장한 모습
광령천 본류의 길이는 대략 2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라산 Y계곡에서부터 광령천이 하천의 모습을 띠기 시작하지만, 한라산 정상 서북벽과 장구목 일대에서부터 Y계곡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한라산 정상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또 볼래오름과 영실, 며칠 전 화재가 발생했던 사재비오름 등에서 발원한 지류들이 좀 더 밑으로 내려온 지점에서 Y계곡과 합쳐지면서 광령천의 본류를 형성하고 있다.
공동조사단의 두 번째 탐사가 있었던 지난 4월 26일도 바로 전날까지 한라산에 큰 비가 내린 직후였다.
이날 오전 제2광령교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한 조사단이 오후 2시께 광령천의 숨은 비경인 ‘진달래소’를 맞닥뜨리게 된 것은 말 그대로 행운이었다.
길 안내를 자처하고 나섰던 강정효 사진작가도 “이렇게 물이 가득 찬 진달래소의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흔치 않은 기회”라며 장관을 이룬 진달래소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주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주상절리와 물을 가득 머금은 진달래소는 먼지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완벽한 선계(仙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